대통령 주재 지휘관회의 '건군 이래 최초' 맞나?
[取중眞담] 노무현 시절 회의 참석 기록 남아 '원조' 논란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고 지휘관들에게 천안함 사건이 우리 군과 국민에게 던져준 과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군통수권자로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청와대의 이 같은 브리핑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 형식은 좀 다르지만 이 대통령은 군 지휘관회의를 주재한 최초의 군 통수권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 2003년 5월 7일자 <청와대 브리핑>.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 발언이 소개되어 있다. ⓒ 청와대 브리핑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첫해였던 2003년 5월 7일 오찬을 겸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http://is.gd/bREQS)
이날 오전 조영길 국방장관이 주재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120여 명 참석)가 열리고 이 중 48명이 청와대 오찬에 참석해 대통령을 만나는 형식이었지만, 이날의 청와대 오찬이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당시 언론의 해석도 대체로 일치한다.
<연합뉴스>가 당일 "노 대통령이 이날 낮 참여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했다"고 썼고, <한겨레>도 다음날 "노 대통령이 7일 전군 지휘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자주국방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이 같은 논란이 일자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 비슷한 회의가 있었지만, 천안함 사건처럼 단일사안에 대해 군 지휘관과 민간 자문위원까지 모두 참석하는 회의를 대통령이 주재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얘기"라고 고쳐 설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처음 주재한 것이 언제인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현직 대통령이 전군 주요 지휘관들을 만나는 것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굳이 차이점을 따진다면, 역대 군 지휘관회의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회의를 주재한 뒤 이들이 주요 지휘관들을 데리고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나 회의에 대해 보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장관이나 합참의장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회의 내용을 사전 보고하는 것이 관례였던 만큼 회의 주재자를 따지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4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한다고 하자 언론들은 '너나없이 건군 이래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보도하는 것이 맞냐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일이 생긴 데에는 이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처음', '최초'라는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하려는 청와대 대변인실의 책임도 크다.
2008년 4월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대변인실은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휴양지 캠프데이비드에 초대된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써는 동안 한미 양국의 쇠고기 졸속 협상이 타결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대통령의 실용주의 철학과 달리 그가 겉으로 보이는 형식에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변인실은 지난해 2월 15일 이 대통령이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관람하자 "역대 대통령으로서 첫 독립영화 감상"이라고 브리핑했고, 같은 해 7월 22일 대통령이 개기일식을 관람한 것에 대해서는 "현직 대통령 중에 일식을 직접 나와서 관찰한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우주연구원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이 대통령이 2월 10일 해병2사단을 방문했을 때는 보도자료에 "현 대통령이 해병부대를 방문한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는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그냥 간단히 '취임 후 처음 갔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의미를 부여했냐"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창조한국당은 3일 대통령의 주요 지휘관회의 주재에 대해 "'최초'만 좋아하지 말고, 군의 매너리즘과 더불어 대통령과 총리, 여당 원내대표와 국정원장, 감사원장까지 모두 '면제'인 '군 면제 정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면제가 이렇게 많은 정권도 처음일 것'이라는 국민적 비판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다소 거친 느낌이 있지만, "최초를 좋아한다"는 지적은 청와대도 곱씹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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