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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은파관광지에서 노무현 추모식 열려

"대통령은 불통을 소통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요!"

등록|2010.05.22 18:14 수정|2010.05.22 18:14

▲ 노 전 대통령 모습과 어록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가 새겨진 추모비 ⓒ 조종안




"보고 싶습니다. 너무 그립습니다. 당신의 그 천진난만한 미소가, 소탈한 몸짓이 그립습니다.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권위주의가 고개를 쳐들 때면 당신이 그립습니다. 지역감정이 꿈틀거리고, 서민의 삶이 고단할 때면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추도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추모 콘서트와 전시회, 등반대회 등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22일(토) 오전 10시 군산 은파관광지에서도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작년 7월 노사모 전북 지역 대표들과 시민 1천5백여 명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군산 은파광광지 물빛다리 인근에 심은 소나무와 추모비 앞에서 치러진 추모식에는 노사모 회원들과 시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 헌화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 천안함 사건, 검사 스폰서 등 어지러운 시국이 표정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 조종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치러진 추모식에서 진행을 맡은 이만수 전 군산시의회 의장(행사 추진위원장)은 "우리는 1년 전 서거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며 "이곳에 소나무를 심고 추모비를 건립하던 1년 전 마음으로 '노짱'의 뜻을 알리는데 앞장서자!"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최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존재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더욱 실감한다는 말로 '노짱'을 기리고 그가 없는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특히 참석자들이 함께 외치는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비안개 자욱한 은물결을 지르밟고 퍼져 나갔다.  

은파관광지에서 만난 사람들

60대로 보이는 아저씨는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면서 오죽 못살게 했으면 죽음을 택했겠느냐며 불행한 사태가 거듭되지 않으려면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남녀노소에게 깊이 각인된 정치인은 없을 것입니다. 작년에 5백만이 넘는 추모객이 분양소를 찾았던 이유는 그가 서민적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이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권력자들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하는 데 걱정이네요."

▲ 헌화하는 시민. 참석자들 표정이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잔뜩 찌푸린 날씨만큼이나 무거웠습니다. ⓒ 조종안



▲ 군산대학교 최연성 교수. 최 교수는 정치인들이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년 추모 분위기를 6·2지방선거에 이용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 조종안



군산대학교 전자정보공학부 최연성(52세)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더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주지는 않았을 것이고, 정치판도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꼬이지는 않았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최 교수는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업적인 민주주의가 다시 옛날로 회귀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하면서 화합하고 양보하는 게 노무현 정신인데, 대결과 대립, 사회 갈등,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랐던 것은 이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해서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불통'을 '소통'으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때의 거짓말과 '운하'를 '4대 강 사업'으로 바꿔 밀고 나가는 게 대표적이지요."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앞두고 '노풍'이 불 것이라고 했는데 예상외로 차분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 최 교수님 생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요. 첫째는 경제가 어려운 점, 둘째는 6·2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 셋째는 정치인들이 서거 1주년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세력이 뭉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도 믿음을 가지고 지지하고 참여할 마음이 생기거든요. 추모 행사도 갈라져서 할 정도이니 순진한 국민이 어디에 마음을 줄지 헷갈릴 수밖에요."

▲ 추도사를 낭독하는 이만수 추모행사 추진위원장. 이 위원장은 어린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배우고 돌아가는 은파관광지로 만드는 게 꿈이라고. ⓒ 조종안




행사가 끝나고 만난 이만수 전 군산시의회 의장은 작년 4월 '노짱'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민주주의 위기, 중소 서민경제 위기, 남북문제 위기를 지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전 의장은 '노짱'이 서거하자 '추모 행사 보호'가 아닌 '촛불집회 봉쇄'에 주력했던 경찰을 질타했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은 물론 시민 분향소가 차려진 덕수궁 대한문 앞 도로에도 차 벽을 쌓고 도로를 봉쇄한 경찰이 진정한 민주국가 치안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며 오세훈 서울 시장 이야기도 꺼냈다.  

"5월27일 추모문화제를 앞두고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서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러나 오 시장은 공을 정부에 떠넘겼습니다. 정부에서 허가하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지요. 그게 말이 되는 얘깁니까. 참으로 무책임한 시장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언론의 방해에도 영결식은 무사히 끝낸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아니지요. 추모 행사 방해의 결정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 거부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전직 대통령 추도사를 못하게 합니까? 김 전 대통령이 서울역 분향을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겪은 치욕과 좌절, 슬픔을 생각하면 나라도 그런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전 의장은 노 대통령 내외와 자녀, 사위까지 소탕작전 하듯 수사하면서 법을 어기고 친 MB 언론에 수사기밀을 흘려가며 심리적 압박을 가한 행위는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후세들에게 전하는 일을 계속 추진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추도사
일 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또 봄이 왔건만, 우리는 작년 5월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신록이 우거지고, 철쭉이 강토 곳곳에서 붉은 꽃을 피우는 5월,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홀연히 떠나가셨습니다. 새벽에, 잠든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가셨습니다.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보고 싶습니다. 너무 그립습니다. 당신의 그 천진난만한 미소가, 소탈한 몸짓이 그립습니다.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권위주의가 고개를 쳐들 때면 당신이 그립습니다. 지역감정이 꿈틀거리고, 서민의 삶이 고단할 때면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그리 힘들었습니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을 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야 할 만큼 그리 힘들었습니까? 당신을 그리워하는 우리를 남겨두고 급히, 혼자서 가야 할 만큼 그리 힘들었습니까?

다 우리 탓입니다. 수많은 밤을 괴로워하며, 마음 아파하며 뜬눈으로 지새웠을 당신을 홀로 두고 외면한 우리 탓입니다. 미안합니다. 지켜 드리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일 년 전,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기에, 그래도 너무 보고 싶어서 우리는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당신 대신 곁에 두고 보려고 당신을 닮은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평소 당신이 좋아했던 노래 '상록수'를 흥얼거리며 심었습니다. 당신은 민족통일을 위하여 온 힘을 다했는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목숨 걸고 투쟁했는데 우리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것뿐이라니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노란 풍선은 항상 우리 가슴에 두둥실 매달려 있습니다. 그 풍선은 힘들고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평등과 평화를 말합니다. 지역감정을 극복하라고 합니다. 독재 타파, 민주주의를 말해줍니다.

그리운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가셨지만, 우리는 남았습니다. 당신이 미처 하지 못한 많은 숙제도 같이 남았습니다. 비록 당신이 안 계시더라도 우리는 그 숙제들을 차근차근 해나가겠습니다. 우리 앞에 그 어떤 비바람과 눈보라가 닥쳐도 당신을 생각하며 해나가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편히 계십니까?

우리는 당신을 지켜 드리지 못했지만, 그래서 너무 염치없지만, 당신은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못난 우리를, 이 땅의 민주주의를, 두 동강 난 조국을 지켜주십시오. 흔들리지 않고 당신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가신지 꼭 1년 되는 2010년 5월 22일

노무현 대통령 추모행사 추진위원장 이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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