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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응원가의 계절을 맞이하며

등록|2010.05.15 16:06 수정|2010.05.15 16:06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목전이다. 외국의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늦은 시간, 혹은 너무 이른 시간까지 TV 앞에서 졸며 고군분투했던 이들이 어머니와 와이프 그리고 축구 문외한들에게 당당할 수 있는 기간이다. "나 어제 축구 보느라 새벽에 잤어"라고 떳떳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즌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장사꾼들에게 월드컵은 4년 주기로 찾아오는 대목이다. '월드컵 특수'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호프집, 카페, 통닭집 등 스크린만 있다면 늦은 시간까지 많은 손님을 끌어 모을 수 있다. 기업 역시 각종 이벤트를 통해 월드컵 특수를 노린다. 월드컵 특수에 가장 큰 빛을 발하는 기업은 역시 KT다.

2001년 한국통신에서 KT로 이름을 바꾼 뒤, 2002년 월드컵 공식파트너로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당시 KT가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는 'Korea Team Fighting'이었는데, 이것을 자연스레 KT fighting으로 연계시켰다. 2002년 월드컵 이후 2006년, 그리고 올해 역시 KT는 각종 캠페인과 홍보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장사꾼이 월드컵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문화콘텐츠를 파는 사람들에게 월드컵은 재앙이다. 영화나 연극은 예년에 밑도는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고, 방송가는 평소의 프로그램 대신 월드컵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안 된다.

월드컵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는 음악시장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음반시장에 월드컵은 악재일 수밖에 없다. 대신 월드컵 기간에는 '월드컵 응원가'라는 반짝 시장이 열린다. 하지만 누구나 알듯이 이 시장에서 흑자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가요계에서 월드컵 금맥의 주인공하면 단연 윤도현 밴드(이하 YB)다. 2002년의 붉은 물결에 휩쓸려 국민응원가로 자리매김한 '오 필승코리아'는 본래 크라잉넛의 목소리로 붉은악마의 공식앨범 'With you'에 수록된 곡이었다. 우리에게 친근한 YB 버전은 SK 텔레콤이 광고에 쓰기 위해 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전 이후 주문이 쇄도하여 음반으로 나오게 됐다. '오 필승코리아'와 함께 록 사운드로 편곡한 '아리랑'도 좋은 반응을 얻어, YB에게 '국민 록밴드'란 칭호를 가져다준다. 인지도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2006년 월드컵에서도 록 버전 '애국가'를 통해 월드컵 가수의 명성을 이어간다.

그러나 2006년 작곡가 이근상과 붉은악마 사이에서 '오 필승코리아'에 대한 저작권 공방이 발발한다. 이 사건 뒤 YB는 그들이 발표한 응원가의 수입금을 '아름다운 재단'에 영구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YB는 국민응원가로 만들어진 수익이 다시 국민에게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YB는 팬과 장사꾼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케이스이지만, YB처럼 월드컵 덕을 보기란 쉽지 않다. 최근 대형가수들이 월드컵에 아랑곳 않고 컴백을 단행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예전과는 달리 월드컵을 정면 돌파하려는 움직임'이라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격려의 박수를 보내긴 이르다.

월드컵을 몇 주 앞둔 근래에 활동을 시작해야 월드컵시즌에 활동이 가능하다. 공백기를 가진 가수가 곧바로 월드컵이란 파도를 넘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월드컵 시즌에 활동 하기위해선 높은 인지도가 필요하다. 신인이나 인지도가 낮은 가수는 월드컵 축하공연이나 행사 따위에 참여하기 어렵다. 때문에 앨범 활동 중인 대부분의 가수들도 월드컵 기간 동안은 잠정휴업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4년 주기로 찾아오는 이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기획사들이 붙잡은 지푸라기는 월드컵 응원가다.

월드컵 개막이 가까워지면서 우후죽순처럼 응원가가 발표되고 있다. '응원가 난립이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란 의견과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응원가는 다다익선 아닌가?'란 의견이 분분하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음원을 무료로 배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벨소리나 BGM 시장에선 여전히 월드컵 응원가는 돈 되는 상품이다. 응원가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한 기업과 각종 상품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붉은악마의 마찰은 올 월드컵에도 여전할 것이라 예상된다. 재미있게도 그동안 사랑 받았던 응원가는 공식 지정곡보단 붉은악마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응원가들이었다.

2002년의 '오 필승코리아(크라잉넛)', '아리랑(윤도현 밴드)'과 2006년의 'Reds Go Together(버즈)', 승리를 위하여(트랜스픽션) 모두 붉은악마가 제작한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다. 즐기기 위해 만든 콘텐츠에 기업의 손이 닿는 순간 그 의미가 변질되는 것은 일순간이지 않았던가?

응원가의 장르도 눈여겨 볼 만한다. 2002년에는 록이 주를 이루었지만 2006년에는 트로트, 랩, 크로스오버 등의 장르로 확대 되었다. 2010년 월드컵응원가는 여성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붉은악마 공식앨범에 참여한 애프터스쿨을 필두로 티아라, 카라가 그 뒤를 이어 응원가를 발표하였다.

아직은 응원가에 대한 반응이 밍숭맹숭하지만 본격적인 월드컵시즌이 되면 응원전 붐이 다시 일 것이다. 발랄한 응원가가 하나·둘 발표되고 있지만, '역시 응원가는 록'이란 필자의 고정관념을 깨줄 응원가가 아직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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