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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자율성 주도한 이가 돼야하지 않을까?

[서평] 이오덕 선생이 쓴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

등록|2010.05.28 12:06 수정|2010.05.28 12:06

책겉그림이오덕 선생의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 ⓒ 고인돌



교육감 선거가 곧 다가온다. 후보자들 저마다 자신이 아이들 교육에 적임자라 내세운다. 그렇지만 누가 누군지 솔직히 모르겠다. 큼지막한 얼굴과 거창한 공약만 난무할 뿐, 어떤 교육자로 살아왔는지 알 길이 흔치 않는 까닭이다.

그들이 교육감에 적임자인지는 미래 공약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과 호흡하며 살아 온 삶의 이력에 나타난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주도한 교육자였는지, 자기 잇속과 정치적인 행보를 위한 교육자였는지, 그 속에 다 녹아 있는 까닭이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뒹군 이오덕 선생이 쓴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은 요즘처럼 획일적이고 강제적이고 경쟁적인 공교육과는 달리 오직 창의적이고 자발적이고 도덕적인 참된 민주교육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저 입으로만 명령하고 강제하는 지시적인 가르침과는 달리 교사가 나서서 아이들과 함께 온 몸으로 뒹굴고 호흡하는 자발적인 가르침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틀이 있다. 참 교육은 과연 무엇인지, 참 교육이 나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살릴 길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참 교육을 실천한 교사들의 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들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참 교육이란 교사들이 아이들을 강제하고 몰아붙이는 식의 닭장식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자발성과 창의성에 바탕을 둔 자율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그를 위해 교육 현장에서 고쳐야 할 게 몇 가지 있음을 밝힌다. 이른바 '차렷', '경례'와 같은 '병든 상식이 주도하는 교육'을 철폐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들은 일제가 주입한 군국주의 훈육 방식이다. 이전 세대로서 국민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반장 한 명이 일어서서 차렷, 경례를 되풀이 하고, 손톱에 낀 떼와 알몸 위생검사까지 하고, 또 운동장 조회 때마다 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도 그랬다.

요즘은 어떨까? 반장도 돌아가면서 하고, 짝꿍도 번갈아가며 앉게 하고, 학급 자치회가 자발적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점수 따기나 상 타기 같은 쟁탈전 교육에서 진정 자유롭게 하고 있을까? 창의성을 길러줘야 할 공교육이 획일적인 경쟁교육으로 치닫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공립학교는 그나마 낫겠지만 사립학교들은 더 옥죄고 더 강제하고 더 사육하는 꼴이지 않을까?

또 하나, 고쳐야 할 틀은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와 말하기의 자율성이라 한다. 예전에는 웅변대회나 글쓰기 대회나 그림대회 때 죄다 어른들이 코치하고 선생들이 덧칠해 준 게 많다. 그만큼 다른 아이들이나 다른 학교에 뒤지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이 어른들 문학작품을 흉내 내거나 거짓말을 꾸며서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일들을 쓰고 그리고 말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설령 어설프더라도 말이다.

왜 그것이 중요한 걸까? 솔직한 글과 그림과 말하기야말로 아이들과 선생님과 대화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란다. 어른들처럼 꾸며대는 말이나 그림이나 말하기는 도무지 아이들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고,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쟁이로 키울 뿐이라 한다. 전날에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솔직하게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의 자살에 탁월한 예방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학급자치회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토론하는 장을 열어주면 그만큼 아이들은 성숙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끝으로 하나 더 바꿀 게 있다면,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 몸이 될 수 있는 교육의 길로 나가는 것이다. 아이들과 한 몸이 되어 가르치겠다는 선생님이 넥타를 차고 양복을 입고 강단에 서게 되면 아이들은 벌써부터 이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겉모습에만 달려 있지 않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쓰레기와 오물을 줍게 명령하지만 정작 자기 발밑에 있는 쓰레기까지도 아이들을 시켜 줍게 만든다면, 그 선생님은 진정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스스로의 몸과 행실로 그 삶을 살지 않는 선생님은 이미 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세계를 인식시키는 일을 두고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틀을 보여주어서 그것을 그대로 가지게 할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바르고 순수한 아이들의 삶과 마음을 지키고 키워나감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가꾸는 나날에서 보고 듣고 행하는 것,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감격한 것을 글로 쓰고, 그렇게 쓴 글을 가지고 다시 생각하고 토의해서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것이 우리가 하는 교육이다."(340쪽)

이오덕 선생님은 어린이를 지키고 살리는 교육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운동에 헌신하셨고,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의 바른 길을 열고 또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 가꾸고 살리는 일에도 온 몸을 던지셨다. 그런 교육자의 이력이 있기에 2003년 무너미 고득박골에서 세상을 떠난 뒤에는 '이 시대의 참 교사'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교육감 후보로 나선 인물들도 꼼꼼히 살펴보았으면 한다. 무수한 앞날의 공약이나 비전보다도, 이전에 어떤 삶을, 어떤 가르침을, 어떤 교육을 몸소 행해 왔는지, 두 눈 똑똑히 보고서 투표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아이들을 경쟁교육으로 치닫게 하여 점수 따기식 닭장 속에 사육하는 교육이었다면 그는 교육감 후보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아이들 스스로의 자율성과 창의성에 중점을 두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토론하게 하는 교육을 주도해 왔다면, 그는 이오덕 선생이 말하는, 이 시대의 참된 교육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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