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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기자, 음악과 예술에 빠지다

SBS 기자 김수현의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등록|2010.05.17 15:11 수정|2010.05.17 15:11

▲ 책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 ⓒ 음악세계

흔히들 문화부 기자라고 하면 매일 공연 보러 다니고 공짜 티켓을 수시로 얻을 수 있어서 행복한 직업이라고 한다. 공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화부 기자를 꿈꾸게 되지만, 막상 문화부 기자 입장에서는 어떤 느낌일까?

책 <나도 가끔은 커튼콜을 꿈꾼다>는 SBS 문화부 김수현 기자의 솔직담백한 기자 생활 체험기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연주와 음악 듣기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문화부 기자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문화생활을 누리게 된다. 매일 같이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들으러 다니지만, 언제나 새로운 기분이라는 고백은 그녀가 얼마나 자기 직업을 즐기는지 느끼게 한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평소 우리가 흔히 알지 못하는 음악가들도 꽤 있다. 강원도 양구 시골마을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동네 이발소에서 일하던 기타리스트 안형수. 그는 이유 없이 기타가 좋아 혼자 연주법을 익히고, 경기도 광명의 작은 기타 공방에 취직해 기타 만들기를 직업으로 삼는다.

공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낮에는 기타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기타 연습을 했던 안형수씨는 한국기타협회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한다. 유명 음대생들을 제치고 최고의 영광을 안았으니 대단하다고 칭송할 만하다. 이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던 어느 교수의 권유에 따라 그는 음대에 진학한다.

대형 악기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고, 졸업 후에는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거리에서 악사로 활동하거나 다른 사람의 머리를 깎아주며 공부를 했다는 그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안형수씨를 처음 인터뷰하면서 김수현 기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명색이 클래식 음악가라는 사람이 레슨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텐데도 작은 레스토랑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레슨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돈은 지금도 살 수 있을 만큼 번다고 짧게 답한다.

기타를 하면서 다른 것은 잊은 채, 그냥 무조건 좋아서 연주를 한다는 명쾌한 답변에 감동이 밀려온다. 그는 음반을 내고 몇 차례 방송 출연 요청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한다. 이렇게 당당하던 그가 손가락 통증으로 연주를 못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재활 치료를 통해 마비되었던 손가락이 제자리도 돌아오고, 안형수씨는 얼마 전 <사랑의 인사>라는 새 음반을 발표했다. 인생의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음악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그래서 저자는 그의 이야기를 맨 첫 장에 올려놓은 것 같다.

책에는 안형수씨 외에도 감동적으로 삶을 꾸려온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많다. 국립발레단의 무용수 김지영, 김용걸씨를 인터뷰하면서 부상으로 인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는 김지영씨의 눈물을 보고 저자 또한 함께 눈물짓게 된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그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처음에는 김지영씨의 눈물을 보고 '이거 정말 생생한 인터뷰가 되겠다'고 좋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춤이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이 2년 동안 춤을 추지 못했다는 말에 그 좌절감고 고통이 느껴져 결국 함께 눈물짓고 만다.

2007년 김지영씨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승급했고 김용걸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강단에 서고 있다. 이들의 성공에 저자 또한 함께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의 고통과 좌절, 눈물과 환희를 함께 경험했기 때문이다. 문화부 기자로서 자신의 삶에 보람을 느낄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예술 애호가는 이외에 또 다른 이유로 눈물 흘릴 때도 있다. 바로 거장들이 힘을 잃고 쓰러져가는 모습을 볼 때다. 가장 안타까우면서 속상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김 기자의 경우는 학창 시절 미치도록 사랑했던 부닌의 연주를 어른이 되어 듣고서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힘들어 보였다. 지속되는 음을 치는데도 손가락에 여러 차례 힘을 주며 건반을 눌러대는 모습이 어색하고 생경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부닌의 모차르트에서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섬세하고 영롱한 모차르트 음악 특유의 색깔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중략) 그의 음악에는 예전 같은 광채가 없었다."

저자는 부닌의 연주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고 고백한다. 희망과 절망, 기대와 불안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던 10대의 끝자락을 함께 했던 부닌. 그러나 이제 세월의 흔적이 뚜렷한 모습으로 돌아온 부닌. 결국 저자는 조용히 자신의 기억 속 젊은 부닌을 떠나보낸다.

책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기자로 살아가면서 경험한 다채로운 이야기도 함께 들어 있다. 극단 <학전>이 기획한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기에 좋다. 이 연극에는 이혼 가정, 텔레비전에 빠져 사는 아이, 학원에 치인 아이 등 요즘 세상에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어린이 공연이 흔히 내세우는 '꿈과 환상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상상 속의 동물도 없고, 요정도, 마녀도, 보물섬도 나오지 않지만, 가장 일상적인 우리 어린이의 생활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준다. 자칫 지루할 듯하지만 아이들도 즐거워하며 볼 수 있는 뮤지컬이다.

저자는 작품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마치 자기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뜨끔했다고 한다. 등장하는 아이들의 엄마는 합리적인 엄마가 되려 하지만 항상 바쁘고 일에 치여 아이들의 투정을 차근차근 들어줄 여유가 없다. 간혹 가다가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곧 후회하기도 한다.

예술 공연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저자가 공연을 통해 얻는 느낌처럼 예술 작품 속에는 나의 감정과 동화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내 슬픔을 끌어올리는 음악, 숨어 있던 기쁨을 발견하게 하는 연극 대사들이 없다면 누가 공연장을 찾을까?

굳이 문화부 기자가 아니더라도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글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문화를 전달하는 기자도 존재하지만, 그걸 향유할 줄 아는 수많은 관객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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