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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관리들 접대하기 위한 밭이 있었다

[포구기행] 공수마을의 지명 유래와 기장 8경 시랑대

등록|2010.05.14 15:05 수정|2010.05.14 15:06
<포구> - 김상용   슬픔이 영원해 사주에 물결은 깨어지고 묘막한 하늘 아래 고할 곳 없는 여정이 고달파라 눈을 감으니 시각이 끊이는 곳에 추억이 가엾고 깜박이는 두셋 등잔 아래엔 무슨 단란의 실마리가 풀리는지 별이 없어 더 서러운 포구의 밤이 샌다.  

▲ 포구기행 ⓒ 송유미

  포구와 항구는 어떻게 다를까. 포구(浦口)는 배가 드나드는 항구를 말하고, 항구(港口)는 자연 지형이나 인공 구조물로 풍랑을 방지하고 선박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곳으로, 수륙 교통의 결절점(結節點) 기능을 갖는 장소·시설을 말한다, 고 사전은 풀이한다.   그렇다면 공수마을은 포구에 속한다. 공수 마을은 부산시 기장군 시랑리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마한 어촌마을로, 해운대구 송정 해수욕장에서 기장으로 해안도로 따라 달리면 맨 처음 만나게 되는 마을이다.  

▲ 아주 작은 어촌, 공수 마을 ⓒ 송유미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송정역과 송정 시내 버스 종점까지 도보여행이 가능한 코스다. 마을은 예로부터 비오리라는 새가 많이 살아서 '비오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관청의 경비나 출장 온 관리의 숙박이나 접대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마련한 밭(공수전)이 많아서, '공수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관광안내판에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었다.   

▲ 비오리 떼가 많아, 마을 이름이 비오개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아름다운 공수마을 ⓒ 송유미



그런데 관리의 접대비 충당이라는 표현에, 문득 얼마 전 뉴스로 접한 검찰 접대 보도 기사가 떠올랐다. 그 옛날 관리라면 목민관을 이르고, 그 목민관은 요즘 검찰청의 막강한 사법권을 행할 수 있는 관리들이 아닌가. 그래서 설명하기 힘들지만 약간 기분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 마을 이름을 차라리 '비오개'로 개칭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공수 마을 ⓒ 송유미




  아무튼 공수 마을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해안을 따라 형성된 해안길은 관광객들을 위해 잘 정비되어 있었다. 통나무로 만든 해안산책로 따라 걷노라니 어부들의 그물 손질 등 고깃배들이 떠나는 출항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이 마을은 '해안식물 체험', '후릿그물 체험', '해조류, 해안동물 체험' 등 다양한 '어촌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하고 있어, 휴일이 아닌데도 학부모들과 어린 아이들이 많았다.  

▲ 공수마을 ⓒ 송유미


  해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바다에는 후릿그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후릿그물은 해안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배를 이용하여 U 자형 그물을 치고 그 가운데를 고정한 뒤 양쪽 끝줄이 달린 그물을 육지에서 끌어당겨 그 안에 있는 생물을 잡는 전통어법.  

▲ 후릿그물 어촌 체험 등 다양한 어촌 관광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공수마을 ⓒ 송유미

  이 어법은 바다의 지층과 표층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을 모두 채집할 수 있어, 이곳의 연안에 서식하고 있는 바다 생물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오색찬란한 '원앙새'로 일러지고 있는, 하얀 비오리 떼는 날씨 탓인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 공수 마을 관광 안내도에서 지워진 시랑대, 공수마을에서 가는 길이 없어서이라는데요. ⓒ 송유미

기장 8경 중 오경에 속하는 시랑대는 목측에 보이는데 가는 길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관광 안내판에도 하얀 수정액으로 지워져 있었다. 예까지 온 것은 시랑대의 절경을 가까이 즐기려 함이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멀리서 바라보는 시랑대의 풍경 또한 일품이었다. 시랑대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주 먼 옛날 한 젊은 스님이 가뭄이 찾아와 마을사람들이 스님에게 기우제를 지내달라고 청하니, 스님은 기우제를 지냈다. 그런데 기우제를 지낸 날 밤, 스님은 어두운 동굴에서 선녀 같은 여인(용녀)만났다.  

▲ 기장 8경의 5경 시랑대, 기장군 기장읍 시랑이 동암마을 남쪽 해변 암대로 예로부터 기장 제일 명승지 ⓒ 송유미


  젊은 스님은 미모의 용녀에게 첫눈에 사랑에 빠져 그날 밤을 함께 보낸다. 그 후 스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용녀를 찾았고, 용녀는 스님의 아이를 가진다. 용녀는 시랑대에서 몸을 푸는데, 용녀의 진통을 겪는 소리를 용왕이 듣고, 용녀(딸)가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리하여 용왕은 파도를 일으켜 용녀와 아이를 휩쓸고 가버리고, 스님은 용녀와 아기를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바다로 뛰어들곤 만다. 그러나 진노의 바다에 스님은 삼켜지고 만다.    이후 하늘의 옥황상제가 천마를 바다로 내려 보내 용녀와 아기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가고, 스님은 바다에 남아 구천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이 마을 사람들은 보름달이 뜬 밤이면 스님이 용녀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파도 속에서 들린다고 믿고 있다고 전해진다.  





▲ 공수 마을 ⓒ 송유미

  아름다운 전설이 깃든 시랑대. 길이 막혀 있어도 어딘가 시랑대 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싶어 어옹(漁翁)에게 길을 여쭈니, 시랑대 가는 길은 있긴 하지만 가기 힘들 거라 했다. 그래서 다시 여쭈니, 용궁사가 들어서면서 '대변항'으로 나가는 해안길이 그만 막혔단다.   해안길로 내려가서 어떻게 힘들게 길이 아닌 길로 시랑대에 갈 수는 있을 듯했으나, 정도(正道)는 없는 듯했다. 어옹은 공수마을에서 대변 해안길 가는 길이 하루바삐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 했다.   함께 한 일행들의 바쁜 일정 때문에 절경의 '시랑대' 관광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하얗게 반사되는 바닷빛에 지워진 듯 희뿌옇게 나타나는 시랑대, 그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슬픈 전설만큼  길은 벽처럼 가로 막혀 있었다. 마치 젊은 스님의 아쉽고 슬픈 사랑의 길처럼….  

▲ 해안 산책로 ⓒ 송유미



덧붙이는 글 지난 5월 11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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