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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의 김C, <뜨거운 감자>의 김C

[음반의 재발견18] '뜨거운 감자' 신보 <시소>

등록|2010.05.04 08:53 수정|2010.05.04 12:00

▲ 신보 [시소]를 발표한 '뜨거운 감자'의 고범준과 김C. ⓒ 다음기획


좀 새삼스럽지만, 김C의 본업은 가수다. 그것도 그룹 '뜨거운 감자'의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꽤 오래된 내공을 자랑하는 가수다. 물론 대중들이 생각하는 그의 모습은 국민 예능이라 불리는 <1박2일>에서의 이미지가 훨씬 친근하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나는 TV보다는 CD플레이어와 컴컴한 공연장에 그의 본모습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뜨거운 감자'의 새 앨범 <시소>

▲ '뜨거운 감자'의 [시소] ⓒ 다음기획

이런 김C가 소속되어 있는 록 그룹 뜨거운 감자는 1997년 결성 이래 2000년 정규 1집 <N.A.V.I> 이후, 2008년 4집 <감자밭을 일구는 여정>을 거치며 적지 않은 음악적 변화를 겪은 팀이다.

그 과정에서 팀에서 상당히 중요한 축을 맡았던 기타의 하세가와 요오헤이와 드러머 손경호가 탈퇴하는 과정도 있긴 했지만, 김C와 베이스를 맡고 있는 고범준의 2인 체제는 여전히 건재하다.

물론 뜨거운 감자의 멤버 교체가 이들 사운드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긴 했지만, 사실 격정적이면서도 담담하게 삶을 얘기하는 그들의 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멤버들이 축소됐던 4집 이후, 이들이 말하는 소리와 이야기들이 약간 부드러워졌다는 이야기와 관련해 약간의 상업적 혹은 대중성 논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논리가 너무나 빈약하다. 그럴 바엔 속시원히 방송인 김C를 비난하는 게 더 솔직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들의 신보 <시소>는 그런 측면에서 약간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음반일 수도 있고, 혹은 그들이 도약하는 음반일 수도 있겠다. 아닌 게 아니라 장르부터가 좀 의아하긴 하다. 이러한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긴 하지만, I.S.T.(Imaginary Sound Track)라는 독특한 장르를 내걸고 발매된 이번 음반은 그 이름 그대로 '상상 속에 존재하는 영화 사운드 트랙'이라는 주제를 가진다.

'축소'되지 않고, '압축'된 그들의 사운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영화. 그 있지도 않은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이번 뜨거운 감자의 신보 <시소>다. 따라서 청자는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상상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배우 김태우, 배두나라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영화 속에 주인공도 듣는 이 마음대로 언제든지 변화가 가능하다. 물론 가장 중심이 되는 영화의 테마는 '사랑'이다. 하지만 이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가,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것은 순전히 듣는 이의 상상이다. 뜨거운 감자는 그렇게 듣는 이의 상상력만 자극해줄 뿐이다.

▲ '뜨거운 감자' 보컬과 기타의 김C. ⓒ 다음기획

그래서 들리는 소리들도 깔끔하게 처리된 믹싱과 함께 상당히 심플하다. 1집에서 3집까지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근작인 4집 <감자밭을 일구는 여정>때만 하더라도 즐겨 쓰던 일렉 사운드는 최대한 배제된다. 소리를 확장시키지 않는다. 사운드의 축이 사라진 만큼 더 이상의 쓸모없는 확장은 도려냈다.

대신 주제를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한다. 드럼, 기타, 현악 그리고 아무리 들어도 노래를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여전히 구분이 잘 안 가는 담담하고도 거친 김C의 보컬이 그렇게 어울린다. 

따라서 나는 이들의 음악이 결코 '축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간 속에서 그렇게 '압축'된 것이다. 압축되어 비어진 곳은 그렇게 청자의 상상이 더해진다.

음악의 완성은 노래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을 전제하면, 이들의 신보 <시소>는 거기에 매우 충실한 음반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 음반의 특징이라면 역시 전체적으로 상당히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딱히 매치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음악은 예전부터 상당히 예쁜 구석이 많았다. 그 이전에 발표된 2집 '아이러니'나, 3집의 '봄바람 따라간 여인', 4집 '비 눈물' 같은 노래들의 경우 제일 먼저 귀에 박히는 건 가사나 연주보다는 역시 '멜로디'가 아니었던가.

그러한 멜로디스트(?)로서의 뜨거운 감자의 능력은, 이 음반에 실린 세 번째 트랙인 '고백'에서 어김없이 발휘된다. 영화로 치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의 마음을 담고 있는 이 '고백'은 이 음반이 가진 실로 아름다운 면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트랙이다. 지금껏 발표된 그들의 노래 가운데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이 노래는, 그렇게 청자에게 상당히 달콤한 훅을 연속해서 먹이는 곡이다.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해서 후렴부분만을 잠시 들려주었을 뿐인데도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이 노래 제목이 오르내린건 우연이 아니다. '고백'은 이 음반에 실린 다섯 번째 트랙인 '빈방'이라는 곡과 대비되며 그렇게 그들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1박2일>의 김C, <뜨거운 감자>의 김C

▲ '뜨거운 감자'는 분명 아름답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 지라도 말이다. ⓒ 다음기획


'사랑과 연인' 그리고 '이별 혹은 그리움'에 관련된 조금은 쑥스럽고도 약간은 뻔한 이야기가 담긴 음반인 <시소>는, 그렇게 뻔할지도 모르는 소리와 사운드를 내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사실 '사랑'이 그러하듯 '음악'도 지니는 의미란 것도 원래 그렇게 뻔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런 뻔한 노래와 이야기에 눈물짓고 웃음 짓는 것도 우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뜨거운 감자'의 김C와 <1박2일>에서의 김C가 같은 사람이었듯, 이제는 모든 것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마저 든다.

그가 예능에 있든 혹은 공연장에 있든, 음악을 듣는 순간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놀이터에 있는 그 시소가 굳이 수평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다.

5월이다. 봄이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음악을 선물하고 싶다는 어느 날 문득 든다면, 난 이 음반을 선택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이 음반에 실린 '고백'의 코드를 빨리 외우고 피아노 앞에 앉거나 기타를 잡고 연습해야 할 것이고 말이다. '음악이 좋아서라도 싫어하진 않겠지' 하는 위안을 가슴에 품은 채로 말이다. 그나저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보니 이제 정말 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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