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유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춤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대중과 오해가 있을 때 그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다

등록|2010.06.11 17:44 수정|2010.06.12 14:52
이철희 기자가 쓴 <유시민 패배, '싸가지' 때문인가'>가 유시민의 패배원인을 민주당 책임으로 돌린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내 주장에 대한 권창호의 반론을 잘 보았다. 말인즉 결국 유시민의 패배는 그를 적극 돕지 않은 민주당 책임임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정치인을 다루는 문제는 특정 상황에 국한하는 것보다 그의 정치이력 전반을 관통하여 정치적 가치관과 일관성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특정한 이슈를 다루는 것이 맞는데 이철희의 글에 반론을 싣다보니 본의 아니게 유시민의 패배와 민주당과의 상관관계에만 머무르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의 주장 또한 어쩔 수 없이 권창호의 주장에 대한 반론에 머루를 것이다. 

정치인 유시민의 정치적 가치관과 일관성은 기회가 있을 때 또 반드시 다루어 보겠다. 그것은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이 절대 지지층을 상당히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반대로 범민주세력내에서조차도 두터운 비토층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에 관하여 반드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지지층과 비토층 속에 통합과 분열이라는 정치적 테제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나아가 그것은 현실정치의 결과에 극명하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권창호의 글은 민주당의 소극적인 선거지원이 결국 호남유권자와 전통적 민주세력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요지다. 또한 '선거구도와 정치공학이 우리 정치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고 하는데, 선거구도와 정치공학이 우리 정치현실을 정말로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점,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구제, 또한 대선과 총선의 임기 불일치로 인한 빈번한 선거 등, 대중이 원하는 정치현실하고 선거구도와 정치공학은 대단히 배치된 측면이 많지 않는가. 선거구도와 정치공학이 곧 선거 국면에서의 선거 승리와 정당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에 대한 기술적 측면만을 고려하는 것은 아닐진데 말이다.

권창호의 말대로 '호남비토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희호 여사를 방문하여 사과했다' 며 유시민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 어떻게 노력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는가. 혹시 호남 유권자들을 구상유취한 수준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다시 말하면 그가 정말로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선거와 관계없이 자기 생각을 오래 전부터 드러내고 사과 했어야 진정한 의미의 진정성이 깃든 사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남인에게 김대중은 단순히 특정한 정치인으로 규정되기 이전에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호남인이 71년 대선에서부터 끊임없이 김대중을 지지해 왔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한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서서 핍박받고 차별받는 호남인 각자 스스로에게 투표하고 스스로를 지지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비호남 정치인이 호남인을 단순히 김대중 지지자로 규정해서는 안 되는, 그 이면에 잠복한 심층의 것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담겨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호남인의 문제를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이야기를 이끌자면 호남인에게 김대중은 정치인 김대중이 아니라 '상징화된 호남인 스스로' 라는 인식이 호남인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김대중에 대한 비난은 호남인에게는 비수와 같은 아픔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돌아가서 유시민의 사과는 단순히 김대중과 이희호를 향하는 사과에 머무를 수 없는 문제이며 그것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들여다 볼 때, 선거직전 유시민의 급조된 사과는 호남인의 마음을 열기에는 많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비약하자면 좀 유치하기까지 하다.

정리하자면, 이번 선거에서 유시민이 패배한 이유는 민주당의 소극적 지원 탓이 아니라 민주당과는 별개로 호남 유권자와 유시민과의 관계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며 결국 그 책임은 유시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권창호는 또 내가 거론한 유시민의 의정활동과 당내활동에 대해서도 '빽바지 논쟁'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오해하지 마시라.  결코 그런 정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상과 현실에 대한 부조화를 지적한 내 견해에 '장단놀음'을 거론하며 반론한다. 좋다, 얼마든지 유시민의 디테일함에 관해 분석하여 유시민을 말해 드리겠다. 유시민을 포함해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지면에서 그것까지는 다루기에 한계가 있으니, 정치인 유시민의 '가치관과 일관성'을 다룰 때 함께 다루도록 하겠다. 

나아가 권창호는 또 16대~18대까지 유시민의 정치행보와 관련해 '기회주의적이다' 라는 내 견해에 그 지역이 자신의 부모님이 사는 곳이라 잘 안다는 논거를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기회주의적이냐고 반론한다. 그렇지만 다시 강조해서 반복하지만 기회주의적이다.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노무현이 6개월 만에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이 보장된 종로를 버리고 지역주의 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출마한 것과, 수도권에서마저 지극히 당선이 불투명한 18대 총선에서 유시민이 지역구인 고양시를 버리고 대구로 간 것은 성격과 진정성에서 너무나 상반되지 않는가.

그것도 특별한 설명과 이해의 요구도 없이 무소속 간판으로 갈아타고 대구로 간 것은,  정치인 유시민의 입장에서 어차피 질 것이라면 고양 패배와 대구 패배의 손익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는 결국 그것을 기반으로 대구행을 택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노무현의 경우와는 천지차이다.

또한 권창호는 그렇다면 '유시민은 호남유권자에게 무릎 꿇고 안겨라 라는 것이냐' 라는 항변을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호남유권자의 비우호적 정서 극복 필요성에 대한 지적에 대해 심각하고도 잘못된 유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단일후보 유시민에 대한 민주당의 소극적 지원을 단정하면서 '패권주의'까지 거론한다. 너무나 자의적이지 않는가. 그러면서 반대로 민주당 김진표로 단일화를 가정하고 그랬을 때 유시민은 목이 터져라 지원 유세를 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주관적 가정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더구나  지난 대선에서 경선사퇴 후 친노 후보 이해찬에 대한 그의 태도와 대선에서 정동영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았을 때,  설령 민주당이 그의 지원에 소극적이었음을 단정한다하더라도, 반대의 입장이었더라면 그는 김진표를 위해 더 소극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오히려 더 객관적이며 타당한 논법이다.

권창호는 말한다. '유시민은 이번 선거의 명실상부한 야권통합의 후보였고 경기지사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상황논리가 어떻든, 주어진 주변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패장은 패배의 1순위 책임자인 것, 맞다.'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 유시민 본인도 그 점을 인정하고 깨끗하게 승복했다. 그런데  왜 그의 지지자들은 쓸데없이 말이 많은가.  쿨하게 승복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정치인 유시민의 외연이 확대되고 자산이 늘어날까. 결국 지금 정도의 지지세 정도로는 어렵다고 볼 때, 유시민의 지지자들은 과연 지금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는 것일까. 왜 미래를 위해 쓴소리조차도 과감하게 귀담아 듣겠다는 유연성이 그렇게도 떨어지는가. 강조해서 말한다. 객관적으로 유시민에게 지금 많이 부족한 것은 진정성이다.  범민주세력 전반에 녹아내릴 그 무엇 말이다. 그래도 모르겠는가.

(공론의 장임을 염두에 두고 존칭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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