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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70년 전 모습, 우리와 비슷하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고

등록|2010.05.04 08:39 수정|2010.05.04 10:19
동서울버스 터미널은 나와 인연이 깊다. 고향이나 여행을 갈 때 자주 이용했고 군복무 시절에도 꼭 거치는 정거장이었다. 역 앞 횡단보도는 늘 혼잡하다. 가는 버스, 서는 택시, 뛰는 사람으로 뒤엉켜있다. 그 와중에 횡단보도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구걸하는 부랑자들이다. 처음 상경했을 때는 한 사람이었는데 몇 년 전 두 명으로 늘었다. 한 사람은 서서, 또 다른 사람은 찬 바닥에 앉아 찬송가를 들으며 구걸한다. 매번 그들을 볼 때마다 "돈을 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만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늘 마음만 불편하다.

그러던 가운데 건대역에서 '동서울터미널의 부랑자'를 보았다. 벌이가 안 되었거니 하고 무심히 지나가려 했지만, 몇 년 사이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실물 경기 악화와 지독한 경쟁이 그들을 거리로 몰았을 테다. 마침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보며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Yes24 사진

조지 오웰은 영국의 명문사립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이듬해 미얀마로 간다. 그는 그 곳에서 5년간 식민지 경찰로서 일한다. 하지만 억압자로서의 위치가 그에겐 고통이었다. 후일 그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나는 속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청난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그는 결국 식민지 경찰을 그만뒀고, 귀국해서는 사회적 약자인 하층 노동 계급에 관심을 둔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그가 1928년부터 1931년까지 파리와 런던을 돌아다니며 영어 교습, 접시 닦이, 부랑자 생활을 하며 몸으로 쓴 글이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전후 유럽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파리의 70년 전 모습과 한국의 오늘날은 비슷한 점이 많다. 12시간이 넘는 근로시간, 겨우 입에 풀칠할 만큼만 주는 급여,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일을 해야 인정받는 억압적인 노동환경이 그것이다.

"좁은 통로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서로 부딪히고, 고함을 지르고, 이 지하실에 처음 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치광이들의 소굴이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노동 환경이 얼마나 척박했던지 그는 노동자의 '욕설'을 변호한다. "실제로는 이 말다툼이 일의 과정상 필요한 일부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게으름을 비난하지 않으면 (작업) 속도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할 때 '성교하다'란 뜻의 "푸르트" 말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처하는 자세가 그들을 "악마처럼 분노하고 욕을 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이 분노한다고 해도 곧장 집단 행동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세상을 뒤집을 '상상'을 하기에 그들은 매우 지쳐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가시간이 매우 적다.

"그들은 딱 살아있을 만큼의 보수를 받는다. 생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만일 접시닦이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한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파업을 했을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 간부가 별 이유 없이 병사에게 삽질을 시키는 것처럼, 고용인은 피고용인에게 생각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 생활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급료로는 한 푼도 모을 수 없고, 일주일에 60시간 100시간의 노동이 다른 일에 훈련할 시간을 남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현장에서 스스로 '실험쥐'가 되어 변하는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기록했다. 그는 런던의 접시닦이 생활을 청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계속 일하는 사람이 파리의 음식점에는 수천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면 과로할 때 자기연민의 좋은 치료제가 된다."

보통 사람들은 가혹한 업무에도 자기만 겪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일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부당하다는 처음의 감정은 서서히 무뎌진다. 또 '천역자의 자부심'이란 모순이 드러난다. 천역자란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들은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미덕으로 삼는다. 만약 일손이 비었을 때 천역자는 늘어난 일거리에 화를 내기보다 1인 2역의 역량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마치 지독한 훈련에도 "힘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군인처럼 자기의 본분이라 여긴다.

조지 오웰의 밑바닥 생활은 하루하루가 투쟁이다. 주머니 속 동전 하나까지 챙기며 겨우 버틴다. 그러다 결국 런던에서 부랑자로 떨어진다. 모든 부랑자 구호소는 하룻밤만 재워준다. 20여 킬로미터를 걸어 새로운 구호소를 찾아야 한다. 식사는 곰팡이 핀 빵에 마가린을 발라 먹으면 다행이고, 굶기가 일쑤다. 당시 노숙의 형태가 이색적이다.

첫 번째 강변 둑길 노숙이다. 런던의 법 상, 거리에서 밤을 새는 건 상관없지만 잠이 들면 불법이다. 다행히 강변 둑길은 예외다. 강 건너 편의 광고 조명과, 추위 때문에 잠자기가 쉽지 않지만 거리의 길바닥보다는 낮다.

두 번째 밧줄 의자다. "숙박자들이 긴 의자에 줄지어 앉은 다음, 담장 밖을 내다보듯이 앞에 쳐놓은 밧줄에 몸을 얹는다." 새벽 다섯 시에 관리자가 와서 그 밧줄을 풀어준다. 싸지만 숙박료도 내야 한다. 세 번째 관 침대다. 관 같은 궤짝에 들어가서 잔다. 벌레들이 몸으로 들어오면 피할 데가 없어 힘들다고 한다. 관 침대는 우리나라의 쪽방의 조상쯤 돼 보인다.

그들에게 구호소를 더 많이 지어주고 시설도 개선하면 될까? 조지 오웰은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지루하고 생기 없는 부랑인을 자존심 있는 인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편안함이 증가한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또 동사무소에서 계절마다 잡초를 제거하는(런던에서는 건설에 쓰일 돌을 부수는 일을 했다) "일을 위한 일자리", 즉 단발성 일자리로는 그들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빈곤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일이 주어져야 한다. 즉, 경제적 지위 상승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 파국의 상황에서 '부랑자의 자존심'까지 챙기는 조지 오웰의 품이 넓기도 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지도층은 새가슴이다.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는커녕 인턴을 늘려 취업을 유예시키고 소득별 차등 무료급식으로 아이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려 한다. 책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대신 실천적인 자기 다짐으로 끝맺는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선거가 코앞이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중복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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