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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구르고 소리 지르고... 감격과 흥분의 "대~한민국"

붉은악마의 거리 응원 "지금 내리는 비는 그리스의 눈물"

등록|2010.06.12 18:49 수정|2010.06.14 15:46
[취재 : 최지용·이주연 기자, 정리 : 최경준 기자]

[3신 : 12일 오후 11시 30분]

서울광장·코엑스 앞 등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

▲ 영동대로에 가득찬 응원단 ⓒ 최지용


"지금 내리는 비는 그리스가 흘리는 눈물이다."

12일 오후 2010 남아공월드컵 거리응원전이 펼쳐진 서울광장, 경기 시작 전 사전 행사 사회를 맡은 개그맨 김한석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경기 종료 휩슬이 울렸고, 대형스크린에는 '한국, 그리스 2대0 완파'라는 자막이 떴다. 폭죽이 터졌고,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서 있던 수만명의 붉은 악마들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비가 내렸지만, 승리의 열기와 감동은 식힐 수 없었다.

박지성 쐐기골에 벌떡 일어선 붉은 악마 "대~한민국"

공은 둥글다. 그래서 '1대0'으로 앞선 채 후반전이 시작됐지만 서울광장은 알 수 없는 초조함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팀 선수들이 월등한 기량으로 그리스를 압도하며 경기를 장악했고, 그에 따라 붉은악마가 구호를 외치고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을 주도했지만, 시민들은 단 한 순간도 대형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후반 7분 '캡틴' 박지성이 골문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는 순간, 광장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결국 박지성의 발끝에서 쇄기골이 터지자, 시민들은 '승리'를 자신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며 발을 구르고,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고은아(30)씨는 "2002년, 2006년에 이어 세 번째 거리응원전에 나와봤다"며 "2006년 때는 기다리는 것도 길고 힘들었는데, 오늘은 2002년 때만큼 재미있었다. 정말 짱이다"고 환하게 웃었다.

초등학생 딸들을 데리고 나온 송승호(43)씨는 "비가 와서 거리응원은 안 나오려고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이런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뒤늦게 나왔다"며 "2대0으로 이길 것 같더니, 정말 이겨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응원전에 참석한 박아무개(31)씨도 "이제 곧 결혼을 하는데, 결혼하기 전에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왔다"며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김아무개(47)씨는 "다 같이 보는 재미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다"며 "적어도 8강까지 갈 것이다. 멕시코와 붙어서 설욕을 해줬으면 좋겠고, 오늘 모든 선수가 잘했지만 차두리가 참 잘 했다"고 말했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시민들... 승리 자축

강남 코엑스 앞 응원행사장. 경기 종료와 함께 폭죽이 터지고 '오 대한민국'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시민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개그맨 변기수가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며 응원구호를 선창하자, 시민들도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응원행사 주최측에서는 '모든 응원이 종료되었다'며 시민들의 귀가를 촉구했지만 시민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경기 시작 전까지만 해도 왕복 8차선의 영동대로 절반에만 자리 잡고 있던 시민들은 왕복 8차선을 모두 점령하고도 모자라 주변 인도까지 가득 들어찼다.

길거리 응원에서 빠질 수 없는 기차놀이가 시작됐다. 서로의 어께에 손을 올리고 넓은 도로를 질주하는 기차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거리 곳곳에서 떼를지어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한국의 월드컵 원정경기 사상 첫 무실점 승리를 자축했다.

촛불집회에서 만났던 유모차부대도 등장했단. 두 살난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함께 거리로 나온 심성숙씨는 "비가와서 나갈까 망설이다가 나왔다"며 "우리가 승리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격려도 이어졌다. 논현동에서 온 김학중씨는 "경기 시작 전부터 우리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과 그리스 선수들의 표정이 달랐다"며 "경기 승리를 확신했지만 정말 열심히 뛰어 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응원했다.

인근 상점도 발 딛을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이번 경기 내용을 곱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하지만 코엑스 앞에서 진행된 응원전은 안전상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비가 내리고 있어 곳곳이 미끄러운데다가 좁은 통행로 때문에 자주 혼잡을 빚었다.

[2신 : 12일 오후 7시 43분]

스마트폰 응원부대 등장... 붉은악마와 자리싸움도

▲ 코엑스 앞 응원전 모습 ⓒ 최지용



▲ 형형색색의 우비를 갖춰입은 코엑스 앞 응원전 모습 ⓒ 최지용


2010 남아공월드컵 거리응원전에 스마트폰 응원부대가 등장했다.

12일 오후 그리스를 상대로 한 한국의 첫 경기를 앞두고 서울광장에서는 붉은악마와 시민들의 열띤 응원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붉은 옷 위로 알록달록한 우비를 입은 시민들은 각기 들고있는 응원도구를 흔들며 열심히 응원가를 따라 불렀고, 스크린이 설치된 중앙무대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오후 6시경 서울광장 건너편 덕수궁 대한문 앞, 갑자기 30여명의 청년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고, 폰 액정에는 대표적인 응원도구인 악마뿔과 빨간장갑 이미지가 나타났다. 연세디지털게임교육원에서 만든 응원어플 '아이레즈(iReds)'다.

청년 중 일부는 악마뿔을 달고 있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얹었고, 또 일부는 빨간 장갑 이미지가 표시된 스마트폰을 하늘 높이 뻗었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응원 '플래시몹'(사전에 약속을 하고, 한꺼번에 모여서 행사나 놀이를 한 뒤, 금방 사라지는 행위)를 한 것이다. 이들은 대학생 마케터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프래그머티스트'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정윤범(27)씨는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데 기업의 이권이 개입되는 게 싫어서 기업들에게 빼앗긴 응원문화를 되찾기 위해 플래시몹 응원전을 준비했다"며 "(붉은악마와 달리) 스마트폰을 이용해 시대적 흐름에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거리응원전에는 '젊은' 붉은악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와 함께 붉은 티셔츠를 입고 서울광장을 찾은 김복순(62)씨는 "지난 2002년 월드컵 응원의 기분을 되살리려고 나왔다"며 "그 때 20년은 더 젊어졌다. 오늘 경기도 승리해서 더 젊어지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옆에 있던 정영숙(61)씨는 "한국이 3대 1로 이길 것 같다"면서도 "(젊은 사람만 있고) 우리같은 엄마들은 없다"며 아쉬워했다.

반면 강남 봉은사 앞 영동대로 응원행사장은 붉은악마와 일반 시민들 간에 자리 다툼이 벌어지는 등 혼란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붉은악마가 응원전을 주도하기 위해 무대 바로 앞에서부터 뒤쪽으로 40미터 정도를 차지한 가운데, 일반 시민들이 앞자리로 들어오는 것을 통제한 것. 시민들은 "붉은악마가 시민들과 함께 응원을 해야지, 자기들만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말이 되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안전 문제도 우려된다. 영동대로 행사장은 8차선 도로 중 4차선을 막아 마련됐는데, 그 폭이 20미터 정도인데다, 바로 옆으로 자동차가 다니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 현재 영동대로 행사장에는 5만여명의 시민들이 응원에 참여하고 있다.

[1신 : 12일 오후 6시 49분]

태극전사는 그리스전, 붉은악마는 '수중전'

▲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노을공원에서 서울시가 주최한 2회 서울캠핑페스티벌에 참가한 시민들이 텐트안에서 저녁에 있을 월드컵 한국경기를 응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 ⓒ 뉴시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2010 남아공월드컵' 선전을 기원하기 위한 국민들의 응원 열기는 식지 않을 전망이다.

그리스를 상대로 한 한국의 첫 경기가 열리는 12일, 서울 거리 곳곳에서는 태국전사를 응원하기 위해 붉은 옷을 입은 '붉은악마'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특히 많은 비로 인해 거리응원전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한국팀 첫 경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 예정대로 응원전 준비를 마친 상태다.

한국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는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과 삼성동 봉은사(코엑스) 앞에서 동시에 응원전을 펼친다. 이외에 성동구 왕십리 민자역사 광장,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한강 반포지구 플로팅 아일랜드 한강공원 등에서 '수중응원전'이 펼쳐진다.

대한민국 '12번째 선수'들, 응원 준비 완료

길거리 응원의 메카인 서울광장에는 600인치와 300인치짜리 대형 화면 3개를 비롯, 응원을 주도할 무대가 세워졌고, 응원가가 울려퍼지고 있다. 청계광장에도 대형 화면이 설치됐다. 광장 한켠에서는 붉은 옷을 입은 여성 응원단 50여명이 응원전에 사용할 율동 연습에 한창이다. 시민들은 우산을 받쳐들거나 우비를 챙겨입었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어 예상보다 인파는 많지 않지만, '12번째 선수'들의 열기만큼은 뜨겁다.

상암동 노을공원에 마련된 캠핑장에서는 일반 거리응원과 달리 '1박 2일 응원전'이 펼쳐진다. 노을공원에 텐트를 쳐 놓고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응원도 하고, 식사도 하고, 잠도 자겠다는 것이다. 공원에 마련된 텐트는 모두 2500동이고, 대형 스크린과 무대도 설치됐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1시간 동안 여흥을 위한 별밤 콘서트가 이어진다. 캠핑은 사전 예약제로 진행됐지만 비 때문에 예약 취소가 많아, 현장에서도 일부 접수가 가능하다.

봉은사 앞 영동대로에서 진행되는 응원전은 김용만과 이효리, 손범규 아나운서가 MC를 맡아 진행한다. 여의도에서는 컬투와 캔이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플로팅 아일랜드에서는 탁재훈과 한성주의 진행으로 응원전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펼쳐진다. 응원전에는 2AM, 에픽하이, 리쌍, 에프엑스, 다비치, 서인국, 노라조 등 인기 가수들이 총출동해 응원 열기를 달굴 예정이다.

영동대로·서울광장선 효순·미선이 사진전 열려

영동대로 응원행사장과 서울광장 등에서는 조그만 사진전도 열린다. 지난 2002년 15살 나이에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의 스토리가 담긴 '효순·미선 사진전'이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코엑스 등 거리 응원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75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도로 곳곳에 대한 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세종로와 신문로 등 광화문 네거리 일대와 서울광장 주변은 응원단이 모이는 대로 한 차선씩 차례로 차단된다. 대학로의 경우 낮 12시부터 4개 차선이 통제됐고, 삼성역에서 코엑스 방향으로 7개 차선도 통제됐다.

경기가 끝난 뒤 시민들의 귀갓길을 위해 서울시는 지하철 막차 시간을 자정까지로 늘리고, 버스와 지하철 배차시간을 5분 이내로 줄이기로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응원 장소 주변에 기동대와 구급차를 대기시켜 소매치기와 성추행 등 범죄와 안전사고에 대비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오후 봉은사 앞 영동대로 응원행사장에서는 KBS 기자들과 행사장 경호원들간에 실랑이가 벌어져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트위터 사용자인 '미디어몽구'에 따르면 KBS 기자가 시민들의 응원하는 모습을 촬영하려고 하자, 행사장에 있던 경호원들이 행사 주최사인 SBS의 허락을 받아야한다며 막아섰다는 것. '미디어몽구'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정말 열받습니다, 시민들이 SBS에 이용당하는 건가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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