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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로 포장된 MB정부의 좌파환원주의 비극

등록|2010.06.04 16:14 수정|2010.06.04 16:14
위기는 언제나 정점에서 시작된다.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에 익숙했던 시민들의 성장욕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집권에 성공했던 이명박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화려한 포장 속에 감추어 놓았던 선진화 담론의 실체를 드러냈다.

지난 2년여 동안 그들을 집권의 정점에 올려 놓았던 것은 '좌파환원주의'였다. 반 세기 이상 냉전의 이데올로기에 감금되어 있는 정치무대에서 보수의 품격은 어차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뉴라이트와 선진화의 포장 속에 감추어진 것이 지난 정부하에서 사람들이 농담처럼 주고받던 국민스포츠로서의 대통령 비판을 담론화했던 '좌파환원주의'였다는 것을 시민들이 깨닫는 데는 무려 2년여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만큼 민주화를 압도했던 근대의 성장담론의 뿌리는 무척이나 견고했던 것이다.

권위주의적 국가와 재벌의 공고한 결탁에 기초했던 소위 한국식 자본주의화 과정이 빚어낸 근원적 위기의 책임을 모두 좌파에게 돌렸던 집권세력의 담론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경제성장이 안 된 것도 좌파, 자신들의 법치가 안 된 것도 좌파, 안보가 뚫린 것도 좌파, 모든 것이 좌파의 탓으로 돌렸던 집권세력은 결국 그들이 내세웠던 선진화가 '좌파없는 세상' 이외의 다른 내용은 없다는 것을 지난 2년여 동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안보를 구멍낸 "좌파환원주의"

문제는 좌파환원주의의 극단성에 있다. 우선 안보문제를 한국사회가 실질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군사, 외교, 환경, 에너지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좌파척결과 동일시 했다는 데서 치명적인 오류를 저질렀다.

좌파없는 세상이 국가적으로 가장 안전한 세상이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는 검찰과 경찰은 물론 시민들이 국가에 독점적으로 위임했던 물리력과 법적 권한을 일방적으로 남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국가가 특정한 세력과 계급의 편을 든다는 인식을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심어 주었고, 사회적인 통합에 깊은 균열을 만들어 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좌파척결을 안보와 동일시 함으로써 이로 인해 실질적인 안보문제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는 것이다. 천안함 문제는 현 정부가 "좌파척결"을 안보문제와 동일시 하면서 얼마나 안보문제에 무능했는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현 집권 세력은 좌파환원주의로 장기적으로 보면 노태우 정부이래 초석이 놓여지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하에서 변곡점을 그려나가던 남북문제의 기본 담론을 대화에서 대결로 이동시킴으로써 기존의 안보구조를 흔들었다. 더욱이 내용조차 부실한 성장담론을 남북관계와 심지어 "녹색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환경문제까지 연장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안보는 이 정부하에서 지난 2년간 거의 무책임하게 방기되어 왔다.

좌파환원주의의 경제 분야로의 확장으로 한국경제의 토대는 현 정부 집권 이래 더욱 불안정해졌다. 분배를 강조하는 "좌파정책"을 배제하고, 성장을 가속화하면 분배와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경제의 독점만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의 경제에 대한 통제권은 약화되고, 재벌기업들의 국가포획은 이 정부하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경제와 시장의 건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통제를 약화시키는데 있지 않음을 현재의 세계경제가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하에서의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약화와 같은 조치들은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기반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 더욱이 이건희 삼성회장의 사면을 포함한 다양한 재벌비호정책과 편파적인 노동정책은 사회적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유발시키고 있다.

정치의 공동화를 빚어 낸 "좌파환원주의"

정치에서의 좌파 환원주의는 소통의 극단적 단절로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의 당정분리로 인한 정치의 지나친 다이내미즘이 청와대 권력의 공동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인식하에서 철저한 정당통제를 추구했던 이명박 정부의 방침은 의회정치를 마비시켰으며, 제도권 정치의 공동화를 초래했다.

수렴의 정치는 실종되고, 고립의 정치만이 남게 되었다. 여론은 수렴의 대상이 아니라 조작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정치적 승리는 정책적 설득력에서 오기보다는 정적에 대한 탄압에 의해 전취되었기에 강고한 정적이 사라지는 순간은 오히려 스스로의 부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되어 버렸다.

사회 문제에 있어서 좌파환원주의는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전선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방적 화법을 비판했던 현 집권세력은 스스로 시민 위에 군림하는 진리의 독점자처럼 행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왔다. 촛불시위에 대한 태도와 정권의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 그리고 각종 매체를 동원한 여론 공세로 시민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대선에서의 승리를 잘못 직역한 것엔 다름 아니었다.

강한 국가 아래서 강한 시민사회를 건설했던 한국 민주화 과정을 전복하는 듯한 정책은 오히려 새로운 동원과 저항의 정치를 부채질했을 뿐이다. 특히 용산문제와 4대강 문제, 그리고 공공기관과 매체의 사적인 장악은 국가가 중립에 있기 보다는 혹은 특정한 정책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시민들에게 국가가 일방, 특정 계급의 편을 들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현 정부의 좌파환원주의의 연장은 그리하여 마치 독재정권하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립과 같은 전선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하향 나선운동(downward spiral)

선진화의 포장 속에 가려있던 좌파환원주의는 결국 한국사회를 다시금 87년 시기의 민주화와 같은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연합과 같은 민주화의 캐치올(Catch-all)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강남과 강북의 계급투표는 이러한 사회현상의 정치적 반영일 수 있다.

다만 1987년 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화 연합이 분열되어 민주주의가 선거적 측면에 제한되고 경제적 민주화가 실현되지 못했던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국면은 오히려 민주주의 뿌리가 기초단위에서 부터 실현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있으며, 경제적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금번 지방선거 결과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식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새로운 재구조화에 대한 개혁세력 전체의 재조직화의 서곡이기도 하다.

아직 적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지만 정점을 통과한 이 정부에게 남은 것은 내리막길밖에 없어 보인다. 지난 2년여의 세월을 버텨 온 좌파환원주의가 바닥을 드러냈고, 새로운 담론을 계발하기에는 현 집권세력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고 능력도 많지 않다. 이미 수십여 년의 숨막히는 성장을 통해 "풍요한 사회"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성장과 풍요의 약효는 제한적이다. 더욱이 그 풍요가 특정한 자들에게만 몰려 있다면 민주주의와 대안적 가치를 희생하는 풍요는 오히려 독처럼 느껴질 것이다.

문제는 내리막길이 어디서 시작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정치경제학에서 시작돼서 정치경제학으로 끝난다. 이미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궁핍'을 보상하기 위한 탐욕적 사냥의 후유증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견제와 균형을 붕괴시킨 정치체제는 대체로 부패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패는 권력이 왕성한 동안에는 수면 아래에서 활동하지만 권력이 기운이 쇠퇴할 때는 마지막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수면 위를 고개를 내밀곤 한다.

권력의 구심력과 압축력이 떨어지면 권력의 궤도는 흐트러지고 새로운 권력과 그 권력 아래 눌려 있던 힘들이 자신들만의 궤도를 만들어 내며 기존 권력에 도전장을 낸다. 더욱이 단임제라는 막다른 골목이 게임의 룰로 확연히 가시권에 들어오면 기존 권력은 단지 '누수'에 그치지 않고 하향 나선운동(downward spiral)에 빨려 들어 간다.

이 하향나선운동의 시작점은 역사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늘 부패에서 시작되었다.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폐지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무력화하고, 대신에 국민권익위원회를 정치화 함으로써 부패에 대한 견제와 정부의 자기견제 기능을 포기한 정부가 부패 문제에 시달릴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을 것이다.

하향나선운동의 시작점에서 권력에 법적 메스를 들이댈 수 있는 검찰은 기존권력의 궤도와 새로운 권력의 궤도 사이를 왕복하는 추운동을 한다. 지금 검찰은 소위 스폰서 사건으로 외양상 궁지에 몰려있지만 지금의 권력이 다양한 검찰견제장치를 들이밀 경우 오히려 현 권력을 향해 일찍 추운동을 시작할 수 있기에 현 정부는 검찰개혁에 미온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검찰이 언제까지 현 권력의 궤도를 돌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금번 지방선거는 하향 나선운동(downward spiral)의 첫 번째 회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살 떨리고 감동의 소름이 돋는 급진정치의 서곡

내리막길의 경사를 완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좌파환원주의를 넘는 새로운 담론과 정책이 필요하지만, 그 순간 현 정부는 극단과 와해라는 두 갈래 길 앞에 서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담론 개발에 대한 게으름과 방심, 자만이 초래한 선거패배는 고립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국가를 특정 세력의 노골적인 도구로 삼으면서 오히려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새로운 연합을 통한 한국사회의 재개혁이 부상하게 되었다. 성장담론에 민주주의와 대안적 가치를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계급 연합의 부활이 한국정치와 사회를 보다 젊고 활기 있게 만들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제 정말 살 떨리고, 감동의 소름이 돋는 한국사회 실질적 민주화를 위한 급진 정치의 서막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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