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신념을 지키는 자와 실익을 추구하려는 자

[역사소설 민회빈강38]초읽기에 들어간 세자빈 사사

등록|2010.06.09 10:57 수정|2010.06.09 11:18
운명을 함께할 영악한 쥐

태풍 징후가 감지되면 배에서 내려오는 쥐가 있는가 하면 동료들이 떠난 배에 오르는 쥐도 있다. 감각이 마비된 쥐가 아니면 그 배와 운명을 함께할 각오가 되어 있는 영악한 쥐일 수 있다. 세자빈 사사의 명이 떨어진 이후, 사직을 청했던 영의정 김류가 네 번째 사의를 표하자 인조가 사표를 수리했다. 그 자리를 노리던 김자점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양사(兩司)가 여러 차례에 걸쳐 세자빈의 사사를 거두어 줄 것을 상차했으나 임금이 따르지 않자 대관들이 병이 났다고 등청하지 않은 자가 잇달았다. 계사에 빠진 자는 관례에 따라 체직시키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이를 범하여 체직을 도모하려는 계략이다. 장령 박안제와 임한백이 계사에 빠졌다는 이유로 인혐하여 체직되었다.

함양 군수 정홍명을 대제학에 임명한 인조는 판의금 김신국, 우빈객 정태화, 장령 박일성, 지평 이준구, 정언 기만헌에게 관직을 제수했으나 정헝명은 상경하지 않고 현장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새로 임명된 지평 이준구가 상언했다.

"신이 길에서 병조판서 구인후를 만났으나 바쁘고 급한 나머지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법관(法官) 된 몸으로 결례를 범하고 태연히 직을 수행할 수가 없으니 신을 체직하소서."

뒤이어 정언 기만헌이 아뢰었다.

"길에서 호조판서 민성휘를 만났으나 말에서 내리지 못했습니다. 체직하여 주소서."

줄줄이 등청하지 않은 대간들

대간들이 고의로 예를 범하여 줄줄이 체직의 길로 나섰다. 정승 판서가 입궐하거나 퇴청할 때면 가마 앞에서 뛰어가는 길나장이 '물렀거라. 좌상대감 행차이시다'라고 외쳐대면 일반 백성들은 길을 비켜주며 머리를 조아리고 품계가 낮은 관리들은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는 것이 예법이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하여 생겨난 골목이 피맛골이다.

"병을 핑계대고 간관의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자와 예를 범했다고 인피하는 자들은 모두 파직하라."

신하들의 저항에 인조는 단호했다. 김시번·임선백·유심·소동도·남노성·임한백·이준구·이규로 등 여덟 사람 모두 파직되었다. 이조(吏曹)가 보덕에 남노성을 천거했다.

"강씨를 위해 절의를 지킨 사람을 이조가 버젓이 의망하니 몹시 놀랍다. 해당 당상과 낭청을 먼저 파직한 뒤 추고하라."

인조가 대노했다. 이조참판 여이징이 좌파(坐罷)되었다. 부제학 이기조, 부응교 민응협, 교리 남선, 부교리 강백년, 수찬 유경창·엄정구가 차자를 올렸다.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덕은 전대에 비할 바가 아닌데 어찌하여 며느리에 대해서만 뭇사람의 의논을 배격하고 죽이고자 하십니까? 예로부터 제왕 중에는 골육의 변을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정의(情義)가 통하지 않아 결국은 후회하고 후세에 웃음거리를 남긴 자가 많습니다. 소현이 죽고 여러 고아들이 아직 나이 어린데 그 어미를 죽이면 울어대는 소리를 어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선 그 목숨은 살려주고 서서히 죄상을 구명하신다면 만백성의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뭇 신하들의 여망에 따르시어 사사하라는 분부를 조속히 중지하소서."

"번거롭게 하지 말라."

초읽기에 들어간 세자빈 사사

인조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세자빈은 죽어야 할 사람이고 그 슬하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신의 혈육이되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다. 세자빈을 사사하고야 말겠다는 인조의 의지를 꺾을 사람은 구중궁궐 깊은 곳에 있는 여인 이외 조선 팔도 어디에도 없었다. 세자빈 사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강씨를 사사하려면 예조에서 거행할 절목이 많습니다. 본조의 당상을 부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좌부승지 여이재가 품의했다.

"본조에서 참작하여 처리할 것이니 굳이 명초할 필요는 없다."

"빈(嬪)으로 책봉할 때 내렸던 교명책(敎命冊)과 인(印), 장복(章服)을 처리하는 절차가 있어야 할 것 입니다. 대내(大內)에서 거두어 정원에 내려 불사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신들의 생각도 이와 같습니다."

예조판서 정태화가 아뢰었다.

"알았다."

"종묘에도 이 일을 고해야 할 터인데 일의 선후에 대해서는 신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사사한 뒤에 종묘에 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강씨의 죄목은 외부에서 상세히 알지 못하고 있으니 교서를 반포하는 조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소의조씨의 각본을 김자점이 읊었다.

"그대로 하라."

양화당 합문민응형이 합문(閤門) 밖에 엎드려 임금의 비답을 기다렸다 ⓒ 이정근



대사간에 새로 임명된 민응형이 동작진에 도착했다. 그는 순천부사로 있으면서 관직을 제수 받아 상경 중에 있었다. 양사(兩司)가 이미 강씨의 논의를 정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크게 놀랐다. 유유자적 한가롭게 입궁할 처지가 아니었다. 말에 오른 그는 채찍을 가했다. 뒤따르던 수행원들은 뒤에 처졌다. 단기로 대궐에 도착한 그는 승정원에 임금 알현을 요청했다.

"대간이 과인을 만나보려고 하는 뜻은 무슨 의도에서인가?"

의표를 찌르는 날카로운 하문이다.

"강씨를 사사하려는 것은 전하의 지나친 우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절대로 의심할 만한 일이 없습니다."

"공의가 이미 결정된 뒤에 이제야 올라와서 이런 신구하는 태도를 보이니 사대부의 마음가짐이 가소롭다."

"강씨의 죄악을 외부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데 만일 먼저 유시를 반포하지 않고 곧바로 죽인다면 멀리 외방에 있는 백성들은 전하께서 죄 없는 골육을 죽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잠시 사사하라는 분부를 정지하소서."

민응형이 합문(閤門) 밖에 엎드려 나아갈 것인지 물러갈 것인지를 기다렸다. 인조가 강씨를 사사하라는 전지를 내리고 답했다.

"물러가라."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