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이다

일요일 아침, 세 시간의 헤이리 산책

등록|2010.06.01 11:32 수정|2010.06.01 11:32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멧비둘기 새끼의 안부를 살폈습니다. 모티프원 정원 풀 속에서 이틀을 보낸 이 남매는 밤사이에 느티나무 가지로 자리를 옮겨있었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겨우 16일째인 이 자매는 아직 50m 이상을 날아보지 못했습니다.

▲ 생후 16일째인 멧비둘기 자매 ⓒ 이안수


바람이 지나갑니다. 방금 제 코끝을 스쳤거든요. 바람은 어느 것 하나 소유하고 있는 것이 없지만 모든 것의 주인인 듯싶습니다. 새의 날개도 스치고, 느티나무 잎도 흔들어 말을 걸고, 흐드러진 이팝나무 꽃과 아카시아 꽃에도 뺨을 비비고, 갈대의 허리를 감아보고 지나갑니다. 서류상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바람을, 세속의 아무 직위도 없는 바람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 꽃을 활짝피운 이팝나무와 아카시아 ⓒ 이안수


이즘 우리가 허기를 느끼는 것은 먹을 밥이 없어서가 아니라 탐욕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내가 속았다고 느끼는 것은 남이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내가 허상을 본 것이고, 남의 마음이 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내 눈이 더 깊은 곳에 있는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고 보면, 기실 자신의 허물이 그보다 적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낯뜨거워 삼경에도 잠들기 어렵습니다. 남의 티끌만한 흠을 말하는 논리를 보면, 그 논리를 10도만 비틀어도 그 속에 그 논리를 뒤집을 수 있는 대들보가 있음을 압니다.

바람을 닮아야지. 한 점 바람을……. 저는 지금 마을청소를 가고 있는 중입니다. 내 뺨을 스친 바람 때문에 잠시 발길을 멈춘 것뿐입니다. 참나무골 입구 작은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갈대광장으로 가야하는 것을 잠시 북카페 반디집으로 곧장 걸음 했습니다.

반디집 입구의 통나무를 집으로 삼고 새끼를 키우고 있는 쇠박새 부부의 안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쇠박새 부부는 노란 입을 활짝 벌리고 있는 새끼들을 먹이느라 아침부터 부산했습니다. 10여분을 지켜보는 동안도 부부는 안쓰러울 만큼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먹이고 나면 다시 자신의 몸뚱이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아기를 거두느라 도대체 스스로는 아침이라도 해결했는지가 의문스러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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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공간퍼플 옆 광장에는 마을 주민들이 20여명 모였습니다. 각자 준비된 마대자루와 집게를 들고 마을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지난 2주 동안 헤이리 봄축제가 있었던 터라 다른 달 보다 더 많은 쓰레기가 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금방 마대자루하나가 가득해졌습니다. 헤이리의 안전을 24시간 책임지고 있는 글로벌안전의 송제훈소장님도 순찰차의 운전대대신 마대자루를 잡았습니다. 광장에 흩어졌던 주민들이 다시 모였고 어른들이 솔선해서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류했습니다.

.주민들의 마을청소 ⓒ 이안수


화폐박물관의 박용문선생님은 압박붕대로 손잡이부분을 감은 청소전용 집게를 소지하고 오시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웃과 웃음을 주고받고 있는 표정을 감싼 각각의 스타일이 참 개성 있다, 싶습니다. 평소에 카우보이모자를 즐겨 쓰시던 박종일선생님은 밀집모자도 마치 카우보이모자처럼 양 날개를 멋스럽게 감아올렸습니다. 살색 캡모자 아래로 선글라스를 낀 오성환 감독님의 스타일은 언제보아도 시크chic합니다.

식물감각의 마숙현선생님의 빨간색 redcap의 모자가 검은 단발머리와 검은 셔츠와 환상의 조화입니다. 평소 술을 좋아하시는 구삼뮤지엄의 구종본선생님의 수더분함이 어젯밤에는 분명히 술을 드시지않았다는데도 숙취가 묻은 모습입니다. 마대자루와 카메라를 함께 맨 저의 모습을 참지 못하고 마대자루를 뺏기 위해 다가오는 진영효선생님은 축구유니폼입니다.

이 도덕선생님은 이렇듯 학교 강단에서도 말로서가 아니라 몸의 실천으로 도덕을 가르치는 분이지요. 본인이 경영자로 있는 디자인스토어 'LEXON'의 모든 직원과 사모님까지도 마라톤에 동참시킨, 아마추어를 넘어서는 마라토너 안재영 선생님은 하늘색 모자와 재킷으로 이미 무르익은 헤이리 봄의 정취와 스타일을 맞추었습니다.

송효섭 교수님의 폴로 카키색 캡모자와 점퍼는 이제 수염과 조화된 스타일이 완전히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경형선생님의 호방한 웃음과 창이 들린 모자가 조화롭다싶고  어제 아들을 장가보낸 김종희선생님은 흰머리의 염색을 중지한 뒤부터 더욱 스타일리쉬해졌습니다.

포슬린하우스의 이명환 선생님과 이정규 장신구의 정건수선생님, 세계민속박물관의 이영진 관장님은 묵묵한 성품을 반영한 스타일입니다. 단연 압권은 천호균선생님과 이상억선생님입니다. 밀짚모자에 원색으로 그림을 그린다음 그것을 앞뒤로 바꾸어 쓰시는 분은 아마 천선생님뿐일 것입니다. 가장 효율성 있는 완벽한 프로 청소복장은 언제나 이상억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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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이명섭교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분류된 쓰레기를 옮기는 것으로 한 시간 동안의 마을 청소는 끝이 났습니다. 헤이리 곳곳에 쓰레기통을 설치했지만 쓰레기통 밖의 쓰레기는 줄지 않았습니다.

▲ 쓰레기통이 설치되어도 투기된 쓰레기의 양을 줄지않았습니다. ⓒ 이안수


진영효선생님을 비롯한 몇 분은 일요일마다 하는 족구 아침운동을 위해 갈대광장에 네트를 설치하고 동화나라의 정병규선생님은 시원스럽게 물을 쏟아놓는 갈대광장의 지하수로 갈증을 해소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족구는 하지 않으세요?"
제가 발길을 잡으며 물었습니다.
"몸 쓰는 것은 마름들이나 하는 것이지요. 필요하면 우리집 삽사리를 내보낼게요."
언제나 겸양을 거두는 경우를 보지 못했던 저는 정선생님의 농을 섞은 대답에 기분 좋은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습니다.

▲ 아침운동, 족구 ⓒ 이안수


저는 보름째 흐드러지게 노란꽃잎을 벌리고 있는 노란꽃창포가 궁금해서 갈대늪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작은 갈대늪의 한 자락씩을 차지한 수련과 노란꽃창포, 새잎을 낸 갈대군락들의 어울림이 제각기 아름답습니다. 언덕위의 그림자 이정희 선생님께서 저의 아들 영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철없이 히죽히죽 웃기만 하고 다니던 영대가 요즘 헤이리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갈대광장입구에는 한결같이 어머니가 누워계셨습니다. 넉넉한 가슴을 하늘로 향한 채……. 여전히 제게 어머니의 가슴은 풍요로움이 휴식이고 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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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는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다시 쇠박새 둥지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지금 새끼를 키우고 있는 반디의 통나무기둥 구멍은 작년 쇠딱따구리의 차지였습니다. 올해는 쇠박새 부부가 이 구멍집의 주인이 되어 생명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부리가 달토록 마른 기둥에 구멍을 쪼아서 집을 지었던 쇠딱따구리는 올해 쇠박새에게 전혀 소유권 주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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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문득 시선을 북카페 반디로 돌렸습니다. 여름밤의 허공을 수놓았던 반딧불이의 배처럼 타원형으로 욕심 없이 지은 작은 2층집이 시인의 집임이 다행스러웠습니다. 거대한 몸집의 집이었다면 플라타너스 두 그루도 사라져야했을 것이고 큰 집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쇠딱따구리는 이 마른 기둥에 집을 지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며 더구나 쇠박새가 그 집을 다시 물려받을 생각은 더욱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북카페반디는 밤이면 반딧불이의 배처럼 옅은 빛을 냅니다. 처마아래의 빈틈으로 빛을 머금은 모습을 저는 이미 몇 해 전부터 반딧불이의 불빛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소박한 북카페 반디의 밤과 낮 ⓒ 이안수


층계참에는 화분에 담긴 꽃들이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화분도 작고 꽃들도 작았지만 함께 모인 이 꽃서리들이 유난히 아름다웠습니다. 작지만 함께 모여 조화를 뽐내고 있는 것입니다. 문득 헤이리가 작은 꽃송이들의 집합체인 야생화군락처럼 여겨졌습니다. 홀로이면 그 작은 몸집 때문에 존재도 희미할, 그렇지만 함께 모여 군락을 이루니 반디 계단참의 화분처럼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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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새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플라타너스 나무에 걸린, 종머리 위에 나비가 달린 작은 풍경이었습니다. 바람이 흔들고 간 것입니다. 이 풍경은 바람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몸을 흔들어 작은 새소리를 내었습니다. 이것이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조화이고 순리다, 싶습니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의 풍경 ⓒ 이안수


여전히 이른 일요일 아침, 부지런한 연인 한 쌍이 이미 반디의 플라타너스의 품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누구의 눈에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쇠박새 둥지를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집의 정원으로 돌아오자 버드나무가지 사이를 오가는 것이 쇠박새였습니다. 반디로부터 불과 200m에 불과한 모티프원으로 나들이 삼아 부부가 잠시 저를 따라 온지도 모르겠습니다.

모티프원의 자작나무 가지에서는 벌써 남매를 성공적으로 키워낸 멧비둘기 어미부부가 다시 구애의 몸짓에 여념이 없습니다.

.모티프원의 자작나무가지위에서 구애중인 멧비둘기 부부 ⓒ 이안수


헤이리는 사랑만이 가득할 마을입니다. 그리고 사랑만을 얘기해야할 마을입니다. 마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법, 그것은 풀기를 세게 먹인 광목처럼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뿔의 크기를 견주는 것이 아니라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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