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 볼만한 게 뭐 있나 했더니...
'천년 목사고을'답게 고분에서 목사내아까지 옛 문화유산 지천
▲ 나주목사내아 금학헌. 당시 나주목사의 살림집이었다. ⓒ 이돈삼
나주는 여행지로서 '별로'다. 담양이나 곡성처럼 가볼만한 곳이 많은 것도 아니다. 강진이나 해남처럼 문화유산이 지천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완도나 신안처럼 이국적인 섬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나주는 그저 그런 곳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가볼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선입견일 뿐이다. 한동안 나주는 여행객들의 마음에서 조금 밀려나 있었던 게 사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지만 크게 치장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나주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세 생각이 달라진다. 고대 영산강문화를 꽃피웠던 나주는 크고 작은 문화유적을 곳곳에 품고 있다.
고찰 불회사도 백제의 불교전파 경로를 밝혀주는 중요한 사찰이다. 덕룡산 자락에 있는 절로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영광 불갑사에 이어 두 번째로 지은 절이다. 고찰답게 비자나무와 편백나무 어우러진 숲이 압권이다.
▲ 고찰 불회사. 백제시대 불교 전파 경로를 밝혀주는 중요한 사찰이다. ⓒ 이돈삼
▲ 나주목사내아 '금학헌'. 여행객들의 숙박체험 공간으로 개방되고 있다. ⓒ 이돈삼
나주는 '천년 목사고을'로 통한다. 고려 성종 때(983년) 설치한 12목 가운데 하나였던 나주목(羅州牧)이 설치됐던 곳이다. 나주목은 1896년 나주관찰부가 폐지될 때까지 1000년 동안 이어졌다. 이 기간 나주목사 306명이 부임해 와 호남을 다스렸다. 목사는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 정도 되고, 나주는 또 도청소재지쯤 되겠다.
나주목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지금도 많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돌로 쌓은 성인 남고문이 있다. 금성관은 조선시대 나주목의 객사로 사신과 관리들이 묵어가던 곳이다. 1487년부터 3년 동안 재임했던 나주목사 이유인이 처음 세웠다. 그 이후 증·개축을 거치고 일제강점기 땐 나주군청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1976년 해체 복원됐다.
금성관 서쪽엔 2층 누각에 북을 매달아 놓은 '정수루'가 있다. 읍성의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려줬다는 북이다. 그 옆으로 나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나주목문화관'도 있다. 나주목사의 행차 장면을 모형으로 실감나게 재현해 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 나주목사내아. 여행객들의 숙박체험 공간으로 개방되고 있다. ⓒ 이돈삼
▲ 나주목사내아. 오른쪽에 서있는 나무가 벼락 맞은 팽나무다. ⓒ 이돈삼
나주목문화관 바로 옆에 있는 목사내아(牧使內衙)는 나주목사의 관저이면서 살림집이었다. 거문고 소리에 학이 춤을 추는 곳이란 뜻으로 '금학헌(琴鶴軒)'이라 불린다. 그만큼 아늑하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건물은 ㄷ자으로 배치돼 있다. 안채는 관아의 살림집답게 당시 상류사회의 생활공간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나주목사내아는 관광객들의 체험 숙박시설로 개방돼 인기를 얻고 있다. 방 크기에 따라 하루 5만∼15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복식체험과 다도(茶道), 널뛰기, 투호놀이 등 다양한 민속체험도 즐길 수 있다. 고택에서의 하룻밤이 오래도록 기억될 특별한 체험으로 남는다.
목사내아에 500살 된 벼락 맞은 팽나무도 있어 눈길을 끈다. 벼락을 맞은 나무는 벌어진 부분을 황토로 봉합하고, 가지를 쇠사슬로 묶어 지탱하는 수술을 받았다. 예부터 사람들은 벼락 맞은 나무가 예상치 못한 큰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지금도 이 나무에 소원을 비는 관광객을 가끔 볼 수 있다.
목사내아에서 가까운 곳에 나주향교도 있다. 호남에서 전주와 함께 쌍벽을 이룬 고을답게 향교의 규모도 크다. 내외삼문을 지나 대성전이 있고, 뒤편으로는 강학을 하던 명륜당이 있다.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서재가 명륜당을 향해 나란히 서 있다.
▲ 국악공연. 정수루 앞에서 펼쳐진 역사재현 프로그램이다. ⓒ 이돈삼
나주의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역사재현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지난 4월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토요일 금성관 일원에서 펼쳐진다. 지난 15일엔 국악공연과 수문장 교대의식이 행해졌다. 오는 22일엔 전통혼례와 수문장 교대의식을 선보인다. 6월부터선 수문장 교대의식 외에도 송사, 나주목사 부임 행차 등을 재현한다.
뿐만 아니다. 영산포는 내륙 물류의 중심지였다. 홍어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영산강 주변을 중심으로 발달한 쪽물 염색은 '나주천연염색문화관'을 탄생시켰다. 다도면에 있는 도래마을은 풍산 홍씨의 집성촌으로, 전통 한옥마을이다. 이렇게 나주는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의 숨결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 가히 천년 목사고을답다.
▲ 나주천연염색문화관. 영산강변, 나주시 다시면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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