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강사 초빙, 공부 잘 하는 애들만 무료로?
사천시, 사설학원 앞세워 입시교육 논란... 일부 교사·학부모 "사교육 없애기에 역행"
▲ 사천시는 우리나라 대표적 입시학원인 ㅈ학원(서울 소재)과 협약을 맺고 지역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 특별수능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형평성 논란과 사교육 조장 비판이 일고 있다. ⓒ 하병주
경남 사천시가 인재육성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교육지원사업이 지나치게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집중됐으며, 이 과정에 공교육의 산실인 공립학교가 사설학원화 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천시는 우리나라 대표적 입시학원인 ㅈ학원(서울 소재)과 협약을 맺고 지역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 특별수능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천시 교육예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독식?
이 특별수능교육 혜택을 볼 수 있는 대상자는 관내 인문계 고등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2~3학년 학생 99명이며, 이들은 ㅈ학원에서 내려온 강사들로부터 매주 토·일요일에 하루 4시간씩 언어, 외국어, 수리과목 강의를 듣는다.
이 특별강의는 지난 6월 5일 시작했으며, 오는 10월 9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또 오는 7월 26일부터는 1개 반 29명이 열흘에 걸쳐 논술고사에 대비한 특강을 듣는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사천시가 부담한다. 사천시는 이와 관련해 올해 초 ㅈ학원과 교육지원 협약을 맺었으며, 그 대가로 1억500만 원의 비용을 지출했다.
이밖에도 성적이 아주 우수한 학생 5명을 선발해 1년간 해외유학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여기에 7700만 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또 인재육성장학기금을 조성해 역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거액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 사천시는 인재육성 목적과 학부모들의 요구를 사업의 근거로 삼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사교육 없는 학교만들기'정책에 역행한다고 주장한다. ⓒ 하병주
결국 사천시는 '인재육성'이란 명목으로 교육분야에 지원하는 예산 중 상당 부분을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집중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사천시 관계자는 "인재육성이 목적이다"라며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반응이 아주 좋다"며 사업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는 사천시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사천시의 교육지원 예산이 지나치게 '성적 우수' 학생들에게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다.
예비고등학생을 자녀로 두고 있는 한 학부모는 "사천시가 말하는 인재는 단지 수능성적을 잘 받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되는가 보다"며 사천시의 교육지원 정책을 꼬집었다.
또 지역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한 교사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가정 형편도 넉넉한 편이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학생은 공부는 잘하지만 가난하거나 성적이 아주 부진한 학생들이다"라며 사천시의 정책 변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사천시는 2008년까지는 비교적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지원에 예산을 많이 썼다. 그러나 2009년에는 "예산이 적절히 쓰이지 않고 있다"며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으며, 올해는 총액으로 겨우 2000만 원만 책정한 상태다. 이는 한 학교당 100만 원도 채 돌아가지 않는 액수다. 따라서 대다수 학교들은 이 예산을 아예 받지 않겠노라고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인재육성'은 '사교육 강화'와 같은 말?
사천시의 인재육성 지원 사업을 또 다른 잣대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교육계가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공교육 정상화' 또는 '공교육 살리기'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사교육 없는 학교만들기'는 현 이명박 대통령도 역점 시책으로 삼아 추진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삼천포중앙고등학교는 '사교육 없는 학교'를 강조해 내세우는 공립학교다.
그런데 이런 공교육 현장을 사교육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ㅈ학원에 내어 줬음을 두고 "어불성설이자 치욕에 가깝다"고 비판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 사천시는 몇 해 전부터 이 학원과 협약을 맺어 입시설명회를 열어왔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18일 '사천시 내고장 학교보내기 진학설명회' 장면. ⓒ 하병주
이와 관련 사천의 한 교사는 "공립학교는 공교육의 최후의 보루다"라며 "학부모들의 요구가 얼마나 거셌는지는 몰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해당 학교장은 생각이 달랐다. 한마디로 "비판적 시각도 일리는 있지만 '학부모들의 요구'라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천시가 꼭 필요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며 학교 사용 허락 배경을 설명했다.
이 학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유명 학원 강사들의 교수법이 더 뛰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우리 학교 교사들에게도 수업을 들어보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이 학교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이를 두고 학부모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한 학부모는 "학생들이 고교진학과정에서 인근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으로 봐줘야 한다"며 이해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시 예산까지 써 가며 학원 강사들을 학교에 불러들여야 할 판이면 더 이상 공교육을 운운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도 매섭다.
이와 관련해 해당 학교 교사는 물론 사천지역 교사들도 아직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전교조 사천지회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할 뿐 이렇다 할 입장표명이 없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데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실제로 ㅈ학원은 사천시 외에도 인근 고성군과 하동군을 포함해 전국의 21개 기초단체와 교육지원협약을 맺고 강사를 파견하고 있다.
이 학원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는 계약금액이 10억, 5억 단위"라며, "사천시가 계약금액이 가장 적은 경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협약을 맺는 기초단체가 점점 늘고 있음도 귀띔했다.
결국 이 학원은 입시전문이라는 이름값에다 일부 학부모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지자체를 대상으로 새로운 '사교육 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는 다른 유명 입시학원들도 비슷한 추세다.
상대적 박탈감 느끼는 학생 학부모 없는지 따져봐야
사실 ㅈ학원과 사천시의 인연은 2007년부터다. 처음에는 학원 관계자를 불러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입시설명회를 여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09년에는 4500만 원의 예산으로 143명의 학생들에게 이 학원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수능 강의를 듣게 했다. 또 논술특강도 진행했다. 그리고 올해는 "온라인 강의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명분이 보태졌다. 공립학교의 한 부분까지 사교육이 밀고 들어온 셈이다.
취재 과정에서 한 학부모는 "사천시나 교육계 모두 '학부모 요구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나 말고 다른 학부모들은 진짜 이런 걸 반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정말 유능한 강사가 내려오는 걸까"라며 강사들의 능력에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 사천시의 인재육성 사업이 사교육 시장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인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사진은 지난해 사천시 내고장 학교보내기 진학설명회 장면 ⓒ 하병주
그러나 이런 궁금증들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분명치 않다. 학부모들의 요구가 실제로 얼마나 있었는지, 학생들의 만족도가 얼마나 큰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학부모나 학생이 얼마인지 등에 관해 계량화 된 자료 없이 막연한 주장만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선 사천시와 교육계 모두 정확한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다.
사천시는 유명학원 강사들을 초청해 인재육성에 필요한 수능특강을 하고 있다며 지난 8일 홍보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시는 이 자료에서 대학 이름까지 거론해 가며 지난해 지역 학생들의 대학진학 성적이 좋았음을 나열해 놓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인터넷특강과 논술특강'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사천시의 교육발전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가 되었음도 강조해 놓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공교육 관계자들은 뭘 하고 있었으며, 그 많은 공교육예산은 어디에 쓰였단 말일까.
비록 사천시의 주장에 '사업 홍보를 위한 과장'이 섞여 있다 치더라도, 이런 관점대로라면 사천의 교사들은 한참 더 분발해야 한다. 또 성적이 평범한 학생들은 몰라도 적어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만큼은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음이다.
이런 시각은, 겉으론 사교육을 없애겠노라 외치면서도 일제고사를 부활시켜 학교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는지 곰곰 따져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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