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인권을 말하는 '교육대통령' 곽노현, 내 가슴이 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적성순이다"

등록|2010.05.28 19:40 수정|2010.05.28 19:40
"니가 먼저 날 쳤잖아!"
"물총은 니가 먼저 쐈잖아!"

"니가 쏴보라며? 쏘면 가만 안 둔다며?"
"내가 언제 쏘라고 했어?"

초등학생 두 남자아이가 아파트 앞에서 치고받고 싸운다. 나는 집에 가던 길을 멈추고 두 아이의 싸움을 말렸다.

"얘들아. 말로 해도 충분히 되는 일이야. 무슨 일인에 주먹질까지 해? 너희 내일이면 또 웃으며 놀 거잖아. 사람이 한번 주먹으로 해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 자 숨을 크게 쉬어봐."

난 양쪽으로 두 아이의 손을 잡았다. 물총에 맞은 아이는 계속 울면서 상대가 먼저 물총을 쐈다고 말을 하고, 물총을 쏜 아이는 "이 찌질이. 병신같이 울고 난리야"라고 또 때리려 한다.

나는 또 덤비려고 하는 아이의 두 손을 왼손으로 꼭 잡고, 오른손으로 우는 아이를 감싸안았다. 어른으로서 무슨 그럴듯한 말이라도 해서 화해를 시키면 좋을 텐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말주변이 이렇게 없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밉게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하면 니 마음도 아픈 거야. 저녁밥은 먹고 노는 거야?"
"아니요."

"그래? 8시가 넘었는데, 엄마가 걱정하시겠다. 얼른 들어가서 밥 먹어"
"어짜피 집에 가도 엄마 없어요. 엄마 12시에 들어와요"

"그래... 그럼 아빠도 늦으셔?"
"아빠는 아예 안 와요. 토요일에나 와요"

냉소적이면서 다소 풀이 죽은 그 아이의 눈에선 분노가 나왔다. 어딘가에 자신의 분노를 풀지 못해 터뜨릴 곳을 찾는 그런 느낌이었다. 반대로 우는 그 아이는 내가 아는 사람에게 과외를 받는데 공부 때문에 자살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이였다.

아이들이 싸우면서 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진리에 속한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그 두 아이의 모습이 이틀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는 것은 왤까.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폭력적인데 정작 자신들은 그 폭력에 길들여져 모른다는 것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얼마 전 청소부 아주머니께 폭언을 퍼부어 인터넷을 달아오르게 한 대학생같은 사례는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건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입에 거품을 물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최고의 가치라고 가르치는가.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1등을 하라고는 가르치고, 내가 이기기 위해서 남을 짓밟는 것은 경쟁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가르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가르치지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 계셔도 왜 일어나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가 태반이고, 자신이 먹던 과자 봉지를 땅바닥에 휙 버리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물론 부모나 학교가 그렇게 가르치지는 분명 않을 것이다. 다만 학교나 부모는 도덕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었던 것 뿐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패륜아가 생기는 데는 패륜에 무감한 어른이 있기 때문이고, 패륜적인 교육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현상은 절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다. 요즘 아이들이 왜 인내심이 없고, 폭력적인지 모르겠다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다. 지금 아이들의 교육현실을 보면 폭력적인 것은 둘째 치고 미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지경이다.

새벽에 학교 가서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든 어쨌든 학교 울타리 안에 있다. 에너지를 뿜어내야 할 혈기 왕성한 청소년 시기가 입시감옥에 갇혀서 자신의 적성을 알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젊음을 죽이고 있다. 북한에만 새벽별 보기 운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 학생에게도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패배의 인생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배웠으면 좋겠다.
난 이 미친 공교육의 틀이 깨지기를 바라고 변혁이 오길 바란다. 비록 내가 이런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이 싫어 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냈지만 난 공교육이 바로서길 너무나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패배의 인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배웠으면 한다.

이런 내 열정은 지난 교육감 선거 때 비리 많은 후보를 뽑지 말자고,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에서도 웃을 수 있도록 정말 제대로 된 교육감을 뽑자고 만나는 부모들마다 설득했고, 특히 젊은 엄마들에게 적극적으로 말했다.

내가 젊은 엄마들에게 더 공을 들인 이유는 나이 든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일 거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내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그들의 눈빛에서 '그래도 내 아이만은'라는 단어가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내 아이만은'이 갖는 함정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누구보다 아이들을 죽게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부모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어쩔 수 있나, 그래도 내 아이는 여기서 살아남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기대 속에 자신과 자식의 목을 동시에 매달고 있다. 그 목 맨 밧줄을 스스로 끊어버릴 생각도 없이 더 당겨지면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 밧줄에 의지한다. 그 밧줄이 썩은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잡은 그 밧줄이 썩었음은 이 시대의 정의가 밝혀줬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말 우리 아이를 죽이고, 나를 죽일 그 밧줄을 교육감 선거로 끊을 수 있을까? 정말 썩지 않고 아이들에게 인간다운 교육을 줄 수 있는 교육감을 이번 선거로 뽑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교육감 뽑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꼭 뽑아야 한다.
교육감은 '교육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 교육예산이 한 해 8조 5천억 원에 이르는데 그것을 교육감이 주무른다고 한다. 또 8만7천명의 교사, 2천여 명의 초중등교장, 25명의 교육장, 직속기관 및 지역교육청 소속기관 인사권은 물론 학생을 서열화 시키는 일제고사, 0교시 부활, 수준별 이동수업 등의 정책 결정도 다 교육감의 몫이라고 하니 '교육대통령'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 이 '교육대통령'을 뽑는데 어찌 관심을 안 가질 수 있겠는가. 눈을 똑바로 뜨고, 어떤 후보가 진짜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을 되찾아줄 수 있는지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현 교육감 후보 중에 제일 관심 가는 곽노현 후보가 5월 26일, '라디오 21'에서 블로거들과 대담하는 자리가 있다기에 찾아갔다.

▲ <라디오 21TV에서 파워블러그와의 만남> ⓒ 권영숙


그곳에 온 파워 블로거들은 곽노현 후보를 민주진영 후보라고 봐주지 않았다. 날카롭게 질문했고, 곽노현 후보가 자신의 질문에서 빗겨간다 싶으면 냉정하게 다시 또 질문했다. 기억에 남는 것만 몇 가지 정리해본다.

- 곽노현 후보의 공약을 보면 학부모를 위한 공약이 많다. 이곳에 오면서 학생들을 만나 불만이 뭔지 물어보았다. 파마하게 해달라, 머리 자유롭게 기르도록 해달라, 교복 줄여 입어도 되게 해달라, 무상급식은 바라지도 않는다, 맛있게나 해달라 정도였다. 이 학생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생들의 자율능력을 믿는다. 민주주의의 훈련이 필요하다. 현 학교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학생인권을 토대로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만약 너희들끼리 토론해서 정해봐라 하면 어른들이 듣기에 깜작 놀랄 만큼 절제 있는 자기규제를 할 것이라 본다. 어쩌면 인권측면에서 보면 아주 지나칠 수도 있다. 일방적 통제에서 길들여진 습관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새장에 있는 새가 새장문을 열어주면 처음에는 새장에서 몇 번 오가다가 완전히 자유를 향해 날아가듯이 우리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 0교시 없애달라. 야간 자율없애달라고도 한다. 그러나 학벌사회가 심각하다 보니 경쟁에서 떨어져나가면 인생 낙오자라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명문대를 가야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0교시니 자율학습이니 하는 것은 다 강제로 이루어진다. 강제적인 것은 효과가 없는 것이다. 강제하면 아이들 말로 멍때린다. 강제와 불안에서 '선'이 나오지 않는다. 자유에서 나온 선만이 선이다. 안 그러면 위선이다. 강제적 요소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폭력으로 강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의 강제는 없을 것이다.

제가 관찰해보니 운동 잘하고 잘 어울리기 잘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 나이들 수록 인생은 성적순이 아님을 느낀다. 물론 약간의 경제적 안정은 더 있을지 몰라도 행복은 지덕체가 골고루 발달했을 때 오는 것이다.

특히 우정자산이 가장 자산 중에 좋다. 우리는 문화적 가난, 정신적 가난, 연고의 가난에 있다. 이것이 진짜 가난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적성순이다. 인생에서 어느 순간에 궁핍해보여도 20년 지나서 한길을 파고 정진을 하면 40대 후반이 되면 평등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적성 정체성을 찾아주는 여행을 떠나게 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교육자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

▲ <밤 11시 30분, 애오개 역앞에 줄지어 늘어선 입시 학원차> ⓒ 권영숙


- 많은 유권자들이 자기 아들은 좋은 대학을 가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된걸 보면 교육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낭만적이지 않나.

한 사회의 욕망과 불안이 아이들에게 투영된다. 우리 사회의 욕망 불안구조를 한꺼번에 다 해결하기 전에는 서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것이 우선이냐 했을 때 학교를 먼저 세우면 된다고 본다. 어떤 기성세대도 학교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뤄야 한다. 가난한 아이나 부자 아이나 다 하나가 되는 역사공동체로서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출발한다고 했을 때 초등학교에서 출발해야 한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혁신학교를 통해 지역 간의 격차를 줄이고 낙후된 지역에 더 많은 지원을 하겠다.

또 나는 제 3자 개입이 특기다. 관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제 3자 개입인데 그것이 민주주의의 확장이다. 시민들이 참여하고 개입하게 함으로써 관료제를 잡겠다.

▲ 파워 블러거들과의 만남 ⓒ 권영숙


"어떤 '선'도 불안으로부터는 나올 수 없다"
난 조근조근 웃음을 잃지 않고 블로거들의 질문에 답하는 곽노현 후보의 말을 찬찬히 들었다. 자신의 주장을 펼 때 엑센트를 강하게 넣어서 말을 할 법도 한 대 전혀 그렇지 않아 약간 힘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1시간 30분을 차분하게 자신의 공약에 대해 앞뒤 논리적으로 답하는 곽노현 후보에게서 진정성을 느꼈고, 외유내강을 체험했다.

"어떤 '선'도 불안으로부터는 나올 수 없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적성순이다"
"제 3자 개입이 내 특기다"

내가 본 곽노현 후보는 부드럽지만 자신의 교육관에 있어서 너무나 분명한 해답을 갖고 있었다. 바로 인간성 교육의 중심,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면 그 자유를 충분히 절제하면서 다룰 수 있다는 아이들을 향한 믿음이 있었다.

난 곽노현 후보의 인터뷰 기사 중 비리 척결에 대해 보수진영도 주장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이 내 가슴을 울렸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보면 그 사람이 걸어갈 길이 보인다'

그렇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지금의 그 사람을 말해주고, 그 사람이 앞으로 갈 길도 말해준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다른 교육감 후보와 달라도 완전 다르다. 곽노현 후보는 원칙의 길을 갔다. 삼성의 에버랜드 변칙 상속에 대해 문제제기 했고, 긴 싸움 끝에 마침내 유죄판결을 이끌어 냈다. 남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지만 그가 갖은 삶의 원칙의 힘이 패배적 사고에 젖어 있던 우리 소시민에겐 희망이 되었다.

1시간 30분간 진행된 중간에 한번 쉬었다. 저녁을 못 드셨는지 김밥을 서서 몇 개 집어 드신다. 그 모습에서 전혀 교육감 후보로 나온 권위가 느껴지지 않아 괜히 인사를 하고 싶었다. 곽노현 후보는 환한 웃음으로 내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난 곽후보에게서 이상한 것을 느꼈다. 곽노현 후보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순간 이 후보가 사람을 무시하나, 왜 나를 똑바로 안보고 다른데 신경 쓰는건가 싶어 약간 실망감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내일 아침이 되는대로 후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충고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아침이 되기 전에 알았다. 그가 선천성 사시 장애가 있다는 것을. 또 그가 장애인들의 인권침해를 해소하기 위해 김근태 장관시절 성실하게 장애인의 대변자 역할을 했다는 것도 알았다.

부끄러웠다. 난 정말 생각 없이 남들이 내게 "너 남편 어떻게 만났어?"라고 물으면 "야. 나 사시야. 내가 남편 본 게 아닌데 남편이 지 본줄 알더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던 것이 그날 밤 많이 부끄러웠다.

▲ 대담이 끝난 후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곽노현 후보 ⓒ 권영숙


자신의 약점을 감수성과 친화성으로 살린 곽노현 후보.
곽노현 후보가 자신의 장애를 통해 얻은 것 중 하나가 약자에 대한 감수성과 친화성이 풍부해졌다고 한다. 또 지금의 자기를 만든 인생의 큰 스승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자기를 놀렸던 동네 친구들이었다고도 한다.

사람은 여러 종류다. 자기의 약점 안에 갇히는 사람이 있고, 극복하는 사람이 있다. 또 자신의 과거를 부정해 기득권을 잡으면 외면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과거를 토대로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고 보듬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본 곽노현은 1시간 30분 동안 악센트 없이 조용조용 말하는 부드러운 사람이었지만 부드러움 속에 강함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고, 약자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아니 그 무엇보다 이 나라에서 인권침해를 당하면서 교육 받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통해 1,000명의 아이들과 만나는 교육감.
그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하면서 1,000명의 학생들을 직접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교육감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 곽노현의 소통방식은 위에서 지시하는 명령 하달식이 아닌 수평적인 소통일테니 그가 교육감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가슴이 벅차다.

단 하루라도 시간을 내야겠다. 얼마 남지 않은 6월 2일 교육감 선거를 위해, 인권을 가르치는 교육관의 당선을 위해, 시간을 내야겠다.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어디 오겠는가. 선배열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하는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하루의 시간은 내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