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의료분쟁은 '시간싸움'...1심→대법원까지 무려 10년

대법에서 10년 만에 의료소송 이겼으나 파기환송으로 고법 판결 또 기다려야

등록|2010.06.01 21:23 수정|2010.06.01 21:23
환자가 의료소송을 제기할 때 고민 중 하나는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는 불안감이다. 실제로 의료분쟁에서는 장기간의 법정싸움으로 상처를 받고 지치는 경우가 많아 승패를 떠나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의료분쟁은 '시간싸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의료분쟁의 '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나왔다. 신혼부부가 아기를 분만하는 과정에서 조산사의 과실로 뇌성마비 상태가 됐다는 소송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10년 넘게 걸렸다. 소송을 제기할 당시 만 1세가 되지 않던 아기는 벌써 만 11세가 됐다.

하지만 여기서 끝도 아니다. 대법원이 '조산사의 과실의 없다'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고등법원에 돌려보냈기 때문에 고법의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오기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만약 조산사가 불복해 다시 상고할 경우 또 대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 이 사건을 들여다봤다.

1999년 4월 18일 출산... 2000년 4월 뇌성마비 진단

A(37,여)씨는 1999년 4월18일 진통을 느껴 평소 다니던 경남 진주에 있는 J병원 분만실에 입원했는데, 당일은 공휴일이어서 산부인과 당직의사는 자택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A씨는 자연분만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조산사인 L(39,여)씨가 간호조무사와 함께 분만을 맡게 됐다.

L씨는 이날 오전 10시경 A씨에게 유도분만제를 주사했고, 10시15분경 양수에 태변착색을 발견했으나, 태아의 심박동수가 정상이고, 자궁이 열리며 분만과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준비하는데 15~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제왕절개 수술을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단, 산부인과 당직의사나 응급실 당직의사에게 연락하지 않고 유도분만을 계속했다.

이렇게 아기는 자연분만으로 10시32분에 태어났다. 그런데 아기는 심한 청색증(피부가 파랗게 변하는 것)을 보이고, 자극을 받아도 울지 않으며, 반사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등 호흡곤란을 보였다.

조산사 L씨는 일반적으로 출산 직후의 신생아가 일시적으로 호흡을 하지 않더라도 자극을 주면 호흡이 돌아오는 것이 통상이기 때문에 인공호흡을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3~4분 동안 간호조무사와 번갈아 가며 아기의 등과 발바닥을 두드렸다.

또한 입과 코, 기도에서 아기가 흡입한 태변을 제거하고, 고무관을 이용한 인공호흡기로 산소를 공급했으나 아기는 계속 호흡을 하지 않았다.

결국 L씨는 소아과 전문의에게 연락했고, 의사의 응급조치로 아기는 비교적 안정됐으나, 각종 검사 결과 신생아질식, 심한 태변 흡인성 폐렴 등의 진단을 받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다.

이후 상태가 호전돼 퇴원해 대학병원에서 주기적으로 태변 흡인성 폐렴 치료를 받던 중 2000년 4월 발달지체가 의심돼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검사결과 경직형 사지마비, 정신지체 및 언어장애,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현재 아기는 뇌성마비로 발달장애, 언어장애를 겪고 있어 운동발달치료와 인지발달치료를 받고 있다.

2001년 3월 소송제기... 1심 판결 2004년 5월 원고 패소 

이에 A씨 부부는 2001년 3월 "L씨가 양수에 태변이 착색되는 것을 발견했으면 아기가 태변을 흡인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즉각 제왕절개 수술을 시행하지 않고 자연분만을 유지한 과실이 있다"며 조산산 L씨와 J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1심인 창원지법 진주지원 민사1단독 윤성식 판사 2004년 5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윤 판사는 "양수에 태변이 착색돼 있더라도 태아가 반드시 흡인했다고 볼 수 없고, 피고는 흡입기로 태변을 제고하고, 고무관을 통한 인공호흡기로 아기에게 산소를 공급한 점, 그래도 호흡이 없자 소아과 의사에게 연락한 점 등을 종합하면 당직 의사를 호출하지 않아 기관 내 삽관을 통한 산소공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피고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06년 10월 항소심 판결 "조산사 과실 책임 없다" 원고 패소

이에 A씨가 부부가 항소했으나, 부산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2006년 10월 A씨의 부부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시 당직의사가 산부인과 또는 소아과 의사가 아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태변 착색이 발견될 당시 측정한 태아의 심박동수가 정상이었고, 산모의 출산 과정이 정상적이었으며, 다른 합병증의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던 이 사건에서 태변 착색이 발견됐다는 사정만으로 피고가 당직의사에게 보고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고가 태변 착색을 발견한 때로부터 아기를 분만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이 17분이고, 태변 착색을 발견하고 곧바로 제왕절개술을 시행하기로 결정하더라도 병원 외부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가 병원에 와서 수술준비를 하고 실제로 시술에 이르기까지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 명백하므로,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응급조치로 빠른 시간 내에 아기의 호흡이 정상화되고 청색증이 사라진 이상, 당시 병원 응급실에 소아과 의사가 아닌 의사가 대기하고 있었던 이 사건에서 숙련된 소아과 전문의만이 시행할 수 있는 신생아에 대한 기관 내 삽관을 통한 산소 공급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주의의무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따라서 아기가 분만 중 태변 흡인으로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이로 인하여 뇌성마비가 됐는지 여부에 대해 따져볼 필요도 없이 원고들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고, 피고의 과실을 전제로 병원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구하는 원고들의 주장 또한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2010년 5월 대법원 판결... "조산사 과실 책임있다" 원심 파기환송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지난 5월 27일 A씨 부부가 "조산사의 과실로 갓 태어난 아기가 뇌성마비 상태가 됐다"며 조산사 L씨와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간호사 자격을 갖고 소정의 절차를 거친 조산사는 분만과정에서 산모와 태아의 상태가 정상적인지 여부를 계속적으로 관찰하고 산부인과 전문의 등으로 하여금 발생 가능한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적시에 보고해야 하며, 응급상황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범위 내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는 산부인과 전문의 등에게 보고를 지연함으로써 아기가 의사로부터 적시에 기관 내 삽관을 통한 태변제거 및 인공호흡 등 응급조치를 받을 기회를 상실시켰을 뿐만 아니라, 분만실에서 호흡을 하지 않는 아기의 코에 산소가 나오는 고무관을 대주었을 뿐 응급조치인 마스크와 백(ambu bag)을 이용한 인공호흡을 시키지 않는 등 의료과실이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기에게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다른 요인이 존재를 추인하게 할 만한 별다른 사정이 없는 것으로 보여, 아기의 뇌성마비는 분만과정에서 피고의 과실로 인해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가 조산사로서 필요한 응급조치를 모두 이행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한 판단은 조산사의 임무와 의료과실의 기준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