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씨, 여기 있었군요!
[맘대로 떠나 무작정 살다오기 16] 모녀, 여행하다<4>
조금 전 어머니를 배웅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허전함을 달래려 아침에 어머니와 함께 먹던 김치를 꺼내 사발면을 먹었다. 여행하는 내내 더 살갑게 못 해드린 게 결국 또 후회스럽다. 길지 않은 우리 삶이 기약없는 이별을 포괄한 것이기에 사소한 헤어짐 앞에서도 마음이 울먹한다.
닷새 여정의 마지막 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공포에 휩싸였던 간밤의 사태는 결국 몹쓸 상상력에 기인한 해프닝으로 판명났다. 갑작스레 찾아왔던 어머니의 무릎 통증도 가시고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온종일, 누군가 이 도시의 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려 작정한 듯 다채로운 풍광이 우리를 맞았다.
닷새째
어김없이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환했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찾는 일도 익숙해졌다. 우리가 가는 곳은 니시진역. 이른바 후쿠오카의 대표관광지 '인증 코스'를 밟으러 간다. 가이드북은 물론 이곳을 다녀간 대부분 사람들의 기념사진 속에 간직돼 있을 장소들.
니시진역 일대는 풍성한 정원이 딸린 고급주택들 사이로 가로수가 울창했다. 식물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일본에 온 이후 이렇게 꽃, 나무가 정성스레 가꿔진 거리를 볼 때마다 무척 흐뭇해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걸으면 평소에 무심했던 일상적이고 작은 것들에 눈길을 주게 된다.
후쿠오카돔은 주택가를 벗어나 도심 중앙을 흐르는 강변을 따라 10여 분쯤 걸었을 때 나왔다. 햇살을 받아 황금처럼 빛나는 거대 돔이 길고 깊은 청록색 물빛과 잘 어울렸다. 사진촬영을 하고 강 위의 다리를 건너니 곧장 장난감 같은 혹스타운이 나왔다. 그 앞 광장에선 시민들의 무대공연이 한창이었는데 잠시 후 있을 축제의 서막이었다.
60~70대로 보이는 할머니들의 가부키 합동공연을 관람하고 혹스타운 정면 계단을 올라 단테광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야후돔 좌측 안쪽에 위치해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듣던 대로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폴 매카트니, 빌리 조엘, 본 조비 같은 유명인사들과 악수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었다.
광장에서 내려다뵈는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엔 벌써부터 성마른 바캉스족들로 북적였다. 비니키 상의를 벗은 채 선탠을 즐기는 젊은 여인과 탄력있는 검은 피부의 남녀 커플들이 비치볼을 즐기는 5월의 바다는 이미 후끈 달라올라 있었다. 해변의 백사장에서 하루쯤 보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일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시간이었다.
정오 무렵 기온역의 구시다 진자에 돌아왔을 때 때마침 '하카타 돈타쿠'가 시작되고 있었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날부터 고대했던 바로 그 축제다. 이 축제는 하카타의 돈타쿠 성에 살던 영주에게 지역 상인들이 새해 인사를 하러 간 데서 유래했는데, 현재까지 그 명맥이 잘 이어져 이곳 상권을 구성하는 국내외 거주자와 주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불러모으는 대표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부터 회사원, 주부, 학생들, 백발의 노인까지 독특한 복장과 화려한 분장을 하고 각기 가게나 업체를 홍보하는 대형 풍선과 가마,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행렬을 준비했다. 같은 시각 구시다진자에선 부처님께 바치는 봉납예술공연 일환으로 시민들이 그간 갈고닦은 장기자랑 무대를 펼쳤다.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축제 하나로 이렇듯 온 시민이 하나될 수 있음이 감탄스러웠다.
모두들 한껏 들떠 웃고 즐기며 몸을 흔들고 박수 치는 사이 그 어느 때보다 이국의 문화에 동화됨을 느꼈다. 어머니는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현지 주민들 사이로 과감히 뛰어 들어가 사진을 찍어 달라 재촉했다. 같은 또래 어르신들은 얼싸 안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소녀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사진촬영에 응해주었다. 신이 나서 함박웃음을 짓는 어머니 얼굴엔 어여쁜 소녀의 잔영이 떠올랐다.
인파에 묻혀 축제를 즐기는 사이 어머니의 출국시각이 가까워졌다. 허겁지겁 서두르지 않으려 일찌감치 숙소에 가서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갔다. 서운한 마음을 지긋이 누른 채 국제선 청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와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는데 뒷좌석에 앉은 반백발의 중년남성이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머니는 남은 일정 당부사항들을 꼼꼼히 일러주신 뒤 "절대 밥은 굶지마" 하며 용돈까지 챙겨주시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서는데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핑 돌았다.
공항에서 숙소로 걸어오는 내내 '천안함 사건'이 머릿속을 채웠다. 행복한 시간 끝에 만남이 전제된 이런 작별도 마음을 울리는데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라고, 그리 아픈 헤어짐을 겪었으니 그 심정을 상상이나 할까 싶었다.
그러고보면 결국 무한한 시간 안에 잠시잠깐 발 한쪽 담궜다 어디론가 떠나는 게 우리 삶이니 남의 눈치보고 세상 잣대에 묶여 허송세월할 시간이 없다. 창문 너머 마을의 불빛들을 감상하며 앞으로의 여정을 위한 마음을 다잡아본다.
닷새 여정의 마지막 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공포에 휩싸였던 간밤의 사태는 결국 몹쓸 상상력에 기인한 해프닝으로 판명났다. 갑작스레 찾아왔던 어머니의 무릎 통증도 가시고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온종일, 누군가 이 도시의 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려 작정한 듯 다채로운 풍광이 우리를 맞았다.
▲ 후쿠오카돔 앞에 선 어머니 ⓒ 이명주
어김없이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환했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찾는 일도 익숙해졌다. 우리가 가는 곳은 니시진역. 이른바 후쿠오카의 대표관광지 '인증 코스'를 밟으러 간다. 가이드북은 물론 이곳을 다녀간 대부분 사람들의 기념사진 속에 간직돼 있을 장소들.
니시진역 일대는 풍성한 정원이 딸린 고급주택들 사이로 가로수가 울창했다. 식물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일본에 온 이후 이렇게 꽃, 나무가 정성스레 가꿔진 거리를 볼 때마다 무척 흐뭇해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걸으면 평소에 무심했던 일상적이고 작은 것들에 눈길을 주게 된다.
후쿠오카돔은 주택가를 벗어나 도심 중앙을 흐르는 강변을 따라 10여 분쯤 걸었을 때 나왔다. 햇살을 받아 황금처럼 빛나는 거대 돔이 길고 깊은 청록색 물빛과 잘 어울렸다. 사진촬영을 하고 강 위의 다리를 건너니 곧장 장난감 같은 혹스타운이 나왔다. 그 앞 광장에선 시민들의 무대공연이 한창이었는데 잠시 후 있을 축제의 서막이었다.
▲ 단테광장에서 '마이클 잭슨'과 악수하다 ⓒ 이명주
60~70대로 보이는 할머니들의 가부키 합동공연을 관람하고 혹스타운 정면 계단을 올라 단테광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야후돔 좌측 안쪽에 위치해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듣던 대로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폴 매카트니, 빌리 조엘, 본 조비 같은 유명인사들과 악수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었다.
광장에서 내려다뵈는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엔 벌써부터 성마른 바캉스족들로 북적였다. 비니키 상의를 벗은 채 선탠을 즐기는 젊은 여인과 탄력있는 검은 피부의 남녀 커플들이 비치볼을 즐기는 5월의 바다는 이미 후끈 달라올라 있었다. 해변의 백사장에서 하루쯤 보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일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시간이었다.
정오 무렵 기온역의 구시다 진자에 돌아왔을 때 때마침 '하카타 돈타쿠'가 시작되고 있었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날부터 고대했던 바로 그 축제다. 이 축제는 하카타의 돈타쿠 성에 살던 영주에게 지역 상인들이 새해 인사를 하러 간 데서 유래했는데, 현재까지 그 명맥이 잘 이어져 이곳 상권을 구성하는 국내외 거주자와 주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불러모으는 대표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에서 비치볼을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 ⓒ 이명주
어린 아이부터 회사원, 주부, 학생들, 백발의 노인까지 독특한 복장과 화려한 분장을 하고 각기 가게나 업체를 홍보하는 대형 풍선과 가마,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행렬을 준비했다. 같은 시각 구시다진자에선 부처님께 바치는 봉납예술공연 일환으로 시민들이 그간 갈고닦은 장기자랑 무대를 펼쳤다.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축제 하나로 이렇듯 온 시민이 하나될 수 있음이 감탄스러웠다.
모두들 한껏 들떠 웃고 즐기며 몸을 흔들고 박수 치는 사이 그 어느 때보다 이국의 문화에 동화됨을 느꼈다. 어머니는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현지 주민들 사이로 과감히 뛰어 들어가 사진을 찍어 달라 재촉했다. 같은 또래 어르신들은 얼싸 안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소녀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사진촬영에 응해주었다. 신이 나서 함박웃음을 짓는 어머니 얼굴엔 어여쁜 소녀의 잔영이 떠올랐다.
▲ '하카타 돈타쿠' 축제 현장 ⓒ 이명주
인파에 묻혀 축제를 즐기는 사이 어머니의 출국시각이 가까워졌다. 허겁지겁 서두르지 않으려 일찌감치 숙소에 가서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갔다. 서운한 마음을 지긋이 누른 채 국제선 청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와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는데 뒷좌석에 앉은 반백발의 중년남성이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머니는 남은 일정 당부사항들을 꼼꼼히 일러주신 뒤 "절대 밥은 굶지마" 하며 용돈까지 챙겨주시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서는데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핑 돌았다.
공항에서 숙소로 걸어오는 내내 '천안함 사건'이 머릿속을 채웠다. 행복한 시간 끝에 만남이 전제된 이런 작별도 마음을 울리는데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라고, 그리 아픈 헤어짐을 겪었으니 그 심정을 상상이나 할까 싶었다.
그러고보면 결국 무한한 시간 안에 잠시잠깐 발 한쪽 담궜다 어디론가 떠나는 게 우리 삶이니 남의 눈치보고 세상 잣대에 묶여 허송세월할 시간이 없다. 창문 너머 마을의 불빛들을 감상하며 앞으로의 여정을 위한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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