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못생긴 부처라도 그 미소는 얼짱이네...

[논산 관촉사] 보물 석조 미륵보살 입상

등록|2010.06.03 21:04 수정|2010.06.03 21:04

▲ 55억 7천만년쯤은 기다릴 수 있지... ⓒ 송유미

  여행은 항상 설렙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과의 여행은 이 설렘의 파장을 배로 증가시키는 듯합니다. 미국에서 사시는 외가쪽 오라버니, 일가 언니, 모 대학 철학과 교수님과 함께 지난달 28일 찾은 논산 관촉사 관광은 나에게 퍽 의미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불가에서는 길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끼리 잠깐 옷깃을 스쳐도 그 인연은 전생에서 숱한 만남의 업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즐거운 여행길의 동반된 인연은 얼마나 소중한 인연들이었을까 생각하니, 새삼 이 축복된 인연에 감사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2554년 전 이땅에 오셔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쳐 부처가 된 석가모니는, 숱한 사람들이 호수의 연꽃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어떤 연꽃은 진창 속에 있고, 어떤 연꽃은 진창을 헤어나려 하고 있으며, 또 어떤 연꽃은 간신히 머리만 물 위로 내밀고 있고, 또 어떤 연꽃은 꽃을 피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고해를 헤매고 있는 중생의 모습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미륵불은 55억 7천만 년 뒤에 이 세상에 출현한다는 부처

'미래불(미륵불)'은 그 석가모니께서 열반 한 후, 55억 7천만 년 뒤 이 세상에 출현한다는 부처를 이릅니다. 그러니까 논산 관촉사 경내 서 있는 '석조미륵입상(일명 은진 미륵)'은, 앞으로 약 55억 7천만년 뒤에 출현할, 미래불의 모습인 것입니다.

정말 이 길고 긴 시간을 사람이라면 어떻게 기다리겠나 싶으니, 장대하게 키가 큰 불상이 문득 위대한 신처럼 다가왔습니다. 정말 대우주적인 시간에 비해, 인간이 가진 시간이란 것, 정말 찰나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또 이 삶의 한 순간 순간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55억 7천만년을 기다릴 사랑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 관촉사 ⓒ 송유미



마치 촛불이 빛나는 것 같다 하여 관촉사라 불리우다

관촉사 은진미륵상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불상의 높이가 l8.1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라는 점과 토속적인 조각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불상을 찬찬히 뜯어보니 여간 재미 나는 불상이 아니었습니다.

불상의 얼굴의 이마가 좁고 턱이 넓은 삼각형이며 옆으로 길게 째진 눈, 넓은 코, 한 일자로 꼭 다문 큰 입이 토속적인 느낌을 주는데, 왠지 어울리지 않은 부조화의 조화로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은진미륵'은 또 챙이 넓은 관까지 쓰고 있어 매우 해학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웃는 듯 마는 듯 웃는 그 미소는 시쳇말로 얼짱입니다.
  불상의 몸은 거대한 돌을 원통형으로 깎아 만든 돌덩이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관음보살의 신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깨에 걸쳐 입은 가사는 어깨에서 양쪽으로 길게 내리고 있으며, 가로무늬가 있고 몸 중앙으로 몇 개의 U형 옷주름을 돌렸을 뿐 매우 단조로운데도 화려한 느낌을 안겨주었습니다.   

▲ 관촉사 은진 미륵보살 옆 모습 ⓒ 송유미


  아주 먼 옛날 중국의 지안이라는 승려가 이곳에 세워진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고 미간의 옥호에서 발생한 빛이 "마치 촛불을 보는 것같이 미륵이 빛난다"하면서 예배하였는데, 이 연유로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 관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 중의 하나인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석조미륵보살입상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고 전하는 목조 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다. 전형적인 산지가람으로 본래의 사역은 현재보다 더 넓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 송유미


  관촉사 사찰은, 968년(고려 광종 19)에 혜명 대사가 짓기 시작하여 1006년에 완공하였다고 합니다. 관촉사에는 전해지는 설화가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산에서 고사리를 캐던 여인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이에 나라에서는 이 터가 신성하다고 여겨 절을 짓게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관촉사 법당은 1386년(우왕 12)에 신축되어 건립하였으며, 1581년(선조 14) '백지'가 1674년(현종 15)에는 '지능'이 중수하였다고 전합니다. 당시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목조 건축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내에는 은진 미륵(보물 218호)을 비롯하여, 석등:보물 제232호)·사리탑(연화배례석:충남유형문화재 제53호)·사적비·관음전·삼성각·사명각·해탈문·현충각·기미독립운동기념비 등이 있습니다. 절 입구에는 1914년에 만든 반야교라는 현대식 구름다리도 있었습니다.   관촉사는 충남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에 자리한 사찰로,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 중의 하나인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유명해진 절입니다. 경내에는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하는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을 비롯, 석문을 통과하여 경내에 들어오면 최근에 조영된 미륵전, 대웅보전, 명곡루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관촉사를 창건할 당시 참배객이 너무 많이 몰려 이를 막기 위해 담장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는데, 그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관촉사 석문이라고 합니다.  

관촉사 석문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경내에 들어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문으로 크기는 바깥너비 194cm, 안너비 137cm, 바깥높이 196cm이며 석문 자체의 크기는 높이 1.8m, 너비 2.0m.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입구의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윗면 천장에 5개의 장대석을 얹음으로써 4각형의 석문을 이루고 있다. 돌기둥은 너비 40㎝의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축조연대에 관한 고증이나 기록은 없으나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사찰이라는 도장에 들어가기 위한 문이라는 뜻에서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 송유미




▲ 관촉사 석탑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3.43m의 고려시대 석탑이다. 현재 남아있는 형태는 4층 석탑으로 보이지만 옥개석의 체감 비율로 보아 오층 석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륜부는 별다른 장식 없이 보주만 올렸으며 기단부의 지대석(탑의 주춧돌)은 2층으로 쌓았다. 석탑 옆에는 보물 제232호인 관촉사 석등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관촉사 배례석이 있다. ⓒ 송유미



▲ 관촉사 석등,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3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5.45m. 화강석제. 하대석은 8꽃잎의 복련을 조각하고 윗면에 2단 받침을 마련하여 간주를 받고, 간주석은 원주형으로 중앙부 원대에 4꽃잎의 복련을 장식하였다. 상대석은 방형이며, 하면에 8꽃잎의 앙련(위로 향환 연꽃)을 원형으로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2층으로, 하층의 주화사는 마치 네 기둥집 모양으로 되었고, 상층 화사석은 형식적으로 전·후면에만 화창을 조각하였다. 옥개석은 네 귀가 반전을 보이고, 정상에는 보주가 있다. 968년(고려 광종 19)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송유미

▲ 풍경 ⓒ 송유미

 



독일 시인 헤세는 그의 <싯다르타>에서 '인연을 아는 것은 사고(思考)요. 사고를 통하여서만 감각은 인식이 되어 소멸되지 않을 뿐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 되어 그 속에 있는 것이 빛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정말 헤세의 말처럼, 사람은 만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빛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태평양을 건너 갈 나이 많은 오라버니와의 이별을 생각하니 괜히 울적했는데, 관촉사 산문을 내려오는 길에 만난 다람쥐 한 마리의 귀여운 재롱에 함께 웃으며 즐거워 했습니다. 관촉사 미륵불도 입가의 꼬리를 올리며 빙그레 웃는 듯 여겨졌습니다… .    

▲ 관촉사에서 만난 다람쥐 ⓒ 송유미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