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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건 너무 아까워"

[서평] 4대 사막레이스 그랜드슬래머 김효정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

등록|2010.05.11 12:05 수정|2010.05.11 12:05
드넓은 모래언덕과 끝없는 지평선이 먼저 떠오르는 사막에 대한 첫 뚜렷한 기억은 일본 NHK가 만든 <실크로드>라는 TV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낙타를 이끌고 사막을 이동하는 상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사라진 문명의 자취를 찾아가던 영상이 무척 돋보였던 프로그램이다.

그때 진하게 남았던 여운은 모래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 옛 문명의 흔적, 사막에 목숨 건 상인들이 개척해 놓은 신비로운 실크로드, 척박한 땅에서도 자족하며 살아가는 부족민들의 삶과 그들만의 독특한 토속문화 등이다.

도시 문명과 동떨어진 사막은 도시인들에게 대자연의 근본적인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또한 사막이 머금고 있는 척박한 자연환경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신비로움과 때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막은 혹자에겐 생텍쥐페리가 남긴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 한다.

비행기 운항 중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만나 과거 순수했던 꿈과 희망을 되찾는 소설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현장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탈, 그 일상의 일탈과정 속에 자신만의 어린왕자를 찾아 떠나는 '아주 특별한' 사막 여행이 있다.

문명 세계와는 완전히 격리된 사막에서 보통 7일 동안 유목민처럼 생활하며 약 250킬로미터를 완주하는 '서바이벌 사막레이스'(Desert Race)다. 매일 구간별로 짧게는 약 20킬로미터, 길게는 약 80~90킬로미터를 완주하는 롱데이(Long Day)을 포함하는 장거리 사막마라톤대회를 말한다. 

그들이 꿈꾸는 사막, '서바이벌 사막레이스'

▲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 ⓒ 일리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김효정 지음, 일리 펴냄)는 여성으로서 세계 4대 사막레이스를 모두 완주한 여정을 담은 체험기이자 생존 에세이다.

저자 김효정은 모로코 사하라 사막레이스를 필두로 '4데저트 레이스(4Deserts Race)'시리즈인 이집트 사하라 사막레이스, 칠레 아타카마 크로싱, 중국 고비 마치, 남극 레이스를 모두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다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시기 촬영 무대가 됐던 중국에서 경험한 사막과의 첫 인연은 저자를 운명적으로 사막레이스에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으로서 사막레이스에 중도 탈락하지 않고 모두 완주해 낸 도전기는 아프리카와 중국, 칠레와 남극이라는 4대륙을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의 '무한도전' 서바이벌 사막레이스 시작은 '사막레이스 원조'로 불리는 모로코 사하라 사막레이스. 완주 거리는 약 250킬로미터로 7일간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대회다. 저자는 이 대회에서 사막레이스 첫 맛을 톡톡히 경험하며 모두 걸어서 완주했다.

중국 고비사막은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위험구간인 칼 능선이나 차가운 물이 흐르는 강가를 건너야 하고, 높은 산이나 언덕을 계속 오르내리는 코스는 난이도를 높이는 지형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체 게바라의 여정으로도 소개된 칠레 아타카마에서 펼쳐지는 아타카마 크로싱은 특히 '달의 언덕' 코스가 인상깊다. 이곳에선 모든 참가자들이 달리기를 멈추고 대자연 풍광에 감화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하라와 고비, 아타카마사막을 모두 완주하면 참가자격이 주어지는 남극 레이스는 특별하다. 세상의 끝이라는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에서 배로 이동해 남극의 여러 섬을 나누어 달린다. 추위와 남극해의 세찬 파도, 남극 빙설을 뚫고 진행되는 남극레이스를 완주하면 '그랜드 슬래머'로 인정받는다.

대회 사진으로 보는 사막 풍경은 신비롭고도 환상적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야영지 모닥불가에 모여앉아 밤하늘 별을 배경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누구나 한번쯤은 동경해 보는 모습이 아닐런지. 반면 사막레이스에 참가자들의 분투기는 척박한 환경에서 펼쳐지는 사막레이스가 결코 쉽지않은 과정임을 보여준다.

▲ 모로코 사하라 사막마라톤 현장. 손목에 서로 끈을 매달고 시각장애인 친구와 동반주하는 프랑스 참가자. ⓒ 김효정


시리즈로 대회가 펼쳐지는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이 서바이벌 레이스 코스로 선정된 이유는 이곳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인간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오지라는 공통점도 있다.

고비사막은 가장 추운 사막, 아타카마는 가장 건조한 사막, 사하라는 가장 뜨거운 사막으로 통한다. 남극은 광활한 산맥과 빙상으로 이루어진 가장 외진 대륙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사막레이스에 참가하는 것일까? 사막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선 약 2주간의 휴가와 적지않은 경비가 필요하다. 게다가 보통 7일 동안 매일 구간별로 완주하는 대회 성격상 어느 정도 체력적인 준비기간도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다.

저자 김효정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육체의 여행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프를 타고, 낙타를 타고, 안전하게 사막을 여행'하는 것보다는  온몸으로 부딪혀야만 사막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사막레이스에 참가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고, 사막의 밤이 아름다운 것은 해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7일 동안 문명세계와는 완전히 결별된 가운데 사막에서 펼쳐지는 이 특별한 여행은 권태로운 일상이나 지친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삶의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여정이다.

마술 같은 사막 체험,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 고비사막에서 펼쳐지는 고비 마치 현장. 칼 능선을 오르는 참가자들 ⓒ 김효정

이집트 사하라, 중국 고비, 칠레 아타카마, 남극 등 4대 사막레이스를 창설한 매리 개담스는 "사막레이스를 마친 다음에 인생관이 바뀌었다는 참가자들의 편지를 많이 받는다. 참가자 중 30%가 다시 이 대회에 참가한다"고 말한다.

패트릭 바우어가 창설한 모로코 사하라 사막마라톤도 처음 시작한 1986년 이후 대회에 참가한 1만여 명 중에 30%는 모로코 사하라사막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사막의 아름다움을 한 번 맛보면 꼭 다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사막레이스는 사막마라톤대회로 불리지만 참가자들은 사막에서 모두 뛰지 않는다. 각자 자기 능력에 맞게 상황에 따라 뛰고 걷는다. 순위 경쟁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두고 대자연의 속살을 그대로 체험하며 사막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대회다.

4대 사막레이스 참가자들을 분석해 보면, 전 코스를 뛰어서 완주하는 사람은 참가자의 20% 정도. 나머지 60%는 뛰고 걷기를 반복했고, 20%는 모두 걸어서 완주했다. 모로코 사하라 사막마라톤 경우도 참가자 10%는 순전히 걷기만 했으며, 나머지 90% 참가자는 걷고 뛰기를 반복해 완주했다.

구간별로 제한시간이 있지만, 주최 측은 걸어서도 완주할 수 있도록 제한시간을 항상 여유 있게 설정한다. 때문에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완주할 수 있다고 한다. 마라톤대회라기 보다는 사막의 '산티아고 순례의 길', 삶의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는 '오지여행'이 더 어울린다.

"나는 생각했다. 달리느라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놓친다면 정말 아까울거라고. 왜 이 아름다운 사막에서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문명 세계와는 완전히 격리된 척박한 자연, 그러나 아름다운 사막에서 일주일 동안 펼쳐지는 '서바이벌 사막레이스'(Desert Race). 달리기를 멈추고 걸으면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을 수 있는 이 특별한 체험의 마라톤대회가 또 어디 있을까?

불시착한 사막에서 어린왕자를 만나 과거 순수했던 꿈과 희망을 되찾는 조종사처럼, 삶의 현장에서 잠시 일탈한 사막에서 각자 마음 속에 품고 있을 어린왕자를 만나는 기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 칠레 아타카마사막에서 펼쳐지는 아타카마 크로싱 현장. 대회기간 중 밤하늘 별이 쏟아지는 캠핑장 모닥불가에 앉은 세계 각국 참가자들 ⓒ 김효정


-대회운영 및 연혁

참가자들이 식량, 침낭 등 생존에 필수 장비들을 배낭에 넣어매고 일정 기간 동안 일정 거리를 달려야 하는 형식으로 열린다. 주최 측에서는 물, 텐트, 의료서비스만 지원한다. 현재 모로코 사하라 사막마라톤(MDS Marathon des Sables), 4데저트 레이스(4Deserts Race)등 2개 레이스가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MDS는 프랑스인 페트릭 바우어가 지난 1986년에 창설했다. 대규모 서바이벌 사막 마라톤의 원조이며, 총 레이스 거리는 250킬로미터 내외이다. 이틀 동안 80킬로미터 이상을 논스톱으로 달리는 '롱데이'구간과 정규 마라톤 거리에 해당하는 42킬로미터를 달리는 구간이 포함된 대회다.

4데저트 레이스는 최근 급성장하며 주목받고 있다. 4대 사막을 시리즈로 달리는 이 레이스는 오지 서바이벌 레이스 전문 기획사인 레이싱더플래닛(RacingThePlanet)이 주최하고 있다. 4데저트 레이스는 중국 고비사막(Gobi March), 칠레 아타카마사막(Atacama Crossing), 이집트 사하라사막(Sahara Race), 남극(Last Desert)에서 열린다.

고비 마치는 2003년 돈황 부근에서 42명이 참가한 가운데 처음 열렸다. 칠레 아타카마 크로싱은 2004년 7월, 이집트 사하라 레이스는 2005년 9월에 각각 처음 열렸다. 마지막 사막(Last Desert)으로 불리는 남극 레이스는 2006년 1월 막을 올렸다.

-모로코 사하라 사막마라톤 창설자, 패트릭 바우어 

프랑스인으로 청년시절 사진작가였다. 1984년 당시 28세 때 사막 도보횡단을 시도하기로 마음 먹었다. "친구와 이야기 하던 중 갑자기 '사하라를 걸어서  가로질러 보는 것은 어떤까. 생각이 떠올랐다. 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기 위해서!" 그가 밝힌 이유이자 명분이다. 그는 1985년 알제리 남부 사하라사막 350km를 도보로 횡단했다. 그는 매일 밤 사막이 펼쳐보이는 변화무쌍한 마술에 빠져들었다. 사막과 하나되는 감동을 맛보았다.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모로코 사하라사막마라톤을 창설했다. 첫 대회는 1986년 4월. 그동안 41개국에서 1만여 명이 참가. 한국은 2001년에 처음 참가했다.

-4대 사막레이스 창설자, 메리 개담스

그녀는 미국 시카고 태생으로 투자전문가이자 어드벤처 레이스 마니아였다. 레이싱더플래닛(RacingThePlanet)은 1996년 미국 버지니아에서 창설했다. 2001년 홍콩 친구와 함께 100킬로미터 거리의 홍콩 트레일워커(HongKong Trailwalker)를 경험하고 나서, 홍콩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운영사업에 나섰다. 첫 이벤트로 2003년 중국 고비 마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운영회사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어드벤처 레이스 마니아로 60여 차례 마라톤과 어드벤처 레이스에 참가했다. 모로코 사하라 사막마라톤도 수 차례 완주. 울트라마라톤도 완주.

-사막레이스 참가자들은 누구인가. 

대개 자기 영역에서 성취도가 높은 현역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또 많은 참가자는 사회봉사활동을 열심히 한다. 참가자 직업은 전업주부를 포함해 다양하다.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 엄마와 아들, 형제자매가 함께 뛴 경우도 많다. 모로코 사하라 사막마라톤의 경우, 창설자 패트릭 바우어가 프랑스인인 까닭에 그동안 참가자의 약 30%가 프랑스인이었으며, 70%는 전 세계 약 20개국에서 온 외국인들이었다. 여성 참가자가 약 14%를 차지했다. (이상 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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