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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곰섬에는 없는 게 3가지 있다

충남 서산의 곰섬, 웅도 자전거 여행

등록|2010.05.27 11:13 수정|2010.05.27 11:33

▲ 하루 두 번 달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저 앞의 웅도에 바닷길이 생긴다. ⓒ 김종성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는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다는 재미있는 이름의 '웅도'라는 섬이 있다. 물고기들이 풍부하고 굴, 조개, 김의 양식도 잘되는 남북 길이 25km의 서해 가로림만(加露林灣)에 면한 섬이다. 서해 가로림만에는 이런 재미있는 이름의 섬들이 많다. 솔섬, 조도, 매섬, 닭섬, 새섬... 이중에 가장 가장 큰 섬이 웅도, 곧 곰섬이다.

이름 때문인지 점잖고 진중한 느낌이 드는 웅도는 육지에서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단, 하루에 두 번 달님이 허락하는 시간에만 문을 여는 섬이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자의 흥미와 호기심을 돋운다. 지난 주말 애마 잔차를 타고 서산 가로림만의 국도와 시골길의 구비구비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 달리며 곰섬 웅도에 찾아가 보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국립해양조사원 홈피(www.nori.go.kr)에서 미리 섬의 물때 시간을 알아보고 찾아가면 좋겠다. 지구와 달의 신묘한 상호작용으로 바다 갈라짐 시간이 매일 다르다고 한다.

▲ 가로림만에는 어족이 풍부해 삼길포항에는 선상횟집들이 다있다. ⓒ 김종성


서해 가로림만을 오르락 내리락 달린다

서산에서 밑으로 태안반도까지 길게 이어진 가로림만(加露林灣)은 그 아름다운 뜻과 달리 자전거 여행자를 힘들게 하는 높고 낮은 구릉길의 연속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진의 왜목항에서 잔차 안장에 올라타 가뿐하게 출발한 나는 긴 대호 방조제 위를 호기롭게 달려가다 삼길포항에 잠시 들러서 포구의 가득한 선상 횟집에서 요기도 하며 여유를 부렸다.

곧이어 나타나는 첫번째 긴 업힐(경사진 언덕길)은 시리즈로 나타나는 가로림만 구릉길의 전초전이었다. 역시 지도상의 거리와 잔차 탄 몸이 느끼는 거리는 다를 경우가 많음을 깨닫게 하는 게 가로림만길이다. 도로 이정표에 벌천포 해변이라고 써있는 게 보인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가로림만의 해변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 하며 잠시 들렀다 갔을 텐데 이번만은 오르막길이 두려워 그냥 못본척 지나간다.

그나마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맛에 오르막길들을 견뎌낼 무렵 길가에 '웅도'라고 써있는 정사각형의 작은 진갈색 표지판이 눈에 번쩍 띈다. 휴~ 드디어 다 왔구나... 아직 섬은 안 보이지만 이제 바다쪽으로 700m만 가면 된다. 주변의 마을풍경을 감상하며 시멘트로 포장된 1차선의 좁은 시골길을 달려간다.

그러나 정겹던 시골길도 점점 경사가 급한 임도로 돌변하면서 웅도가는 길을 쉬이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가는데 아스팔트 임도길 위에 작은 동물 한마리가 엎어져 있다. 가까이 가서보니 보기도 드문 두더지가 불쌍하게도 바퀴에 깔려 죽어있는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문명은 태생적으로 다른 동물들을 희생시키는 폭력성을 품고 있는 것인가, 미안하고 씁쓸하다.

▲ 시멘트로 포장한 1차선의 작은 시골길에도 많은 동물들이 이렇게 희생되고 있었다. ⓒ 김종성


▲ 저 앞 육지와 300m 정도 거리의 웅도 바닷길은 걸어서 건너가도 좋은 정겨운 길이다. ⓒ 김종성


하루 두 번 열리는 웅도 가는 바닷길

55가구 정도에 150여 명의 주민이 산다는  작은 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 같다고 이름 지은 웅도는 첫 인상도 차분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드는 섬이다. 아직 바닷길이 열리지 않은 웅도는 달님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다. 300m정도 되는 바닷길은 수영을 해서 가도 섬에 금방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고깃배와 여행온 사람들이 물길이 열리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어떤 가족들은 물이 빠지고 있는 갯벌에 벌써 들어가 작은 게들을 잡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때를 기다리며 여행객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는데, 어떤 분은 웅도는 아무것도 없다며 섬에 가면 심심할까 봐 먹을거리들을 잔뜩 싸왔다며 웃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신기하게도 바닷물이 스르르 뒤로 물러서면서 길이 조금씩 열린다. 아니, 섬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바닷길이 열리면서 나타나고 펼쳐지는 것은 차 한대 지나갈 정도의 시멘트길과 드넓은 굴밭이다. 웅도는 굴과 바지락으로 유명한 섬이란다.

섬 초입부터 웬 큼지막한 조개껍데기들을 그물처럼 엮어 놓은 것들이 쌓여있다. 지나가는 주민분에게 물어보니 굴 양식용으로 쓰는 것으로 저런 조개 껍데기를 바닷속에 넣으면 굴들이 붙어 산단다. 오래된 경험이 축적되어 탄생한 인간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 조개 껍데기를 묶어 다시 굴 양식용으로 쓰는 인간의 지혜가 대단하다. ⓒ 김종성


바지락은 뻘이 있는 곳이면 다 잡히는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웅도가 유명한 까닭은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갯벌에 들어가 바지락을 캐는 섬 주민들의 이채로운 모습 때문이다. 웅도의 갯벌은 물기가 많아 다른 곳처럼 경운기가 들어가지 못해 생각해낸 방법이라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많은 사진가들이 몰려와 그런 풍경을 찍어가곤 했다고 한다.

파랗고 노오란 예쁜 들꽃들이 피어난 마을 길을 조금 오르니, 전교생이 세 명밖에 안된다는 섬을 닮은 아담한 웅도분교와 앙증맞은 정원이 다있는 웅도교회가 외지인을 맞이한다. 문이 열린 교회 안에 들어가 작은 예배당에 잠시 혼자 앉아 있자니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몸과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 웅도의 이웃엔 가로림만의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떠있다. ⓒ 김종성


▲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의 모습이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과 무척이나 비슷하다. ⓒ 김종성


웅도에 없는 것 세가지

날씨가 더운 날이라 갈증이 몰려와 가게를 찾다가 문이 열린 어느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 한 분이 마루에 앉아 계신다.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물을 얻어 마셨는데 물맛이 깨끗하고 좋다. 섬의 지하수가 맑고 많이 나온다고 할머니가 자랑삼아 말해 주신다. 짠물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마실 물이 풍성하다니 다행이다.

섬을 한바퀴 돌면서 둘러보다보니 웅도에는 없는 것들이 세가지가 있다. 아까 목이 말라 그렇게 찾던 슈퍼 혹은 가게가 없다. 웅도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먹을거리만 잔뜩 싸왔다는 좀전에 바닷길 앞에서 만난 여행객의 말이 떠올랐다. 두번째, 섬에 소음이 없다. 하다못해 개짖는 소리도 잘 안 들리는 정말 조용하고 고요한 섬이다. 현대식 민박집도 두어군데 있지만 여행객들도 섬의 분위기에 취했는지 조용히 숨어서 쉬고 있다. 세번째는 섬주민을 보기 힘들다. 그나마 썰물에 갯벌이 넓게 드러나자 한 두 명씩 주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산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기만 하다.

웅도에 사는 견공들도 섬을 닮아서인지 곰처럼 점잖고 진중하다. 자전거를 탄 외지인이 지나 가도 휙 한 번 쳐다볼 뿐 짖어대지 않으니 내심 경계했던 내가 우스워진다. 키다리 아저씨같은 큰 느티나무가 서있는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 뒤를 돌아다보니 안온한 표정의 소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주인을 태우고 갯벌 위에서 소달구지를 끌고 바지락을 캐러 가던 그 소인가 보다. 다음번엔 네가 소달구지를 끌고 갯벌을 다니는 풍경을 꼭 보고 싶구나. 개도 소도 사람도 모두 섬을 닮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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