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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따라쟁이' 호주가 그리스 응원한 이유

[해외리포트] 2022년 유치 경쟁... "우리도 한국만큼 잘해야"

등록|2010.06.13 19:46 수정|2010.06.21 10:59

▲ 호주-독일 전에서 대패한 소식을 전하고 있는 호주국영 abc-TV 웹사이트. ⓒ abc-TV


(기사 보강 : 6월 14일 오전 9시) 14일 새벽 '파워하우스' 독일에 4대0으로 완파당한 호주 '사커루즈'에 비상이 걸렸다. 앞으로 남은 두 게임에서 반드시 이여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것. 호주는 아프리카 최강팀 가나와 유럽의 강호 세르비아 전을 남겨놓은 상황이다.

새벽 4시의 늦가을 추위 속에서, 수만 명이 길거리 응원을 펼친 시드니와 멜버른 등의 '사커루즈' 팬들은 호주의 무력한 게임에 큰 실망감을 나타내면서, 주전선수들인 해리 큐엘, 조시 케네디, 마크 브레시아노 등을 출전시키지 않은 핌 베어백 감독을 비난하기도 했다.

더욱이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사커루즈'의 확실한 골잡이로 자리 잡은 팀 케이힐(영국 프리미어리그 에버튼 소속)이 후반 11분에 퇴장 당해, 16강 진출의 최대 고비가 될 6월 19일 가나 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어 독일에 패한 것 못지않은 큰 손실을 입었다.

14일 아침, 호주 <채널7>에 출연한 존 알로이시(전 호주 국가대표)는 "이기기 힘들다고 해서 주전선수 세 명을 제외시킨 베어백 감독의 결정은 잘못"이라면서 "그의 결정은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사커루즈 정신(spirit of Socceroos)'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핌 베어백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서 "모든 게 풀리지 않았다. 이제 가나와 세르비아 전에서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루카스 닐 주장도 "앞으로 남은 두 게임에서 6포인트를 얻어야 한다. 그걸 위해서 포커스를 맞추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경기 종료 후, <시드니모닝헤럴드>가 긴급 실시한 설문조사에 응답한 78%가 "호주의 16강 진출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사커루즈'의 예선 2차전은 6월 19일 가나를 상대로 펼쳐진다.

"아시아 축구 최강팀 한국이 2004년 유럽 챔피언 팀인 그리스를 완파했다. 6월 13일 아침까지(이하 호주 현지 시각), 남아공월드컵 최고의 팀은 한국이다. 첫 경기를 마친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영국까지 포함해서 한국이 최강이다."

"6월 14일 새벽에 벌어지는 호주-독일 경기에서 호주도 한국만큼 잘 해야 한다. 남아공월드컵 8강 진출을 통해서, 2022년 월드컵 유치 효과를 노리고 있는 호주가 한국의 첫 경기 결과에 긴장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호주 <채널7>의 스포츠 캐스터 사이몬 보더가 한국-그리스 경기를 보도하면서 던진 코멘트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호주의 속내를 솔직하게 내보인 반응이었다. 2022년 월드컵 유치를 놓고 한국과 한판 붙어야하는 입장에서 한국의 선전이 호주한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호주국영 abc-TV 제임스 마스토프 기자는 "두 명의 수비수와 골키퍼까지 제치면서 골을 넣은 스타 박지성 선수가 그리스의 월드컵 첫 승과 첫 골의 꿈을 앗아버렸다"고 보도했다.

한편 호주 월드컵 주관 방송사인 SBS-TV(우연하게도 한국과 이름이 똑같다)의 해설자는 "아시아 선수한테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박주영 선수의 강력한 중거리 슛이 한국 공격수의 공간을 넓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차두리의 크로스를 받은 헤딩슛이 불발로 끝났지만, 그 이후 그리스 수비가 크게 흔들렸다"고 분석하면서 박주영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 2006년 호주 월드컵에서 시드니 시민들이 보여준 길거리 응원 모습. ⓒ 호주축구협회 웹사이트


호주 축구는 한국 축구 따라쟁이?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호주의 축구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호주 축구는 이민자들만 즐기는 스포츠로 홀대받으면서 럭비나 크리켓의 뒷전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던 호주 축구가 국민적 인기 스포츠로 부상한 계기는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있다. 그 당시에 경험한 '히딩크 매직'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는 것.

그래서 축구 얘기가 나오면 히딩크 얘기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런데 히딩크가 어느 나라 팀을 이끌고 월드컵 스타 감독으로 부상했는가.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을 이끌고 4강 고지에 오른 덕분 아닌가.

호주에서 월드컵 얘기가 나오면 히딩크와 한국이 세트로 등장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02년에 탄생한 월드컵 영웅 히딩크 감독을 한국에서 모셔왔으니 한국 축구는 호주 축구의 모델이다. 호주가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과 함께 '다크호스'로 대접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호주 축구의 한국 축구 따라 하기는 히딩크 감독의 영입으로 끝나지 않았다. 히딩크에 이어서 독일 월드컵에서 태극전사의 지휘봉을 잡았던 핌 베어백 감독을 영입해서 남아공 월드컵까지 2연속 본선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 12일 밤 열린 한국-그리스전 거리응원에서 자국팀이 뒤지자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시드니의 그리스인들. ⓒ 윤여문


길거리 응원 원조 한국 따라하기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당시 호주 <채널9>의 간판 앵커 레이 마틴은 붉은악마의 서울광장 길거리 응원을 보도하면서 "한 마디로 충격이다. 한국에 와서 직접 확인해 보니 한국의 4강 진출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그는 이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졌는데 쓰레기가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덧붙여서 그동안의 한국 이미지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또한 한국의 길거리 응원이 호주로 직수입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호주가 16강 진출에 성공하자 호주의 길거리 응원이 절정을 이루었다. 그런 추억이 채 가기기 전에 세계축구연맹(FIFA)은 시드니를 팬 축제도시(Fan Fest City)로 지정했다. 파리, 로마, 베를린, 멕시코시티, 리우데자네이로와 함께 시드니는 인터내셔널 피파 팬 페스트를 개최하는 6개 도시 중의 하나다.

바로 그곳에서 한국-그리스 경기의 길거리 응원이 펼쳐졌다. 한국과 그리스 팬들이 운집한 건 당연지사. 12일 밤, 기자는 시드니 팬 페스트가 열리는 달링하버로 나가서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취재했다. 대형 스크린 여러 개가 물 위에 설치되었고, 쌀쌀한 밤 날씨인데도 수천 명의 관중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너무 많은 관중이 몰려 안전사고를 염려한 경찰당국은 경기 시작 1시간 전인 8시부터 입장을 통제했다. 관중을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흘리던 한 경찰은 기자에게 "예상보다 두 배 이상의 관중이 몰려들어서 부득이하게 내린 조치"라고 밝혔다.

▲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호주-일본 경기에서 연속 두 골을 넣은 호주 케이힐이 자국 벤치로 달려가자 동료선수들이 환호하며 맞아주고 있다. 호주는 독일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 ⓒ 연합뉴스


2022년 월드컵 유치에 올인 하는 호주

호주가 한국 출신 감독들인 거스 히딩크와 핌 베어백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영입하고, 한국의 길거리 응원을 도입하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2022년 월드컵 유치까지 '한국 따라쟁이'를 하고 있어 한국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난 11일, 호주축구협회(FFA) 프랭크 로위 회장은 "2018년 월드컵 유치 신청을 철회하고 2022년 대회 유치에만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FIFA의 의견을 존중해 2018년은 유럽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유치 신청을 철회하고 2022년 대회 유치만 집중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도네시아축구협회(PSSI)가 2022년 월드컵대회의 호주 유치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외신이 전해지자 호주축구협회가 잔뜩 들뜬 분위기다. PSSI의 누르딘 할리드 회장이 "호주의 강한 월드컵 유치 열망과 헌신적인 노력을 잘 알게 됐다"면서 "인도네시아의 이웃나라인 호주에서 2022년 월드컵이 열리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2018년 월드컵은 미국, 러시아, 잉글랜드, 벨기에-네덜란드, 포르투갈-스페인이 유치에 나섰고 2022년 대회는 이들 나라와 함께 한국, 일본, 카타르, 호주가 경합하는 중이다.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국은 12월 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회에서 집행위원 24명의 투표로 동시에 정해진다.

"남아공 월드컵 성적이 2022년 월드컵 유치에 영향 준다"

▲ 사카루의 16강 진출이 힘들 것이라는 호주국영 abc-TV 여론조사 결과. ⓒ abc-TV

독일 월드컵에서 크게 활약했던 존 알로이시(국가대표 은퇴)는 <채널7>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한국과 호주 축구의 인연을 감안하면 한국이 이긴 것은 축하해야 하지만, 2022년 월드컵 유치 경쟁을 벌이는 나라여서 흔쾌하게 축하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호주가 독일과의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된다. 그러나 엄청난 '파워하우스'인 독일이 부담되는 건 사실"이라면서 "어젯밤에 한국이 그리스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걸 보고 바짝 긴장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현재 2022년 월드컵 유치 팀의 일원이다.

한편 월드컵 사상 세 번째로 본선에 진출한 호주 축구 대표팀 '사커루즈(Socceroos)'가 유럽파를 주축으로 남아공 월드컵에서 8강까지 올라간다는 옹골찬 꿈을 꾸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매직'으로 16강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호주 선풍을 일으켰던 '사커루즈'는 축구(Soccer)와 캥거루(Kangaroo)의 합성어다.

'사커루즈'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선수들 위주로 구성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만 11명에 이를 정도다. 그러나 독일, 세르비아, 가나와 함께 D조에 편성된 호주는 D조의 최약체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호주 언론에서는 '사커루즈'가 세르비아, 가나와 함께 2위 경합을 펼칠 것으로 예상한다.

핌 베어백 호주팀 감독은 "독일 월드컵에서 이미 16강 진출을 경험한 '사커루즈'에는 당시의 주전 선수들이 여러 명 남아있어서 신예 선수들과 조화만 잘 이루면 8강까지도 넘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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