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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매화마름꽃도 구경하고... 우렁이는 덤

강화 송해면 당산리 매화마름 군락지를 찾다

등록|2010.05.26 14:32 수정|2010.05.28 15:20
밤새 쏟아지는 비가 아침나절 잠시 멈췄다. '이제 날이 개려나?' 하늘이 벗어지는 것 같다. 들판에는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마당 건너편 논에선 트랙터로 써레질을 하고, 그 옆에선 이앙기로 모를 내느라 부산하다.

아내가 채소를 솎아왔다. 상추, 쑥갓, 치커리, 더덕잎이 바구니 가득하다. 요즘 한창 솎아줘야 잘 큰다며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채소밭을 들락거린다. 자잘한 채소를 다듬는 일은 만만찮다. 겉잎을 딴 것이 아니고 어린 채소를 솎아낸 것이라 손질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일을 마친 아내가 묻는다.

"당신, 비와 산에 못가 어떻게 해? 그냥 당산리에나 다녀오지?"
"당산리는 왜?"
"매화마름 논에 물 빼는 행사를 한다고 현수막이 나부끼던데요."
"그래? 그럼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가야겠네!"
"나랑은 안 가고? 만날 어르신들만 챙기네!"
"그럼 당신도 갈 거야? 나야 같이 가면 너무 좋지!"
"그냥 해본 소리예요. 난 바빠요. 어르신들 모실 때 운전 조심하는 거 알죠?"

▲ 지난 5월 23일(일)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창립 10주년 매화마름 생명축제 행사가 열렸다. ⓒ 전갑남


말만 꺼내놓고 아내는 빠질 모양이다. 그러나 저라나 매화마름이 필 때가 된 것 같다. 지금 모내기철이 아닌가! 어르신들 소집이다. 새집할아버지와 옆집아저씨가 내 차에 오른다. 홍씨아저씨는 아들네가 다니러 온다하며 손사래를 친다.

매화마름 군락지를 찾아가다

내가 두 분 어르신께 행선지를 알려드리며 말을 꺼냈다.

"화문석체험관 가보셨죠? 그곳에 매화마름 군락지가 있어요."
"거긴 가보기는 했는데 매화마름이란 거 못 봤는데?"
"벼가 자라는 동안에는 매화마름이 안 보여요. 모내기철이 되어야 꽃이 피고 그렇죠."
"꽃이 어떻게 생겼어? 예쁘게 생겼나? 강화도에서만 자라나?"

강화도로 이사한 지가 얼마 안 된 새집할아버지께서 연신 질문을 쏟아낸다. 옆집아저씨도 매화마름이란 걸 처음 봤다며 궁금증을 더 한다.

우리는 오래 걸리지 않아 송해면 당산리에 도착했다. 비 그친 들판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분은 매화마름을 찾는다.

"매화마름이 어디 있어?"
"저기 논에 녹색이 보이잖아요."
"그래, 하얀 꽃도 보이는구먼! 저게 매화마름이라구?"
"네, 맞아요!"

▲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는 매화마름이 군락을 이뤄 자생하고 있다. ⓒ 전갑남


논둑이며 논에 군데군데 녹색의 매화마름이 보인다. 아주 작은 꽃들이 물위에 무더기로 피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두 분은 군락지라고 하니까 색다른 구경거리가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좀 별로라는 표정을 지으신다. 나는 매화마름꽃을 근접 촬영을 하고 있는 젊은 아가씨에게 말을 붙였다.

▲ 올해는 매화마름이 자라는 논에 군락을 형성한 것도, 꽃이 피는 것도 예년에 비해 못하였다. ⓒ 전갑남


"만개하면 논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하얀 꽃이 예쁘던데, 올핸 별로네요!"
"그러게요. 작년에는 논에 하나 가득 피어 장관이었는데…."
"올봄 날씨가 이상해서 그런가요?"
"글쎄요. 아무튼 작년만 못하네요."

아가씨는 작년에도 매화마름 촬영을 위해 강화도 군락지인 길상면 초지리와 송해면 당산리를 찾았다고 한다. 모내기철 논에서 눈꽃을 보는 기분이었는데 올핸 두 곳 모두 예년만 못하다며 아쉬움을 들어낸다.

매화마름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식물

나도 사진기를 꺼냈다.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꽃들이 소박하고 아름답다. 노란 꽃술을 감싸고 있는 하얀 작은 꽃잎이 앙증맞다.

매화마름은 1960년대 초만해도 서울 영등포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했던 물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경지정리와 각종 개발로 연못과 습지가 파괴되고 제초제와 같은 농약을 사용하면서 지금은 서해안 일부지역 논이나 습지에서만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취를 감춘 희귀식물이 되어 버렸다.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식물이다.

▲ 매화마름은 5월 모내기철에 각 마디에서 긴 꼭지가 나와 매화 모양의 흰 꽃이 물위에 하나씩 떠서 핀다. ⓒ 전갑남


매화마름은 미나리아재빗과로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이 물매화와 비슷하고 잎은 붕어마름과 같이 생겼다 하여 매화마름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약 3~7cm의 꽃자루가 물위에 빠끔히 나와 끝에 한 개의 꽃이 달린다. 꽃의 지름은 약 1cm 정도로 꽃잎과 꽃받침은 다섯 개이다.

마디에서 흰 수염뿌리가 내린다. 마디의 속은 비어 있다. 잎은 대부분 물속에 잠겨있으며 어긋나고 서너 갈래로 실같이 가늘다. 잎집과 잎자루는 짧다.

마디에서 발달한 꽃자루는 꽃이 피기 직전에 물위로 솟아오른다. 물속에서 꽃이 피면 종자를 맺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약한 꽃자루에서 꽃이 핀 매화마름은 해거름엔 꽃잎을 오므리고 다음날 해가 뜨면 꽃잎을 연다. 이렇게 사나흘을 반복하다 씨가 맺는다.

씨가 맺혀 땅에 떨어지고 꽃이 죄다 사라지면 농부는 모를 내기 위해 논을 갈아엎는다. 결국, 매화마름은 이듬해 봄을 약속하며 논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벼와 매화마름은 논에서 숨바꼭질하며 산다. 매화마름이 떠난 자리에 벼가 살고, 모내기 전까지는 매화마름이 논의 주인노릇을 하는 셈이다.

매화마름 논에서 웬 우렁이야

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데 일행인 옆집아저씨가 날 부른다.

▲ 매화마름 논에서 발견한 우렁이. ⓒ 전갑남


"여기 좀 와 보라구! 우렁이가 있어! 이거 완전히 자연산이네!"

나는 아저씨가 내민 것을 보았다. 우렁이다. 요즘 농촌 논에서 우렁이를 찾아보기가 흔치않다.

"이곳은 매화마름 군락지라서 무농약 농사를 지어 우렁이가 사는 것 같네요."

아저씨는 벌써 신발을 벗어 던진다. 바짓가랑이도 걷어 올린다. 예전 논에 우렁이를 잡던 생각이 난 모양이다. 아저씨는 발목까지 빠지는 수고를 마다 않고 한 주먹씩 잡은 우렁이를 논 밖으로 던진다. 할아버지와 나는 신나게 줍는다.

좀 전 아가씨도 우리가 하는 일이 신기한 듯 묻는다.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우렁이 줍지요."
"이건 우렁이농법으로 키우는 우렁이 아니죠?"
"그거와 다르죠. 이건 예전 논에서 보던 토종 우렁이예요!"

▲ 처음 우렁이를 잡아보는 도회지 아가씨는 질척거리는 논에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 전갑남


아가씨도 신발을 벗고 우렁이를 줍는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자기가 주운 것을 죄다 우리에게 넘긴다. 어떻게 해먹을 줄 모르니 줍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한다. 아가씨의 미소가 매화마름꽃만큼 환하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진다. 우리는 하던 일을 멈췄다. 잠깐 주운 게 수월찮다. 귀한 보물이라도 건진 것처럼 두 분 어르신은 무척 좋아라하신다. 나는 차 시동을 걸며 길을 재촉하였다.

"어서 갑시다! 저희 집에서 막걸리나 한 잔 하게요. 맛있는 우렁이쌈장에 집에서 기른 상추쌈이 딱 어울릴 것 같죠? 어릴 적 보았던 토종 우렁이 얼마만이에요!"

▲ 아내가 만들어준 우렁이쌈장. 삶은 우렁이를 된장과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끓여 만들었다. 상추쌈과 함께 먹으니 그맛이 그만이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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