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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닮은 이팝나무 꽃 아래에서

올 가을, 환하게 웃음 짓는 농민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등록|2010.05.09 10:17 수정|2010.05.09 10:17

▲ 이팝나무 꽃. 초록에 내려앉은 꽃이 하얀 눈을 닮았다. ⓒ 이돈삼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꽃이 하얗다. 눈이 내렸나 싶을 정도로 새하얀 꽃이 수북하게 내려앉았다. 팝콘을 튀겨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이 하얀 꽃 덕분에 거리가 밝아졌다. 하늘빛까지도 환해진 것 같다. 꽃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마음까지도 밝혀준다. 발걸음마저 가볍게 해준다.

이팝나무는 '쌀나무'로 통한다. 꽃의 생김새가 쌀밥처럼 생겨서다. 새하얀 꽃이 정말 쌀밥처럼 생겼다. 꽃잎이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져 나왔다. 꽃잎 하나하나가 모두 흰 밥알처럼 생겼다. 이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는 꽃이다. 듬성듬성 피면 한발과 흉년이 든다고 전해진다.

하여, 옛날 우리 선조들은 이팝나무의 꽃이 만발하기를 바랐다. 그 꽃처럼 쌀밥 한번 배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다. 옛날 쌀밥은 서민들이 감히 먹을 수 없는 귀한 밥이었기 때문이다.

쌀밥은 왕족이나 양반네들만 먹는 밥이었다. 이씨(李氏)들의 밥이었다. 벼슬을 해야만 이씨 임금이 내려주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쌀밥을 '이(李)밥'이라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 이팝나무 꽃. 꽃잎 하나하나가 밥알을 닮았다. ⓒ 이돈삼


▲ 이팝나무 꽃. 봄에 내린 눈 같다. ⓒ 이돈삼


실제 이팝나무는 '이밥나무'의 발음이 변해서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마음씨가 고약했다. 이 집은 평소 잡곡밥만 지어 먹었다. 하루는 며느리가 집안의 큰 제사를 맞아 쌀밥을 짓게 되었다.

모처럼 쌀밥을 짓게 된 며느리는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밥을 잘못 지어 시어머니한테 야단을 맞을까봐서. 그래서 며느리는 밥이 다 될 때쯤 주걱으로 밥알 몇 개를 떠서 먹어 보았다. 뜸이 제대로 들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때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온다. 시어머니는 주걱으로 쌀밥을 퍼서 먹고 있는 며느리를 보고 크게 야단을 쳤다. 며느리가 쌀밥을 몰래 먼저 퍼서 먹는다는 이유였다. 며느리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야단을 고스란히 맞는다.

너무 억울한 며느리는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가 뒷산에 목을 매 죽고 만다. 이 사실을 안 동네 사람들이 며느리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준다. 이듬해 봄, 그 며느리의 무덤에서 흰 꽃이 많이 핀 나무가 돋아난다. 그 꽃이 이밥(쌀밥)을 닮았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쌀밥에 맺힌 한으로 죽은 며느리의 넋이 변해서 핀 꽃이라 여겼다. 그래서 꽃나무 이름을 '이밥나무'라 했다고 한다.

▲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이팝나무 꽃. 하얀 꽃이 주변까지 밝혀준다. ⓒ 이돈삼


▲ 이팝나무 꽃이 활짝 핀 거리. 전남 목포 풍경이다. ⓒ 이돈삼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었으니 올해도 풍년 예감이다. 생각만으로 몸도 마음도 부자가 된 것 같다. 그것도 잠시. 피땀 흘려 농사지은 벼를 쌓아놓고 절규하던 농민들이 떠오른다. 마음이 갑갑해진다. 해마다 시위는 되풀이되지만 농민들의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갈수록 쌀값이 폭락하고 있다.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훨씬 많아서다. 농사기술이 발달하면서 쌀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 게다가 우리 국민들의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 변화하는 식생활 때문이다. 문제는 북녘에 보내오던 쌀 지원이 중단된 데 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때 우리는 해마다 쌀 재고량 가운데 40∼50만 톤을 북한에 보냈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보낸 것이지만, 쌀 재고량 해소에 큰 도움이 된 게 사실.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북한 쌀 지원이 끊겼다. 이는 고스란히 재고량으로 쌓였고, 쌀값 폭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더 암담한 건 이러한 상황이 금명간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올해도 피땀 흘려 가꾼 나락을 난장에 쌓아두고 절규하는 농민들을 봐야 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불길한 예감이다. 제발 괜한 걱정거리였으면 좋겠다.

들녘이 못자리 준비로 분주한 요즘이다. 물론 벌써 모를 심은 조생종 벼논도 있다. 어떻든 농민들이 일한 만큼 보람을 찾았으면 좋겠다. 올 가을에는 제발 농민들의 절규가 아닌, 풍성한 수확 앞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농민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북하게 내려앉은 이팝나무 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 이팝나무 꽃과 아이들. 목포여행에 함께 한 슬비와 예슬이가 이팝꽃을 배경으로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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