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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용감? 그냥 죽을 뿐이다

[해외리포트] '그들'과 달리 나는 전쟁이 두렵다

등록|2010.06.02 09:22 수정|2010.06.11 18:12

▲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미국은 지난 1994년 이곳을 정밀폭격하려고 했다. ⓒ 연합뉴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다. 그러나 '용감'이란 위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냉철히 파악된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는 신념의 무게가 더 크다고 여겨 이를 실천할 때 용감하다고 한다. 뭘 모르고 덤비는 사람들에게 무식은 그냥 무식일 뿐이다.

내가 그랬다. 1994년 당시 나는 학교를 막 마친 풋내기 사회인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학교에 있는 동안 특별한 사회 의식을 갖추지 못했다. 시국 문제나 학내 분규로 들끓던 시대에 입학했지만, 여기에 개입하기보다는 적당히 학점을 따서 졸업하는 선택을 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거니와,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북한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토대는 고등학교까지는 반공교육이었고, 그 이후에는 신문과 방송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듯 말이다. 

1994년 봄, 나는 여느 때처럼 즐겁게 잘 살고 있었다. 친구와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텔레비전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북한 관리가 등장해 '전쟁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쟤들 왜 또 저래?" 나는 이렇게 말하고 계속 국수를 먹었다.

이후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걸프전 당시 언론을 통해 알려진 '스마트 폭탄' 같은 것으로 '정밀 폭격'을 가해 필요한 시설만 깔끔하게 파괴하면 될 일 아닌가.

그러다가 전면전으로 번지거나 북한이 남쪽으로 보복 미사일 공격을 해 오면? 설마, 우방인 미국이 남한이 쑥대밭이 되도록 내버려 두겠어? 그럴 위험이 없으니 공격을 하겠다는 거겠지. 그 해 봄은 이렇게 평온하게 지나고 있었다. 

미국에서 알게 된 끔찍한 사실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깨닫게 된 건 10년도 더 지나서였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말이다. 몸담고 있던 대학의 동아시아센터에서 남북문제를 미디어와 관련해 강의해 달라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어떤 분야를 가장 잘 아는 방법은 해당 주제에 대해 강의를 하는 것이다. 여름 방학 내내 수업 준비를 하면서 나는 아주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히덕 거리며 밥을 먹던 1994년의 봄에 내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운이 조금만 나빴어도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독자들이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994년 6월, 미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의 핵시설을 폭격하기로 하고 시뮬레이션까지 마친 상태였다. 미국은 '정밀 폭격(surgical attack)'이 한반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예측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하던 미 관리들에게는 소환 지시가 내려졌다. 당시 "1994년 절반을 한반도 전쟁을 준비하며 보냈다"고 고백한 미국 관리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영변 핵시설을 '정밀 폭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이 공격으로 인한 결과가 해당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건 뻔한 일이었다. 북한 시설을 공격하게 되면 북한은 돌발 공격을 감행해올 것이다.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 너머에는 최신장비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냉혹한 훈련을 받은 대규모 북한군이 주둔해 있다." - <워싱턴포스트> 2002년 10월 20일자. 애시튼 카터/윌리엄 페리 '다시 벼랑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발표로 고조된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전쟁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앞의 '우리'가 누굴 지칭하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하고 싶다. '그들'과 달리 나는 전쟁이 매우 두렵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전쟁광이 아니라면 누가 전쟁을 원하겠는가?

▲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 아내를 데리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건너가 김일성을 만났다. 그의 이 '돌발행동'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크게 당황했지만, 그의 용감한 행위로 인해 한반도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 Carter Center


1994년, 미국이 예측한 남한의 피해상황

'전쟁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순진함'을 그의 군면제 경력과 연관지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꼭 군대를 갔다와야 전쟁의 무서움을 아는 것은 아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눈과 약간의 판단력이면 충분하다.

1994년 당시 미국이 예측한 남한의 사망자는 서울만 수십 만 명이 넘으며, 난민은 수백 만에 이른다. 앞에 인용한 <워싱턴포스트>의 글을 계속 읽어 보자.

"미 정부는 (북한 시설 공격으로 전쟁이 일어날 때) 미군과 한국군이 북한의 서울 진입을 막아낼 능력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 방어의 대가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수천 명의 미군과 수만 명의 한국군이 전사할 것이고, 수백 만의 난민 행렬이 고속도로를 메울 것이다. 북한측의 피해는 더욱 막대할 것이다. 한국전쟁 이래로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이 될 것이다." 

이래도 두렵지 않은가? 이런 엄청난 남한의 피해상황을 예측하고도 미국은 북폭을 감행하기로 결정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 정부 최대의 관심사는 (남한의 안보가 아니라) 미국의 안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판단이었다.

'무지가 환희(Ignorance is bliss)'라고 했던가. 나라의 운명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 나는 국수가락을 입에 넣으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까지도 주위에서 이 위험한 '무지의 환희'를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도 아닌 자기 나라 땅에서 '전쟁불사'를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국가를 다스린다는 정치인이며, 여론을 이끈다는 언론인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사고를 결심해야 사고를 피할 수 있고, 파산을 결심해야 파산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현재 한국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통치 철학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바로는, 전쟁을 피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

위험한 '무지의 환희'

▲ 5월 24일자 김진 칼럼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 중앙일보

"'만약 너희가 도발하면 우리는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북한의 모든 핵심 목표를 폭격할 것이다.' 그래도 과연 북한이 장사정포를 쏠까. 만약 그래서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일까.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북한 정권에 지진(地震)이 되어 자유민주 통일의 기회가 앞당겨진다면 그것이 나쁜 일일까."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이 지난 24일에 쓴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칼럼이다. 뉴미디어 학자로서 진단하건대, 김진 위원은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게임이나 영화의 이미지를 현실에 투사하는 '트랜스코딩(transcoding)' 현상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김진 논설위원이 '3일만 참아달라'고 했으니, 나도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게임을 3일만 참아달라고 말이다. 항상 3일째가 어려운 법이지만, 전쟁을 사흘 견디기보다는 쉬울 것이다.

1994년에도 한국 정치권과 언론은 변함 없이 '전쟁불사'를 외치고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반도를 전쟁의 포연에서 구해낸 것은 미국 전직 정치인과 언론이었다. 한참 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 카터 전 대통령과 케이블 뉴스 씨앤앤(CNN) 방송팀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이 전세계 텔레비전에 방송되자, 미국 정부로서는 북한 공격의 명분을 잃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대화로 상황이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전직 언론인이자 교수 돈 오버도퍼는 저서 <두 개의 한국 (The Two Koreas)>에서 이렇게 분위기를 전한다.

"이를 지켜 보던 미국 정부관리는 카터의 행위가 '반역행위나 다름 없다'며 분개했다. 또 다른 관리는 미국이 경제, 군사제재에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북한이 지연작전을 쓰려는 게 아니냐며 우려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고어 부통령은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나 결국 이렇게 천명하기에 이른다. 카터 대통령 때리기에 나서기보다는 생산적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331쪽.

'기다리는 것도 전략'일까?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든, 현 정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대북정책은 '기다림의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전략'이라니, 내 지난 과거가 갑자기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 기다림 끝에 찾아온 것이 현재의 대치 국면이다.

천안함 사건이 이번 지방자치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선거를 통해 북한 정권을 심판하고 싶은 유권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남한 공동체 지도자들을 선발하는 것이다. 동시에 각 정당이 그동안 약속하고 실천해 온 (혹은 실천 안 해 온)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현재의 남북 대치상황은 대북정책의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당연히 현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경제, 교육, 건강, 복지, 환경 등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한가하게 기다려도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번 선거를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투표라는 국민의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제 말도, 글도, 거리의 몸짓도 자유롭지 않게 된 한국사회에서,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사실상 유일한 권력이다. 

투표장으로 가서 줄을 서는 것은 분명히 귀찮은 일이다. 훨씬 안락하고 즐거운 유혹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이 지난 선거에서의 '안락한 선택'의 결과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귀찮음의 유혹을 뿌리치고 투표소로 달려가는 것은 '전쟁불사'를 외치는 것보다 훨씬 용감한 선택이다. 적어도 말로만 떠드는 건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몇 분만 줄을 서면 2년 반을 훨씬 더 즐겁고 평화롭게 보낼 수 있다. 무지하지 않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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