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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는 왜 2층 버스가 많을까

[서평] <김영 교수의 영국 문화기행>을 읽고서

등록|2010.05.06 18:31 수정|2010.05.06 18:31

책겉그림〈김영 교수의 영국 문화기행〉 ⓒ 청아출판사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잠깐 영국을 경유한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은 시내 도로가 무척 비좁았지만 2층 버스가 멋져 보였고, 전화통이 모두 빨간색이었다는 것, 그리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물가가 매우 비쌌다는 점이다. 그때 선물로 샀던 벨트와 음악 CD도 매우 고가였던 것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대영박물관이라든지, 버킹엄 궁전이라든지, 엘버트 공 기념비라든지, 템스 강의 타워브리지라든지, 고딕 양식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은 꽤나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특히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로제타스톤이나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과 우리나라의 청자 백자 등은 유서 깊은 소장 역사를 자랑하는 듯했고, 버킹엄 궁전 앞에서 펼쳐진 근위대의 교체식은 그 폼을 한껏 자랑하는 듯했다.

<김영 교수의 영국 문화기행>(청아출판사 펴냄)은 그때의 기억을 어렴풋이 살려주면서도, 더 세심한 관찰과 깨달음을 던져주고 있었다. 이른바 영국 시내는 도로가 좁은 탓에 2층 버스가 즐비하지만, 시내를 벗어난 호젓한 곳에는 구불구불한 도로가 넘쳐나고, 그 옆에다 차를 세우고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개발만능주의 발상을 버린 것으로서, 어떻게 하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고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국 어디를 가나 숲과 공원을 볼 수 있는 증거요, 개인주택이든 공동주택이든 정원과 잔디밭이 있고, 길거리 공원에서도 유쾌하게 걷거나 뛰노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증거란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아파트와 콘크리트로 온통 도배돼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이러한 친환경적인 교통정책과 즐거운 불편을 감내하는 시민들 덕분에 런던 중심가를 벗어나 옛길을 그대로 살린 2차선 도로 옆에는 잔디와 나무들이 자라고, 다람쥐들이 뛰어다니며 새들이 둥지를 틀 수 있게 되었다."(45쪽)

또 있단다.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 온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져 주는 국가건강 서비스 제도가 그것이란다. 안식년을 맞이해 영국으로 들어간 김영 교수도 자신의 건강을 꼼꼼하게 체크해 주고, 또 재촬영까지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그들의 의료복지 시스템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것은 미국의 의료실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지정책임을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김영 교수가 손꼽는 미술관이 있다. 그것은  영국최대의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나 프랑스의 루브르보다 더 작은, 파리의 오르세 같은 규모의 작은 미술관이란다. 바로 서머싯 하우스에 있는 '코톨드 미술관'이 그곳이다.

그가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곳은 코톨드가 세계 유명 미술품을 사들여 시민 문화교육 공간으로 사회에 환원했는데, 거기에는 마네와 세잔과 드가와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의 유명 작품들이 많은 까닭이다. 그만큼 그곳은 미술관의 건물에 압도당하는 제국주의 냄새보다는 오직 그림 자체에 빠져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미술관을 보유한 분들도 그처럼 우리 사회에 환원할 계획은 없을까?

"오래된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영국인들은 쓰던 물건을 버리는 일이 거의 없고, 조상의 손길이 닿는 책들은 특히 소중히 다룬다. 인터넷 시대에도 영구의 고서점들이 망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영국인들의 이러한 앤틱 숭상 관습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런던 대영박물관 앞이나 피카딜리 서커스 옆 골목, 워털루 브리지 밑에는 고서점과 노천 서점이 널려 있고, 웨일스 지방에는 시골 마을 전체가 헌책방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 마을인 '헤이 온 와이Hay-On- Wye'가 있다."(202쪽)

사실 김영 교수는 2008년 7월부터 안식년을 얻어 2009년 8월까지 영국에서 머물면서 참된 쉼을 얻고자 했단다. 그런데 샬럿 홀릭 선생의 미술사 수업 시간과 연계하여 한문강의도 했다고 하니, 그곳에서도 바쁜 일정들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현재 영국에서 한국학 강좌를 개설한 대학이 네 곳이나 있는데  런던대학, 셰필드 대학, 옥스퍼드 대학, 그리고 케임브리지 대학이 그곳이란다.

놀라운 것은 그가 안식년을 맞이하던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는데 그때 많은 한인들과 외국인들은 런던 한인 회관에 차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들러 애도를 표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권양숙 여사에게 직접 위로의 전문을 보낸 사실에 대해 고마움을 품었다고 한다.

대학교수로서 그런 마음을 품은 이유가 뭘까? 그의 몸은 영국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만은 대한민국에 있었던 까닭이다. 우리나라가 영국처럼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완성했다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비민주적인 통치행태로 되돌아 갈 것에 대해 분노했고, 그것이야말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기에 슬픔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그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일곱 명의 인하대 교수와 함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인하대 교수 선언문'을 발표했던 것도 다 같은 이유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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