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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속뜻을 현판에 담은 '세병관'

등록|2010.06.12 16:04 수정|2010.06.12 16:04
문화재청홈페이지(http://www.cha.go.kr) 문화유산지식에 의하면 통제영은 통제사가 충청ㆍ전라ㆍ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본진으로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고, 통영시 관내에 통제영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조 36년의 일이다.

통영의 통제영은 제6대 통제사였던 이경준이 이곳에 터를 닦고 세병관, 백화당, 정해정 등100여동의 영문 관아를 세운 후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유지되었다. 일제 강점기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세병관을 제외한 건물이 사라지고 그곳에 관공서와 주택들이 들어섰다.

▲ 출입문인 망일루와 지과문 ⓒ 변종만


▲ 세병관 ⓒ 변종만


▲ 세병관 ⓒ 변종만


▲ 이경준의 치적을 기록한 이경준사적비 '두룡포기사비' ⓒ 변종만


세병관(국보 305호)은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선조 37년(1604)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 건물로 전면 9칸ㆍ측면 5칸의 단층 팔각지붕이다. 창호나 벽체가 없이 규모가 웅장하고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진남관(국보 제304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한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가 깔려 있고 중앙에 주변 우물마루보다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 통제사 서유대가 쓴 세병관의 현판 ⓒ 변종만


세병관(洗兵館)이라는 이름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왔고, 출입문인 지과문(止戈門)에는 창을 거둔다는 뜻이 담겨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으라고 시원한 우물마루에 앉아 전쟁을 겪지 않게 해 달라는 염원과 전쟁에 대비하자는 속뜻을 세병관 현판에 담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생각해 본다.

우후죽순으로 늘어선 낡은 건물들이 세병관 입구의 2층 누각 망일루 앞에서 통영 바다를 가리고 있는 것은 아쉬움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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