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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39회)

반지의 비밀 <1>

등록|2010.05.18 11:41 수정|2010.05.18 11:41
형조정랑을 지낸 최경식(崔慶軾)은 쉰이 넘은 선비로 후궁이었던 딸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자 세상일에 흥미를 잃고 낙향해 버렸다. 고향 여주로 돌아와 찾아온 손님과 사랑채에 앉아 세상에 전하는 은밀하고 기이한 얘길 듣는 것을 낙으로 삼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처지였다.

늦가을 비가 메마른 땅을 촉촉히 적실 무렵 한 사내가 예닐곱 얘기꾼이 기거하는 행랑채를 찾아들었다.

"시생은 사헌부에 지평으로 있는 정약용으로 숙부이신 이판 대감의 부탁으로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최정랑의 따님인 최비(崔妃) 마마의 죽음에 의문점이 많다 하셨습니다."
"내게 무얼 원하시오?"

"주검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주검을?"
"그리해야 사인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인을 알면 그렇게 만든 자를 징벌할 수가 있는가? 아니면 그냥 덮자는 건가. 그 아인···, 음식을 잘못 먹고 급체로 세상을 떠났네. 오즉 급했으면 늙은 아빌 앞질러 갔겠소."
"하오나 후궁으로 들어간 따님께선···."

"후궁이라···. 죄 지은 자를 그리 부르면 자네 역시 크나큰 봉변을 당할 것이네. 그 아이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으니 주상께선 그 아이 죽음을 입 밖에 내지 말라하질 않았는가. 하긴, 그게 주상의 뜻이겠는가? 아직도 삼사(三司)를 움켜쥔 사대부들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거늘 그 아이 무덤을 파헤쳐 뭘 어쩌자는 건가? 부질없는 일일세."

"따님께선 민망한 죄를 얻었습니다만 그게 합당한 것인지 시생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이 사람, 정 지평!"
"말씀하십시오."

"그 아이가 궁 안을 벌거벗은 채 돌아다닌 건 궁원사람은 모두 알고 있네. 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시며 별감이 다 보고 확인했는데 이제 와 무얼 어쩌자는 건가. 설령 아이의 죽음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는 것만으로 일을 처음처럼 뒤집어 놓을 수 없네. 그게 왕명이고 궁 안 일이네."

"허나, 시비를 가려 따님의 죄를 신원(伸寃)시키는 것보단 크지 않다 봅니다. 이 일을 묵과하시면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따님께선 안고 가십니다."

"그렇다 하여 어찌 하리···. 내가 나서는 건 주상 전하의 명을 기망하는 것이니 역모에 해당하는 중죄네. 그 점 알고 있는가.  부모된 자가 자식의 억울한 죽음에 어찌 의문을 품지 못하겠는가. 그 아이 주검을 집으로 가져오던 날 꿈을 꿨지 뭔가. 발이 여덟인가 아홉 개인 거미란 놈이 천장에서 내려와 죽은 아이 몸에 올라가더란 말일세. 그때는 몰랐는데 다음날 똑같은 꿈을 꾸자 이상히 여겨 점쟁이에게 물었더니 장차 귀인이 찾아와 딸아이의 원한을 풀어줄 거라 했네. 해서, 처음부터 봉분은 세우지 않았지만 가묘(假墓)를 만들고 주검은 다른 곳에 안치했네. 풍수사 얘기론 그 자린 통풍이 잘 되니 주검이 당분간 썩을 일이 없다 했네."

주검이 안치된 장소를 일러 받고 집을 나서자 누군가 바로 따라 붙었다. 다모(茶母) 송화였다.

"어찌 되셨습니까?"
이렇게 물을 법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얼핏 돌아보니 부슬거리는 가을비를 한손으로 받아내며 손가락으로 튀기는 장난질을 하고 있었다.

"갔던 일은 알아 봤느냐?"
"이판 대감께서 이 서찰을 주셨습니다."

송화가 건넨 서찰엔 후궁 최씨와 연적 관계에 있던 숙원 이씨(淑媛 李氏)에 대한 기록이 쓰여 있었다. 궁 안의 흐름과 최근 주상 전하가 후궁 최씨를 총애했다는 것과 이를 숙원 이씨가 몹시 투기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찰을 품에 갈무리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검이 묻힌 곳이 어디라 했나. 북으로 양평 쪽이고 거기 우두산(牛頭山)이 있겄다? 오늘은 여주 관아에서 하룻밤 신세를 져야겠다."

그날은 여주 관아에서 쉬고 다음날 일찍 길을 떠났다. 관아에서 일러 받은 대로 주검이 있는 장소 가까이 낡은 사당이 있고 그 곁에 금역 지역을 설치한 팻말과 오래된 묘기(墓基)가 있었다. 묘는 파헤쳐진 채 몰골이 흉했다.

"이곳은 양시(養尸)의 땅이니 금역 지역이지. 이곳에 묘를 쓰면 시신의 치아와 머리칼이 길어나고 몸이 썩지 않은 곳으로 알려졌다. 가만, 이쯤이라 했는데···."

이마에 오른손을 칼날처럼 세워 정약용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곳에서 20보(步)쯤의 위쪽에 있는 조그만 동굴이 있었다. 생각했던 대로 그곳에 주검이 있었다. 석관에 넣어진 주검은 잠을 자는 것처럼 평온했지만, 최정랑도 딸의 죽음을 규명해 볼 심산인지 시신을 방부처리해 둔 상태였다. 근처엔 불을 켤 수 있도록 황촉과 부싯돌이 준비돼 있었다.

불을 켜고 옥비녀를 꺼내들었다. 이런 죽음엔 시신이 상하든 그렇지 않든 독물에 중독됐는지의 여부를 살피는 게 급선무였다.

"입안에 넣어라."

송화는 시키는 대로 행했다. 은비녀를 찔렀다 꺼냈지만 독물에 중독된 흔적은 없었다.
"이럴 게 아니라 시신을 관 뚜껑 위로 올리자."

내려놓은 관 뚜껑 위에 주검을 올리고 송화가 옷을 벗겼다. 얼음처럼 차가와진 시신을 만지는 그녀의 손끝이 움츠러들었다. 정약용이 미소를 깨물며 한 마디 던졌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서로 때리면서 싸우다 잠깐 사이에 한 사람이 땅에 엎어졌다. 물론 기절했겠지. 당연히 목격자가 있었으나 시신을 살피는 검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지 알겠느냐?"

"겨울이기 때문에 상흔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 겨울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느냐?"
"일단 구덩이를 파야합니다."

"깊이는?"
"2척입니다."
"길이는?"

"주검의 길고 짧음에 맞춰야 합니다. 일단 구덩이 안에 장작을 넣고 불을 피워 그 안이 데워지면 시신을 넣고 옷가지를 덮습니다. 시체가 따뜻해지면 다시 꺼내 술과 초를 종이에 뿌려 치명한 상흔을 찾아냅니다."
"바로 보았다."

송화는 곧 일을 착수했다.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솔가지를 넣어 안을 덥힌 후 주검을 넣었다 다시 꺼냈다. 가져간 술과 초를 종이에 뿌려 온몸에 붙인 후 약간의 시간이 경과해 돌아선 채로 물었다.

"상흔이 나타나느냐?"
"없습니다."
"등 뒤는 어떠냐?"

"역시 없습니다."
"칼이나 목을 매단 흔적이 없고 배는 가라앉은 듯하나  독물에 중독된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아마 갑자기 놀랐거나 끔찍한 일을 당해···."

"아니다, 이건 중독이다! 은비녀에 묻어나지 않지만 이것은 중독이다!"
정약용은 자신 있게  단정해 버렸다.

"파시(破視)를 준비해라!"
"예에?"
"어찌 놀라느냐?"

"그건 나라 법으로 금한 것인데···."
"상흔이 없고 외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은비녀에 독물이 묻어나지 않은 일이라면 파시 외엔 방법이 없다. 어서 준비해라!"

파시는 배를 갈라 안을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깊은 산중에서 이미 죽은 시신의 배를 가른다는 게 얼마나 섬찟한 일인가. 그러나 결정된 이상 미적거릴 수는 없었다. 주검에 칼을 대면서 정약용은 가르침을 주었다.

"사람의 몸은 크게 네 조각이다. 배꼽을 경계로 가로로 달리는 선과 이마의 정중앙에서 음경 중심부를 가르는 세로의 선, 이렇게 나누면 네 조각이다."

손놀림은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목 언저리에서 칼날이 수직으로 그어지자 열기가 빠진 핏물이 주르르 흘렀다. 무심한 목소리가 주검 위로 떨어졌다.

"인(咽)은 뒤에 있으니 음식을 삼키는 곳이고 후(喉)는 앞에 있으니 공기의 통로다."

칼날은 흉부의 정면으로 내려가 복부를 지났다. 약간 힘을 가해 흉복부를 좌우로 열고 정약용은 손길을 멈추고 고갤 끄덕였다.

"보아라!"
"어떻게 이런 일이?"

주검은 오장(五臟)이 모두 녹아내린 상태였다. 썩거나 상한 게 아니었다. 아주 뜨거운 것에 녹아 흐물대는 상태였다.

"나으리, 이게 중독된 것입니까?"
"중독이다."
"중독이 되면 이렇듯 오장이 녹아내립니까?"

"중독에도 종류가 있다. 반드시 독물에만 그러는 게 아니다. 이건 좌도(左道)의 중독이다."
"좌도라니요?"

"독약이 아닌 독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경우다. 그런 자들은 독을 비축해 뒀다가 상대를 해친다. 이러한 독엔 묘(猫)가 있는데 얼룩이나 잔털이 독이고, 귀(鬼)는 야갈(冶葛) 종류인 풀의 독이다. 이러한 독들을 한 곳에 놓으면 독들이 서로 다툼질을 하다 한 마리가 남는 데 그게 고독(蠱毒)이다. 바로 이걸 이용해 인명을 해치는 게 '고(蠱)'다."

송화가 다모(茶母) 생활을 시작하면서 도검에 의한 상처나 독물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게 해야 사람이 살상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렵지 않게 간파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률(唐律)>엔 포육(脯肉)이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있으므로 남은 건 속히 불태우라고 했다. 풀독(草毒)을 비롯해 술독(酒毒) · 과실독(果實毒) · 금석독(金石毒)이 있다. 그녀로선 사건 수사를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었다. <식경(食經)>이었다.

"말린 고기는 기장쌀에 먹어선 안 되고, 비름나물을 금계(金鷄) 고기와 섞어 먹어선 안 된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독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에,
"벌레나 뱀에 물린 경우는 약간 깨문 상처만 있어도 죽게 되고, 미친개에게 물린 경우 상처가 마르면서 나중에 죽는다. 독을 잘못 먹거나 독충에 물려 중독되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분별이 어려우므로 주검의 발변(發變)에 각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한 중독의 경우 특히 고독(蠱毒)은 무고(巫蠱)의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궁 안에서는 일체의 무축을 금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은 모든 걸 좌지우지 할 수 있지만 귀신만은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귀신의 힘을 빌려 제왕의 명을 단축시키거나 후궁끼리의 암투가 일어나는 건 왕조의 실록에서 흔연히 구경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약용은 주검을 원상으로 꿰매고 산을 내려왔다. 한 통의 서찰을 송화에게 주어 최정랑에게 전하고 급히 한양으로 돌아오자 당직을 선 관원이 반색했다.

"나으리, 신당동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초복(初服)이란 무당이 목에 베어 죽었는데 워낙 사내들과 관계가 난잡해 근처 부랑배의 소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장으로 가세."

오후 3시가 약간 지나 현장에 도착한 정약용은 성큼 안으로 걸음을 옮겨 떼며 관원을 가까이 불렀다.

"자네도 사헌부에 들어와 주검을 꽤나 보았을 것이다. 오늘은 자네의 안목을 한번 볼거나?"

관원이 씩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하얀 천을 젖히자 자는 듯한 모습의 주검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약용의 말이 떨어졌다.

"묻겠다. 먼저 눈을 살펴라. 동공이 열렸는지 그렇지 않은지···. 죽은 자가 놀랐다면 당연히 동공은 열렸을 것이다. 어떠냐?"
"그런 기미는 없습니다."

"상처는 어떠냐?"
"목을 가로로 그었습니다."

"어느 정도냐?"
"1촌 7푼이 넘어 보입니다."
"짐작은 짐작일 뿐이다. 영조척(營造尺)을 사용해라."

영조척은 도량형을 정한 기준이다. 주검을 검험할 때는 측량한 이후 장단을 사용할 수 있었다. 10푼이 1촌이고, 10촌이 1척이니 1척 2촌은 대척(大尺)이다.

"역시 그렇습니다. 1척 8푼입니다."
"칼은 한 번에 그었느냐, 멈칫거린 기운이 있느냐?"

"단숨에 그었습니다."
"네가 주검을 검험한 대로 검시기록을 만든다면 어찌 하겠느냐?"

"자살하는 자가 목을 그을 땐 한 번은 멈칫거리게 됩니다. 이 상처엔 그런 흔적이 없고 깊이로 볼 때, 1촌 8푼에 해당되니 단숨에 절명했습니다. 깊이가 1촌 8푼이면 식계(食系)와 기계(氣系) 모두 끊기고, 1촌 5푼이면 식계는 끊기더라도 기계는 약간 파손될 따름입니다. 또한 상흔이 1촌 3푼이면 당장 절명하진 않습니다. 죽은 자가 은장도로 자진했다고 했지만 시생의 검험은 타살된 것으로 보입니다. 은장도의 칼날은 이렇듯 예리하지 않으며 목을 그어 자진할 때 나타나는 멈칫거린 흔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잘 보았다. 흉기는 어떤 종류라 보느냐?"
"목을 그었으니 당연히 칼일 것이며, 상흔으로 보아 범인은 남자입니다. 날이 선 비수를 지닐 정도면 인근 부랑배나 궁 안의 별감(別監)일 것입니다!"
"아하하하, 제법이다! 따라나서라!"

[주]
∎신원(伸寃) ;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씻음
∎양시(養屍) ; 시신이 썩지 않고 손톱이나 머리카락이 길어남
∎파시(破視) ;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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