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동 청년들이 지리산에 간 까닭
대안적인 삶 가꾸는 생명평화공동체학교 '오두막공동체, 민들레공동체, 은실·미정님'
봄이 봄답지 않다. 4월에도 눈이 내리고 장마같은 비가 쏟아지니 올 한해 농사가 어렵겠다는 긴 한숨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게 다 인간의 욕심이 생태계를 파괴해서 생긴 일이라며 '생태적인 삶이 대안'이라는 결론을 쉽게들 내지만 도시 문명 속에서 '생태적인 일상'을 상상하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지난 4월 20일~22일 북한산 자락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농촌에서 생태적으로 살고 계신 분들의 증언을 통해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려고 지리산 자락으로 떠났다.
[오두막공동체] 생명을 가꾸며 스스로 서다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죽이는 죄를 짓는 사람들의 내면에 짙게 깔린 두려움은 교도소에 다녀온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해진 돈에 대한 두려움으로 죄를 지을 가능성이 더 크다. 결국 스스로 식의주 생활을 꾸려갈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이재영(오두막공동체 대표)님은 1980년대 초반부터 출소자에게 힘이 될 글을 엮어서 보내주고,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픈 사람 낫게 해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로움의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것. 함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부산, 울산 등지에서 자활 농장과 그룹홈을 시작했으나 그곳 주민의 반발로 폐쇄되고 이곳 합천군 쌍백면으로 옮겨왔다.
피난처, 쉼터를 뜻하는 '오두막'이란 이름을 짓고, 작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도 담았다. 열 명 남짓한 식구들이 직접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을 온몸으로 보고 느끼면서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유기농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네 할머니들은 풀이 무성한 밭을 안타까워하다가 몰래 비료나 농약을 뿌리고 가기도 한단다. 몸이 아픈 식구가 안심하고 달걀을 먹게 하려고 집에서 직접 만든 사료로 닭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공동체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기반이다.
요즘 공동체에서는 술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식구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 살 날을 꿈꾸며 일터와 보금자리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재영 님은 허름한 포클레인을 구입해 직접 운전해서 죽을 고비도 넘겨가며 산 중턱에 터를 닦아 놓았다. 노동 시간의 절반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쉬거나 공부하면서 내면을 살찌우는 시간으로 보낸다고 하셨는데 곳곳에 심어놓은 작은 꽃들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민들레공동체] 농부의 소박한 삶이 곧 대안에너지요, 대안교육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가난한 이웃을 진실하게 섬길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삶으로 나누려고 농촌에서 공동체로 살기 시작한 지 올해로 벌써 19년째다. 우리나라 농촌뿐 아니라 인도와 캄보디아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립에 필요한 삶의 기술을 가르쳐 주려고 대안기술센터도 세우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려고 민들레학교도 만들었다. 학교에서 특별하게 내세우는 교육 내용은 없다.
그저 민들레공동체의 삶, 가난하고 소박하게 자연과 더불어 자립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교육 철학이고, 그 철학이 곧 학교의 주인이라고 김인수 교장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자연스레 노작 교육이 중시되어 일주일에 하루는 교실이 아닌 논밭에서, 작업장에서 종일 땀을 흘리며 식의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도 기르고,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몸을 만든다. 자립형 인간을 기르는데 지금 개설된 중학교 3년 과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고등과정 개설도 고민하고 있고, 중고등학교에서 대안교육을 받더라도 대부분 대학을 선택하게 되는 현실을 넘어서려고 대안 대학 과정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민들레공동체는 산청 갈전마을 그 근방에서 금방 알아보고 찾아갈 수 있다. 마을 곳곳에 있는 작은 풍력 발전기 덕분이다. 대기업에서 만들어 보급하는 풍력 발전기는 초기 설치비용도 비싸고 이후 관리도 어려워 활용도가 점점 떨어지는데 이곳에서는 나무를 직접 깎아서 쉽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중력과 강한 풍속이 지닌 힘을 역이용한 설계로 값비싼 풍속 감지 장치가 없어도 되니 접근성과 활용 면에서도 '대안'이라 할 만하다.
공동체 식구들이 공동생활하는 집 가까이 가면 대안 에너지 장비를 좀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태양판은 물론 1040℃가 넘는 온도로 밥도 하고 난방도 하는 쉐플러 태양열 시스템, 쌀을 안쳐두고 밭에 일하러 갔다 오면 따뜻한 밥을 지어놓는 우렁이 각시같은 박스형 태양열 조리기, 일한만큼 에너지를 생산해내니 교육효과가 뛰어난 자전거 발전기 등이다. 도심에서는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하는 똥도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인분, 축분, 음식물쓰레기, 나무, 풀 등을 물에 넣어 발효시키면 메탄가스가 나오는데, 1㎥의 양으로 5인 가족이 세 끼 식사를 할 수 있단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건축방법도 대안 에너지를 실천하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열을 차단하는 패시브 하우스로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 bale house)를 건축한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벽돌 대신에 벽과 벽 사이에 단열재로 짚을 쌓는 건축 방식이다. 단열이 잘 되어 냉난방비도 줄고, 실내온도와 습도가 볏짚에 의해 일정하게 유지되니 건강에도 좋다.
대안기술센터 이동근 소장님은 어떤 방식으로 건물을 짓든 낮에 주로 쓰는 공간은 햇볕을 잘 받을 수 있게 남향으로 지어서 공동으로 활용하고 개인 공간은 소박하고 작게 만들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시며, 지속가능한 대안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어떻게 쓰느냐는 더 중요하다고 하신다.
당장 인간의 편리를 위해 쓰고 있는 각종 가전제품이 떠오른다. 냉장고 없으면 당장 못살 것 같지만 자기 먹을거리를 스스로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제철음식이 아닌 것을 먹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저장하려고 필요한 게 아닌가? 민들레 공동체가 결국 이야기하는 대안에너지는 결국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사는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소농 은실·미정] 자급자족하는 삶, 여성 두 명도 가능하다
높은 이상도, 다른 이를 위한 헌신도 아니다. 그저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 바람 하나로, 화학비료나 농약은 물론 기계도 쓰지 않는 농사로 자급자족하겠다는 원칙 하나로 귀농한 언니들이 있다. 합천 가회면에 사는 은실, 미정님이다. 원칙을 굳게 지키려고 질퍽한 땅을 기계 없이 밭으로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귀농 첫 해는 밭 만드는 데만 석 달이 걸렸는데, 이제는 한 달 정도면 충분하단다. 그동안 호미 하나 들고 600평 땅에 갖가지 잡곡과 채소를 심어서 쌀 이외의 모든 식량을 자급하고, 남는 것은 팔기도 했는데, 올해는 밭농사도 200평 더 늘리고 150평 논농사까지 무경운으로 도전할 계획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이들에게 풀은 해결해야할 숙제. 은실·미정 님은 풀과 전쟁을 벌이는 대신 공존하는 길을 선택했다. 풀이 살아야 미생물도 살고 흙도 산다는 것. 식물이 자라는 걸 방해하는 풀은 뽑거나 잘라주고, 민들레나 냉이 같이 먹을 수 있는 풀은 함부로 뽑지 않고 씨가 번질 수 있게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밭에 가득 핀 냉이 꽃이 예쁘다.
두 분이 자급하는 것이 어디 음식뿐이랴. 두 분을 닮은 아담하고 소박한 집은 흙벽돌을 직접 구워서 손수 지었고, 난방에 필요한 땔감도 직접 한다. 입고 있던 통바지도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신다.
마냥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생활에도 갈등과 어려움은 있다. 얼마 전에는 이웃 밤나무 산에 공중에서 농약을 뿌려대는 통에 속앓이를 하기도 하고, 남의 땅을 부치다 보니 개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십승지(十勝地)도 개발만은 피하지 못했다더니,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펼쳐지는 이 곳 작은 마을도 개발 바람이 흔들어대고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가 추진된다면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전국의 땅투기화와 개발 바람에 과거 지주와 소작농의 현실이 현대판으로 재생되는 것 같아 암담하다. "우리 언니들 그냥 농사하게 해주세요" 외치고 싶을 뿐이다.
마음을 씻어주는 만남
자연에 철저히 기대어 자립하고 계신 세 이웃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 세상 어딘가엔 청빈을 감수하고 덕행에 힘쓰는 이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씻기운다"라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음 달에도 생명평화공동체학교가 열릴 예정이다. 이 땅 어딘가에서 소박한 삶을 일구고 있을 사람들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개운하게 씻어줄 수 있는 삶을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구어야지, 다짐한다.
[오두막공동체] 생명을 가꾸며 스스로 서다
처음에는 아픈 사람 낫게 해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로움의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것. 함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부산, 울산 등지에서 자활 농장과 그룹홈을 시작했으나 그곳 주민의 반발로 폐쇄되고 이곳 합천군 쌍백면으로 옮겨왔다.
피난처, 쉼터를 뜻하는 '오두막'이란 이름을 짓고, 작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도 담았다. 열 명 남짓한 식구들이 직접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을 온몸으로 보고 느끼면서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유기농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네 할머니들은 풀이 무성한 밭을 안타까워하다가 몰래 비료나 농약을 뿌리고 가기도 한단다. 몸이 아픈 식구가 안심하고 달걀을 먹게 하려고 집에서 직접 만든 사료로 닭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공동체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기반이다.
요즘 공동체에서는 술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식구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 살 날을 꿈꾸며 일터와 보금자리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재영 님은 허름한 포클레인을 구입해 직접 운전해서 죽을 고비도 넘겨가며 산 중턱에 터를 닦아 놓았다. 노동 시간의 절반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쉬거나 공부하면서 내면을 살찌우는 시간으로 보낸다고 하셨는데 곳곳에 심어놓은 작은 꽃들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 오두막공동체닦아놓은 터전이 꽤 넓고 평평해보이지만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왔다. 새 터전에는 흙부대 건축이 한창 진행중이다. ⓒ 주재일
[민들레공동체] 농부의 소박한 삶이 곧 대안에너지요, 대안교육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가난한 이웃을 진실하게 섬길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삶으로 나누려고 농촌에서 공동체로 살기 시작한 지 올해로 벌써 19년째다. 우리나라 농촌뿐 아니라 인도와 캄보디아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립에 필요한 삶의 기술을 가르쳐 주려고 대안기술센터도 세우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내려고 민들레학교도 만들었다. 학교에서 특별하게 내세우는 교육 내용은 없다.
그저 민들레공동체의 삶, 가난하고 소박하게 자연과 더불어 자립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교육 철학이고, 그 철학이 곧 학교의 주인이라고 김인수 교장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자연스레 노작 교육이 중시되어 일주일에 하루는 교실이 아닌 논밭에서, 작업장에서 종일 땀을 흘리며 식의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도 기르고,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몸을 만든다. 자립형 인간을 기르는데 지금 개설된 중학교 3년 과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고등과정 개설도 고민하고 있고, 중고등학교에서 대안교육을 받더라도 대부분 대학을 선택하게 되는 현실을 넘어서려고 대안 대학 과정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민들레공동체는 산청 갈전마을 그 근방에서 금방 알아보고 찾아갈 수 있다. 마을 곳곳에 있는 작은 풍력 발전기 덕분이다. 대기업에서 만들어 보급하는 풍력 발전기는 초기 설치비용도 비싸고 이후 관리도 어려워 활용도가 점점 떨어지는데 이곳에서는 나무를 직접 깎아서 쉽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중력과 강한 풍속이 지닌 힘을 역이용한 설계로 값비싼 풍속 감지 장치가 없어도 되니 접근성과 활용 면에서도 '대안'이라 할 만하다.
공동체 식구들이 공동생활하는 집 가까이 가면 대안 에너지 장비를 좀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태양판은 물론 1040℃가 넘는 온도로 밥도 하고 난방도 하는 쉐플러 태양열 시스템, 쌀을 안쳐두고 밭에 일하러 갔다 오면 따뜻한 밥을 지어놓는 우렁이 각시같은 박스형 태양열 조리기, 일한만큼 에너지를 생산해내니 교육효과가 뛰어난 자전거 발전기 등이다. 도심에서는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하는 똥도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인분, 축분, 음식물쓰레기, 나무, 풀 등을 물에 넣어 발효시키면 메탄가스가 나오는데, 1㎥의 양으로 5인 가족이 세 끼 식사를 할 수 있단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건축방법도 대안 에너지를 실천하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열을 차단하는 패시브 하우스로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 bale house)를 건축한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벽돌 대신에 벽과 벽 사이에 단열재로 짚을 쌓는 건축 방식이다. 단열이 잘 되어 냉난방비도 줄고, 실내온도와 습도가 볏짚에 의해 일정하게 유지되니 건강에도 좋다.
대안기술센터 이동근 소장님은 어떤 방식으로 건물을 짓든 낮에 주로 쓰는 공간은 햇볕을 잘 받을 수 있게 남향으로 지어서 공동으로 활용하고 개인 공간은 소박하고 작게 만들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시며, 지속가능한 대안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어떻게 쓰느냐는 더 중요하다고 하신다.
당장 인간의 편리를 위해 쓰고 있는 각종 가전제품이 떠오른다. 냉장고 없으면 당장 못살 것 같지만 자기 먹을거리를 스스로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제철음식이 아닌 것을 먹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저장하려고 필요한 게 아닌가? 민들레 공동체가 결국 이야기하는 대안에너지는 결국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사는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민들레공동체대안기술센터 이동근 소장님이 풍력발전기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다. ⓒ 김수연
[소농 은실·미정] 자급자족하는 삶, 여성 두 명도 가능하다
높은 이상도, 다른 이를 위한 헌신도 아니다. 그저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 바람 하나로, 화학비료나 농약은 물론 기계도 쓰지 않는 농사로 자급자족하겠다는 원칙 하나로 귀농한 언니들이 있다. 합천 가회면에 사는 은실, 미정님이다. 원칙을 굳게 지키려고 질퍽한 땅을 기계 없이 밭으로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귀농 첫 해는 밭 만드는 데만 석 달이 걸렸는데, 이제는 한 달 정도면 충분하단다. 그동안 호미 하나 들고 600평 땅에 갖가지 잡곡과 채소를 심어서 쌀 이외의 모든 식량을 자급하고, 남는 것은 팔기도 했는데, 올해는 밭농사도 200평 더 늘리고 150평 논농사까지 무경운으로 도전할 계획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이들에게 풀은 해결해야할 숙제. 은실·미정 님은 풀과 전쟁을 벌이는 대신 공존하는 길을 선택했다. 풀이 살아야 미생물도 살고 흙도 산다는 것. 식물이 자라는 걸 방해하는 풀은 뽑거나 잘라주고, 민들레나 냉이 같이 먹을 수 있는 풀은 함부로 뽑지 않고 씨가 번질 수 있게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밭에 가득 핀 냉이 꽃이 예쁘다.
두 분이 자급하는 것이 어디 음식뿐이랴. 두 분을 닮은 아담하고 소박한 집은 흙벽돌을 직접 구워서 손수 지었고, 난방에 필요한 땔감도 직접 한다. 입고 있던 통바지도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신다.
▲ 은실·미정 님 집손수 지었다는 흙집. 왼쪽 건물이 집이고 오른쪽은 창고로 쓴다. 집 앞에 눈썹 모양 논에는 물을 받아두었는데 꼭 잔잔한 호수 같다. ⓒ 김수연
마냥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생활에도 갈등과 어려움은 있다. 얼마 전에는 이웃 밤나무 산에 공중에서 농약을 뿌려대는 통에 속앓이를 하기도 하고, 남의 땅을 부치다 보니 개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십승지(十勝地)도 개발만은 피하지 못했다더니,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펼쳐지는 이 곳 작은 마을도 개발 바람이 흔들어대고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가 추진된다면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전국의 땅투기화와 개발 바람에 과거 지주와 소작농의 현실이 현대판으로 재생되는 것 같아 암담하다. "우리 언니들 그냥 농사하게 해주세요" 외치고 싶을 뿐이다.
마음을 씻어주는 만남
▲ 농사이야기마을회관에서 은실·미정님과 농사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 주재일
자연에 철저히 기대어 자립하고 계신 세 이웃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 세상 어딘가엔 청빈을 감수하고 덕행에 힘쓰는 이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씻기운다"라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음 달에도 생명평화공동체학교가 열릴 예정이다. 이 땅 어딘가에서 소박한 삶을 일구고 있을 사람들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개운하게 씻어줄 수 있는 삶을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구어야지,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름다운마을신문>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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