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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5대 요구'에 대한 <조선>의 평가를 들어봤더니...

천안함 사태, 책임자 문책 요구가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등록|2010.06.06 11:55 수정|2010.06.06 11:55
6·2 지방선거 직후,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에 내건 5개 항의 요구 조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평가가 나왔다. 5일자 강천석 주필이 쓴 기명칼럼 <세종시 접고 4대강 바꾸되 천안함 지키라>에서다.

강씨는 5개 항 가운데 처음 세 가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며 공감을 표시한다. '내각 총사퇴와 국정의 전면 쇄신'은 "사실은 야당이 요구할 필요도 없는 사항"이며, '세종시 대안 철회'도 가장 가까운 당사자인 대전·충남·충북이 돌아선 만큼 "고집도 접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

'4대강 공사 중단 문제'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씨는 말한다. "어느 동네 강줄기가 어떤지는 그 동네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인데, "다른 동네 사람들이 남의 동네 강줄기에 대해서까지 이래라저래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건 정권이 아직도 팡파르 소리 요란했던 70년대식 '동시 착공·동시 준공'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탓이 크다"는 게 강씨의 진단이다.

강씨의 부드러운 음색은 그러나 민주당이 내건 넷째와 다섯째 요구 사항에 이르러 갑자기 쇳소리로 돌변한다. '대결적 대북정책의 전면 폐기'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 및 군 책임자 문책'은 "이 정권이 다시 벼락을 맞더라도 심지를 다져 먹을 대목"이라는 거다.

"정부가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거나 "정권의 실패다"는 말까지 입에 담을 정도로 이 정부의 안보 무능이 심각하며 대북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강씨가 유독 민주당이 내건 마지막 두 개 항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변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안보에도 여야가 있는 게 이 나라 현실이고 전쟁 중에도 당쟁은 그치지 않던 피가 우리 혈관 속을 흐르고 있다지만, 이건 아니다"는 거다. "정치적 득실 계산이 급하더라도 일의 선후는 가려야" 하는데, "불난 제 집 앞에 서서 방화범은 쳐다보지도 않고 제 식구 향해 으름장 놓으며 삿대질만 해대서야" 우습지 않느냐는 것이다.

강씨는 이어 "정치의 세계에선 어느 구름이 벼락의 씨앗을 머금고 있는지 모른다"면서 "정권은 안보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때이고 야당은 가벼운 입의 무거운 과보를 두려워해야 할 때다"는 위협구로 칼럼을 매조지한다.

요컨대, 국정쇄신과 세종시 수정안 철회 그리고 4대강 중단 등은 정치적으로 타당하기도 하고 또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만, 그러나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나머지 두 개항은 전적으로 잘못됐고 따라서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게 민주당의 요구 조건 5개항에 대한 강씨, 아니 조선일보의 평가인 셈이다.

언뜻 봐선, 조선일보가 정파에 상관없이 옳은 말에는 동조하고 그릇된 주장에는 대립각을 세우는 올곧은 신문처럼 보인다. 양자의 적대적 관계를 아는 이들은, 조선일보 입에서 민주당 요구 조건에 대한 일부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것만으로도 감격.감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이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뻔히 아는 사람으로서, 민주당의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 및 군 책임자 문책' 요구에 발끈하는 조선일보를 보면 그 앞뒤 다른 위선적 태도에 코웃음이 절로 쳐진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제2 연평해전)이 터졌을 때, 조선일보가 뭐라 했던가?

당시 조선일보 입에서 나온 제 일성이 <통수권자·국방장관부터 책임져야>였다. 서해교전 이틀 뒤에 나온 사설(2002.07.01) 제목이 그랬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나 되자거나 안보가 먼저고 책임추궁은 나중이라는 말은 그때 나오지도 않았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공인이자 군 최고지휘관의 자세일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현장 대응 등 세부적인 경위 조사는 국방부 차원에서 진행되겠지만, 우리 군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국회 등 국가적 차원의 조사와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결국 이번 참사는 김 대통령과 임동원 청와대 특보 등 '햇볕 전도사'들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

정부와 군에 대한 조선일보의 공격은 그 다음 날에도 계속됐다. 조선일보는 <누가 우리 군의 손발을 묶었나>란 제목을 단 7월 2일자 사설에서  "북한의 서해 도발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나타난 우리 군 행동은 허점과 의문투성이"라면서 "이번 서해전투 완패의 원인은 현장 잘못보다는, 이들의 손발을 묶은 채 전투에 임하도록 한 김대중 정부와 군 지휘부의 문제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성토했다.

"문제는 강한 투혼과 월등한 장비로 무장한 우리 해군이 왜 이번 서해전투에서 철저하게 당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답은 지금 우리 군이 직면하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유족들과 함께 통곡하는 국민들의 분노의 화살은 김정일 정권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와 그들의 그릇된 정책을 함께 겨냥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또 국방부가 '서해교전 조사결과'를 발표하기가 무섭게 다음날 사설을 통해 군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대정부 비판을 선도했다. 7월 8일자 사설 <김정일 책임론' 비껴간 국방부 발표>의 몇 대목을 마저 들어 보시라.

"김동신 국방장관이 직접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재가까지 받은 이런 발표는 실망을 넘어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서해사태를 '실무진의 실수'로 돌리려는 김 대통령과 군 지휘부의 안이하고 편의적인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나라의 안보를 책임진 국가 지휘부의 나태한 대북인식이야말로 이번 서해참사의 진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황파악과 초기대응이 잘못된 것은 적(敵)의 도발을 사전 감지할 수 있는 이상징후들을 무시한 군 지휘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만약 김 대통령이 이번 국방부 발표와 뒤이을 개각에서 국방장관을 경질하는 것으로 이번 사태가 마무리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 및 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민주당에 대해 눈을 부라리며 "불난 제 집 앞에 서서 방화범은 쳐다보지도 않고 제 식구 향해 으름장 놓으며 삿대질만 해대서야 우습지 않은가"고 호통친 조선일보 입에서 나온 말이 이랬다. 재밌지 않은가. 이런 조선일보가 입바른 신문인 척 하며 언론 행세하는 게 다만 부끄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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