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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두 얼굴... 자연의 길은 막지 못한다

등록|2010.05.24 11:13 수정|2010.05.24 11:13

루사 태풍영상(2002년)한 눈 동그랗게 뜨고 한번도로 접근중인 태풍루사. 루사로 인해 24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고, 5조 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 기상청


"그래 저랬어. 저 물결, 저 냇가의 물 흐름, 맞아 저기 있는 옥수수밭에는 아카시아 숲이 있었지. 그곳에는 가제가 많았어, 그리고 저곳 기와집 자리는 꽤 깊은 웅덩이가 있어서 미역 감던 곳이야. 생각나네, 마을 한가운데를 꾸불꾸불 흐르던 시냇물, 맞아 외양간이 있던 곳엔 조그마한 빨래터가 있었어. 농지정리를 하면서 모두 사라졌던 저 물길. 참말로 물은 신통방통하네, 다 기억하고 있었어."

오늘(23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여름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듯이 제법 빗방울도 굵었습니다. 굵은 빗방울 소리를 들으니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해 폐허가 된 강릉 자원봉사를 갔다가 그곳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또 생각나네요. 반기는 이 없지만 한해도 거르지 않고 먼데서 찾아오는 불편한 손님인 태풍처럼 말입니다.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태풍이 찾아오겠지요. 폭풍전야의 음습한 기운과 함께 온 나라를 긴장시키고, 지나간 발자국마다 큰 상처를 만들어 놓는 태풍.

지구는 살아있습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섞어 안정시키려고 끝없이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즉 적도에서 극으로 열을 실어 나르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구의 노력에 비해 결과는 시원찮습니다. 적도 부근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와 극지방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지요.

지구가 둥글게 형성될 때부터, 즉 지구가 생겨날 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지요. 이렇듯 지구는 도달할 수 없는 소망을 향해 끝없이 몸부림치며 저기압과 고기압을 만들고 태풍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태풍은 따뜻한 적도에서 찬 극지방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은 당연합니다. 날씨가 안정되면, 즉 변덕스럽지 않으면 사막이 됩니다.

이러한 극히 자연적인 현상인 태풍이 해마다 찾아와서 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등 막대한 피해를 주어 반갑지 않지만, 좀 더 깊숙이 태풍을 바라보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길잃은 물갈 길을 잃어 도시를 덮친 물 ⓒ 허관


태풍이 지나간 하늘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푸른 하늘에 낚시구름이 흩뿌려있는 그 맑은 하늘, 케케묵은 화장실 타일의 때를 반나절 동안 세제로 박박 닦은 후 샤워기로 물을 뿌린 후 쳐다보는 그 시원함처럼 하늘이 깨끗하지요. 태풍이 지나간 바다도 그렇게 깨끗해진다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 필수요소인 물을 가져다 주지요. 아마 태풍이 찾아오지 않으면 당장의 피해가 없어서 좋을지 모르나, 물 부족 현상, 환경오염 등으로 장기적으로 몇 배의 더 큰 피해를 줄 것입니다.

또한, 태풍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가만히 들추어 보면 다 인간이 만든 작품입니다. 몇 년 전에 태풍 루사가 동해안을 강타하고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태백산맥을 할퀴고 가서 새로운 계곡이 생기고 마을의 형체가 바뀐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로 생긴 계곡과 마을의 형체들이 사람들이 들어오기 이전의 그때의 그 모습이라 합니다. 억겁의 세월동안 물이 만들어 놓은 길을, 즉 물길을 하루아침에 인간들이 막고 잘라서, 갈길을 읽은 물이 모여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 놓은 듯합니다. 물이 지나갈 자리를 막고, 바람이 지나갈 자리를 막아 버려 그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도 자연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야 하나 고심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자연을 지배하고, 자연을 업신여기면, 살아있는 지구는 인간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는 분명 살아 있고, 인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도 태풍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한반도는 우리 한민족의 땅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일부분이므로 태풍의 땅이기도 합니다. 그 길을 막으면 안 됩니다. 혹시 산을 절개하여 축대로 막아 놓았는지, 자연히 흐르던 냇물을 도시 외곽으로 돌리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주변을 잘 챙겨볼 때가 되었습니다.

태풍은 큰 피해도 주지만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과 자연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므로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인 듯합니다. 모든 면에서 나쁜 사람이 없고, 좋은 사람이 없는 듯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은 있어도, 틀린 사람은 없듯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자연이며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도 그곳에 포함되어 그런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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