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한 후 외롭고 힘들게 살고 있는 친구가 늦은 밤 거리를 헤치고 집으로 간다. 힘내라! 친구야 ⓒ 최유경
'x여사 웬일이세요? 대전까지 놀러오셨네. 관광차 오셨…나…요? 친구는?…!'
그런데 그 부인이 다른 젊은 남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웃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말을 막 뱉으려는 찰나 내 입을 틀어막았다. 잡고 있던 아들 손을 놓고 흐려진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봐도 틀림없이 친구 부인 x여사다.
내가 자랑하는 장기 중 하나는 사람 기억하는 것이다. 틀릴 리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닮은 사람도 많다. 말도 못하고 지나친 그 여자를 자꾸 뒤돌아보느라 아들과의 대화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잘못 봤겠지, 닮은 사람이겠지' 충격과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는 나를 아들이 깨운다.
"아빠 내말 들려요? 왜 내말에 대꾸를 안해요?"
"응? 으응! 그래 뭐라고? 뭐라고 그랬냐?"
광주에서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전에 사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친구 부인도 성장지가 광주다. 물론 그 여자의 친인척 관계는 잘 모르지만 대전에는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어린 아들에게 말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불러 자초지종을 말하고 의견을 구했다. 아내는 "남의 사생활이고 잘못 볼 수가 있으니 절대 전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변함 없이 일년에 네 번씩 모임을 가졌고 일년에 한 번은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서 내가 하는 일은 친구를 가만히 지켜보고 "내가 오류였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가 모임에 빠지고 전화만 한다. 그 친구는 모임에 가장 적극적이고 모임을 갖자고 주장한 친구다. 아파트단지에서 제법 큰 수퍼를 운영하는 친구는 항상 바빴다. 친구들은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했다.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친구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사이좋던 친구가 이혼했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다들 걱정을 하며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웬만하면 아이들을 생각해서 합치라고 종용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간 친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다 잊어버리고 용서해줄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같이 살자. 내가 울면서 사정했었다. 그런데 한 번 돌아선 마음이 되돌아오지 않더라. 심지어 대학생 두 딸들이 엄마를 따라가지 않고 나하고 살겠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난 후 친구들은 재혼하라고 재촉했지만 요지부동이다. 허긴 어린애도 아닌 대학생 딸들이 옆에서 바라보고 판단했으니 누가 잘못했는지는 추측이 가능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여자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나 혼자 살란다. 근데 바쁠 때 잘 도와주던 딸들도 요사이는 회사일이 바쁜지 애인이 생겼는지 잘 도와주지 않아 힘들다.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섭섭할 때가 많고 힘들다. 수퍼를 운영하니 먹고 사는데는 지장없지만…."
우리가 더 이상 얘기를 하면 친구가 힘들어 할까봐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빈 술잔은 많아지고 담배꽁초가 늘어만 가는데 가슴 한켠이 휑하다. 가슴이 먹먹하다. 내 가슴이 이렇게 휑한데 친구 가슴은 말해 무엇하랴. 또 다른 친구가 혀가 꼬부라졌다.
"야 인마! 세상에 절반은 여자여. 떠난 사람 잊어버리고 네 인생 찾아라."
"아니야! 나 혼자 사니 간섭 받는 일도 없고 편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여자라면 생각하기도 싫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인생이 있다. 저마다 짊어지고 갈 짐이 한 짐이다. 잘 사는 사람은 잘 산대로. 못 사는 사람은 못 산대로. 인생의 길동무를 잃어버린 친구. 가로등 아래로 저멀리 멀어져가는 친구의 어깨가 오늘따라 축 쳐져있다.
내가 잘못했었나. 그 때 전화했어야 했나. 인생. 모두가 한 짐이다.
친구야! 힘내라.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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