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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기어' MB 정권, 지방선거서 '유턴'시키자

[주장] 노 대통령 죽음, 6·2 지방선거로 헛되지 않게 해야

등록|2010.05.22 14:22 수정|2010.05.22 14:22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비통한 소식이 날아든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은 세계역사상 유례 없이 전직 대통령으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유일한 나라인 것만 같다.

그 때를 떠올리면, 두 눈이 절로 감긴다. 30도에 육박하는 불볕 더위와 폭우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애부터 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조문행렬이 오히려 더 길어가기만 했으니….

학생, 노동자, 주부, 날품팔이, 군인, 농부, 종교인, 정치인 가릴 것 없이 온 나라의 온 백성이 빈부귀천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치 의병(義兵)들처럼 분향소로 하염없이 모여들었다. 추모열풍이 들불처럼 번져, '국민총동원령'이라도 떨어진 것만 같았다.

사실 추모객들은 최고의 권력에 오른 바보 노무현 같은 천출의 '죽음' 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징그러운 '삶' 때문에 가슴이 더욱 메어져 통곡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팍팍하고 비극적인가 하는 것을 자신의 생명까지 내던지며 몸소 우리에게 고발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는 '죽음'으로써 갈가리 찢긴 우리의 '삶'에 용기를 불어 넣어준 셈이다.

▲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는 참배객들이 갖고 온 편지와 꽃이 놓여 있다. ⓒ 윤성효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적 죽음을 공동체적 부활로 승화시켰다.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참다운 공동체적 삶의 참모습이 어떠한 모습인지 참답게 드러난 것이다. 더욱이 노 대통령 스스로가 "성별, 학력, 지역의 차별 없이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몸소 펼쳤던 탓이다.

그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매서운 한국 사회에서 그야말로 아궁이처럼 훈훈한 분이었다. 노무현 그는 '힘을 사랑하는 인간'이 아니라 정녕코 '사랑의 힘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러한 분이 담배 한 개비 물고 동네 아저씨처럼 구멍가게에 앉아 있곤 하던 '봉하마을' 역시 모두 함께 농사짓고 함께 음식 나누어 먹는 인간다운 공동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근처에 결코 얼씬거리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무현 때리기'를 마치 전 국민적 스포츠인양 생중계하던 치들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 외 모든 이들이 온 나라 구석구석에서 더불어 눈물지었다. 이러한 것이 공동체적 삶의 인간다운 참모습 아니겠는가. 비범한 일을 성취해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 바로 역사인 탓이다.

'정치 자체'의 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정치가 행방불명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서민들의 삶을 사회적 양극화의 수렁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시장논리에만 매달리면서, 결국에는 정치 자체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하기야 우리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로 개정될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깊은 우환과 심각한 불안감을 국민들의 가슴에 올올히 안겨준 장본인은 바로 이 대통령 자신이다.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즈음하여 사상 초유의 태안 기름유출사건이 터지더니, 그의 대통령 취임에 임박해서는 국보 1호 숭례문이 잿더미로 돌변하지 않았던가. 또 그에 뒤질세라 광우병 파동으로 온 나라가 뒤끓더니 이어서 용산참사까지 터졌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심지어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전직 대통령의 투신자살 사건까지 발생한 탓에 수많은 국민들이 가슴을 쳤다. 그런 연유로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의 불길한 참변이 왜 이렇게 끊임없이 줄을 잇는가 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가공할 개탄까지 줄을 이었다.

▲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28일째인 23일 오후 백령도 장촌포 앞 해역에서 인양을 위해 함체 바로세우기 작업이 완료된 '천안함' 함수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그게 또 다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천안함 침몰 사건까지 터져 국민들의 통탄이 더욱 거세졌다.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는 (4대강 사업 졸속추진, 미디어법 강행처리, 남북관계 초토화, 부자 감세 밀어붙이기, 세종시 난투극, 방송 고지점령, 인권 억압, 노조 탄압, 시민단체 박해 등등의 사태로 인해) 파도 위에 올라앉은 난파선처럼 혼란과 갈등으로 한없이 기우뚱거리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동의를 구한다거나 여론을 민주적으로 수렴코자 하는 화해와 소통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진지한 노력이 베풀어진 적이 거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 대신 검찰의 유령만이 사회 곳곳을 누비고 다녔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첫 여성 총리인 한명숙, 최초의 선출직 진보 교육감인 김상곤 등이 이순신 장군처럼 유탄에 맞았다. 심지어 검찰은 자신의 뿌리 깊은 만행에 대한 자정과업에 매진하기도 전에 스폰서 망령의 검은 그림자에 다시 한번 우롱 당하고 있다.

하여튼 이명박 정권은 이런 식으로 '무차별적' 인권탄압, '무책임한' 민생대책, '무분별한' 대북정책, '무소불위'의 권력남용으로 점철되는 '4무(無) 시대'를 자랑스레 열어젖혔다.결국 민주적 비판과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나아가서는 정치 자체의 존재 이유까지도 짓이겨버리는 권위주의적 통치시대로 금의환향한 셈이다.

그리하여 '갈팡질팡', '냉탕온탕', '그럭저럭', '오락가락', '두루뭉술' 통치행위가 난무함으로써, '막가파'식 '막가이즘'이 정치권을 휩쓸게 됐다. 이 대통령은 특히 4대강 사업추진 와중에 기회 있을 때마다, 아니 기회를 억지로 만들면서까지 매사에 "정치적 계산을 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고 또 거듭 당부한 바 있다. 예외적으로 가장 예리하고도 정직한 말씀이다. 정치 자체가 없어진 마당에 어찌 '정치적 계산'이 필요하겠는가.

'후진기어 정권'과 '유턴 선거'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유권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을 우리의 대변자로 뽑을 것인가 하는 것이 자연스레 결정적인 문제로 부각된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제도는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라 하여, 인민의 직접 지배를 구현코자 하는 직접민주주의적 방안의 하나다.

지금 수많은 후보들이 지자체 선거전선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 선거에서 어떤 인물을 뽑을 것인가? 이를 위해 최소한 정말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만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엇보다 MB 집권 이후 줄줄이 이어지는 국민의 개탄과 통탄과 한탄을 멈추어 줄 후보를 물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현재 모든 나라들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대한 시기임에도 우리 이명박 정부만 홀로 계속 뒤로 뒤로만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 정부는 '후진기어 정권'이다. 민주주의도 거꾸로 가고, 서민복지도 뒤로 주저앉고, 남북관계도 박살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처럼 막가파 식으로 국민을 경시해 온 현 정권의 비인간적 정치행태를 엄중히 심판할 수 있는 정치인이야말로 현 시대가 간곡히 열망하는 대안 세력이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유턴 선거'다. 왜냐하면 현 정권을 다시 유턴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종합병원처럼 보인다. 천안함 안보불능, 청년실업, 민주주의 학대, 민생파탄, 교육부조리, 스폰서검사 등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종합질환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둘째, 4대강 사업을 지지하고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후보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앞날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이 주민의 대변자로 뽑힐 경우, 주민의 복리나 권리보다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집착할 가능성이 더욱 짙다는 것을 되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우리가 자연을 죽이면, 자연이 우리를 죽인다'는 간단한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자연을 잡아먹지 않을 사람만이 우리의 진정한 대변자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 역시(이러한 자연과 더불어) 우리 후손들에게 건강한 삶을 기약하는 기본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에게 참다운 인간적 삶의 공평한 터전을 마련해 줄 건강한 교육풍토 조성에 매진할 수 있는 후보를 서둘러 찾아야 한다.

셋째, 약속을 가장 적게 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테니까. 예컨대 어느 작은 마을의 선거유세에서 어느 후보자가 다음과 같이 공약했다.

"저에게 표를 주시면, 이 마을에 마을 회관을 하나 짓고, 다리를 하나 세워드리며, 병원도 하나 세우겠습니다. 약속합니다."

그러자 주민 한 사람이 따져 물었다. "마을에 강도 없는데, 다리는 세워서 뭘 합니까?" 그러자 그 후보가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강을 하나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하인처럼 보이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하인 행세를 하는 후보 역시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힘을 사랑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사랑의 힘'을 가진 정치인을 우리의 대표로 나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군중보다 한 발짝 앞에 나가면 지도자가 되고, 두 발짝 앞서 가면 방해꾼이 되며, 세 발짝 앞으로 나아가면 미친 사람으로 의심받는다.

지금은 추운 봄이다. 그러나 햇빛 비치는 좋은 날씨만 계속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막으로 변한다. 휘몰아치는 거센 비바람이 있기에 새싹이 돋아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힘든 세상을 함께 헤쳐갈 '삶의 동지' 같은 인간적인 정치인을 우리의 대표로 뽑아야 한다. 이들과 다 같이 힘을 합쳐 서로를 관용으로 감싸안으며 모두 함께 두 손을 굳게 맞잡는다면, 어떠한 걸림돌도 디딤돌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우리 모두가 청룡언월도로 몽당연필을 깎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야구방망이더러 '너는 이를 쑤실 수 없는 꼬락서니를 갖고 있다'고 비아냥대는 이쑤시개가 되지도 않았으면 한다.

나아가 태양으로는 담뱃불을 붙일 수 없다 하여, 그것을 결코 태양의 결점이라고는 윽박지르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와 다르다고 하여 그것을 틀린 것이라 비난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이러한 것이 노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는 우리의 도타운 마음가짐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필자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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