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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료 ↑보다 '정권 나팔수' 오명 벗는 게 먼저

[이것이 정치다 36] KBS 수신료 인상 반대 '일곱 가지' 이유

등록|2010.06.15 19:54 수정|2010.06.15 19:54

▲ 시민단체들은 맞불 기자회견도 열었다. 기자회견자리에서는 "지금 내는 수신료도 아깝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 이주연


"권력의 시녀 KBS에 돈 더 못 낸다"
"'조·중·동 종편' 위한 수신료 인상추진 중단하라"

어불성설도 이런 어불성설이 없다. 주인이 지갑을 열지도 않았는데 돈부터 더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모습은 영 볼썽사납다. KBS가 월 2500원인 수신료를 4600원~6500원으로 올리는 안을 공식 제기했지만 본전도 못 건지게 되기 십상이다. 준조세 성격의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안에 시민단체와, 학계, 시청자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다.

준조세는 '조세 이외에 법정부담금과 기부금·성금 등을 포함하는 일체의 금전급부의무'를 말한다. 수신료는 한번 결정되면 지속적으로 의무 부과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도 없이, 특히 주인인 국민과의 합의 절차도 없이 KBS가 인상을 서두르는 이유는 뭘까? 연초부터 짐작은 갔지만 지방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보채는 모습이 수상쩍다. 

KBS는 14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현실화 공청회'를 개최하며 수신료 현실화를 강조했다. KBS는 수신료 공청회에서 현행 수신료 2500원을 최대 6500원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부분 토론자들은 국민 정서를 감안하지 않은 과도한 인상이라고 시큰둥했다.

"KBS 수신료 인상안, 종편 2개 허용 가능한 광고비 액수와 일치"

무엇보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주인인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KBS가 공개한 인상안은 '수신료 4600원-광고비중 19.7%'의 보수적 개선안, '수신료 5200원-광고비중 12.3%'의 중도적 개선안, '수신료 6500원-광고비중 0%'의 적극적 개선안이다.

김인규 KBS 사장은 "온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며, 그렇게 하려면 시청률에 의존하지 않고 광고 의존도도 줄여야 한다"며 "KBS의 사리사욕이나 종편 지원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은 이날 오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수신료 국민공청회-누구를 위한 수신료 인상인가'를 열어 KBS 수신료 인상 움직임에 대한 문제점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발제자인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은 KBS가 수신료를 6500원으로 인상하고 광고비중을 0%로 하면 2009년 결산 기준으로 6470억 원의 광고시장으로 유입된다고 밝혔다. 유 위원은 "종편 1개당 3000억원의 광고비 수입을 확보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을 때 종편 2개 허용이 가능한 광고비 액수와 일치한다"며 "종편을 위한 수신료 인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종편 채널에 광고를 주기 위해 공공재인 수신료 인상을 시도하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할 공공성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전 국민적인 저항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교육, 노동계, 학계 등 각계 전문가들도 KBS가 국민 부담이 가중되는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면서 국민적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락한 공영방송 위상과 신뢰 회복하는 데 더 힘써라"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KBS가 기어이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겠다는 태세를 보여 놀랍다. KBS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통과되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을 거쳐 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을 강행 처리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진행과정에서 족히 읽히고도 남는다.

지난 1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수신료를 5000∼6000원으로 인상할 것"이라며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면 7000∼8000억 원 규모의 광고가 민간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를 낼 것이고 이는 미디어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 발언에서 암묵적으로 묻어났다.
수신료를 대폭 인상하는 대신 KBS 2TV의 광고를 줄이거나 폐지해서 KBS가 얻었던 광고수입이 '조·중·동 종편'에 흘러들어가도록 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다. '조·중·동 종편'이 먹고 살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국민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수신료 인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 지금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지펴지고 있다. 진실을 알리는 시민(진알시)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KBS 수신료를 끊은 시민들의 TV를 모아 '수신료 거부 퍼포먼스'를 벌이고 나섰다.  또한 '조중동 종편 몰아주기'를 위해 KBS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도 잇달아 전개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추락한 '공영방송'의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을 써라"며 "이명박 정권만 바라보며 수신료 인상에 들러리 노릇이나 하다가는 KBS 역시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14일 민주언론시민연대(민언련)과 한국진보연대, 참교육학부모회, 진알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등은 경고했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시청자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대등소이하다. KBS 수신료 인상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크게 7가지다.

KBS는 '정권의 나팔수'라는 오명에서 먼저 벗어나야

▲ 시민단체들은 수신료를 올리려는 수상한 삼형제로 이명박 대통령, 김인규 KBS 사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꼽았다. 사진은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팻말. ⓒ 이주연

첫째, KBS는 '정권의 나팔수'라는 오명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언론의 진실보도 훼손 가능성 중 하나는 권력이 제시하는 당근에 무력한 경우다.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언론이 권력의 편에 서는 순간 진실보도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사 KBS가 '정권의 나팔수', '권력의 시녀' 또는 '국영방송'이라는 오명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이 거세다. 이런 와중에 처지가 궁하다고 주인들에게 수신료를 두 배 이상 올려달라고 조르니 어떤 주인이 그 행태를 어여삐 어기며 눈감아 주겠는가?

가뜩이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정권의 편에 서서 정연주 사장을 강제 해임한 이후 KBS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오죽했으면 14일 민언련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KBS 수신료 인상 강행추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방송을 맹비난했다.

"'청부사장' 이병순, '특보사장' 김인규로 이어진 KBS는 방송장악에 저항하거나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직원들, 정권에 밉보인 방송인들을 현장에서 쫓아냈다. 이제 KBS에서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나 불리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정권을 옹호하고 찬양하는 프로그램들만 쏟아져 나온다."

이들 시민단체들의 불만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사상 최대의 6.2 지방선거를 놓고 공영방송이 해도 너무 했다는 힐난을 쏟아냈다. '정권의 나팔수'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순 없다고 퍼부었다. 가뜩이나 지방선거과정 내내 KBS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포기하고 무상급식, 4대강 사업, 세종시 등 국민들의 관심사를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북풍몰이'에만 몰두해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금 KBS에 시급한 과제는 수신료 인상이 아니다. 공영방송으로 '정상화'되는 것이 급선무다.

고장 난 '미디어 사유화 정책' 가속페달부터 고쳐야

둘째, 고장 난 '미디어 사유화 정책'의 가속페달부터 당장 고쳐야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 KBS2와 MBC 민영화를 의미하는 방송 사유화와 대폭적인 미디어 규제완화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돼 왔다. 하지만 시장주의의 '자유 경쟁 시장론'은 자율 경쟁을 보장하지 못해 오히려 사적 소유 집중을 가속시켰다.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에 그가 쓴 <디지털 방송의 공익성>(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역대 정부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소위 'MB의 사람들'을 소위 언론관련 직종에 가장 많이 낙하산 인사를 해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방송통신위원장이나 KBS사장과 같이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측근의 사람을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했다"며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공보 조직에 있었던 40인 가운데 언론 유관기관의 수장으로 12명이 재직하고 있다"고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다.

특히 "대통령의 형님이라 부르던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나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하고 측근을 사장에 임명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에 중대한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뿐만 아니라 MBC와 YTN 등 다른 기간 방송사까지도 낙하산 인사와 보복성 인사 조치 등을 통한 방송장악 음모로 종사자들의 거센 저항을 샀다. 미디어, 특히 고장 난 방송의 사유화 정책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게 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료 인상은 고장 난 가속 페달에 기름을 붓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조·중·동 종편 위한 술수' 불신과 오해 벗어야

셋째, "수신료 인상은 '조·중·동 종편'을 위한 술수"란 불신과 오해를 벗어야 한다. KBS의 수신료 인상 문제는 새해 벽두부터 잡음에 휩싸이기 시작했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수신료 인상을 공론화한 데 이어 KBS 경영진과 이사회가 구체적인 인상폭과 시기를 저울질하면서 본격적인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출입기자들과의 신년인사 자리에서 "KBS 수신료는 5000~6000원 정도로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수신료 인상 시 7000억~8000억원 규모의 광고가 민간 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를 내 미디어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의 김인규 KBS 사장도 신년사에서 수신료 인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언론학계에서는 KBS의 수신료 인상을 두고 ▲종편의 미디어렙 제외를 통한 독자적인 광고영업 허용 ▲광고금지 품목 완화 등과 함께 현 정권 '종편 퍼주기'의 결정판이라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현행 2500원인 수신료가 2배 수준으로 인상되면 KBS에 몰렸던 광고물량이 풀려나오고, 종편 사업자들의 독자적인 광고영업이 허용될 경우 지상파에 버금가는 광고수혜를 입게 될 것"이라는 분석들도 쏟아져 나왔다. "KBS의 수신료가 인상되면 국민들이 주머니를 털어 종편 사업자들이 부담해야 할 연 3000억~4000억 원의 투자비용을 떠받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나왔다.

최근 KBS 수신료 인상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는 목소리도 지난 1월 최시중 위원장의 수신료 인상 발언이 나왔을 때와 비등하다. "MB방송의 수신료는 MB에게 받아라"는 주문이 따갑다. 쏟아지는 국민의 원성을 외면하고 끝내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인다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또 한 번의 국민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경영위기보다 더 무서운 건 공영방송 정체성 상실

넷째, 경영위기보다 더 무서운 건 공영방송 정체성 상실이란 사실을 왜 모를까? KBS가 수신료 인상에 목을 메는 이유 중 하나는 경영의 위기보다 정체성 위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연우 세명대 언론학과 교수는 14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KBS 수신료 올리려면 참된 공영방송임을 보여라'란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KBS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근본 요인은 재원이 부족해서이거나 상업적 경쟁 때문이 아님은 말할 나위 없다. 권력에 장악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수신료 한 푼 없이 광고수입으로 운영하는 MBC를 국민들이 더 신뢰하는 것만 봐도 단박 알 수 있다."

권력의 방송 사유화 정책에서 비롯된 위기감을 읽은 듯하다. 정 교수는 "권력의 측근이 사장으로 내려와 있는 KBS는 이미 공영방송이 아니라 관영방송이라는 비판이 거세다"고 꼬집었다. 그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비판과 감시는커녕 권력에 대한 찬양과 홍보에 앞장선다. 방송의 공영성은 공정성의 회복없이는 말할 수 없다. KBS는 취재하러 갔다가 카메라의 로고조차 가려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방송사다. 불공정 보도에 대한 국민들의 항의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공영성을 강화하겠다며 국민들 호주머니를 흘낏거리니 낯이 보통 두꺼운 것이 아니다."

지금 KBS가 겪는 위기는 경영위기보다 공영방송의 정체성 위기가 더 크다. 관영방송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수신료 인상 요구, 시기가 적절치 않다

다섯째, 수신료 인상 요구 시점이 적절치 않다. 영국의 미디어 정치경제학자 골딩(Golding)은 일찍이 "방송산업의 높은 시장진입과 운영비용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계층이 시장에 참여하기 어려운 시장경쟁의 불평등한 조건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시장주주의의 자유경쟁 시장론은 미디어의 설립비용이 적어서 누구나 미디어를 창간할 있었던 18세기에나 실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개혁운동가 커런(Curran)도 자유경쟁 시장론에서는 사적 기업이 미디어를 자유롭게 소유해 시장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사회적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자유경쟁을 독과점 구조로 귀결시키는 사적 소유 집중으로 귀결되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소수의 방송사가 미디어 시장을 독점하게 되어 자유경쟁 시장의 취지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잇달아 내놓은 미디어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시장주의, 즉 자유 경쟁 시장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자율 경쟁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적 소유 집중화 현상을 치닫고 있다. 시장경쟁력과 자율성 회복보다는 소유 집중과 시청률 과당 경쟁을 낳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영방송의 사유화가 필요하다고 줄곧 주장해 온 집권세력은 공영방송의 경영위기를 시청료 인상의 불쏘시개에 의존하려는 것은 자가당착의 모순이다.

KBS의 수신료 인상 시도가 실제로 전혀 현실 가능성이 없음에도 지금 밀어붙이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의지 때문이 아니냐는 우스개 지적도 이 때문에 나왔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4일 오전 시민단체가 개최한 '누구를 위한 수신료 인상인가'라는 주제의 '국민공청회'에서 "지금 생각하면 KBS는 바보다, KBS가 (수신료인상에 동의해줄 것으로) 가정한 많은 사람도 바보여야 이런 일이 진행될 수 있다"며 "지방선거가 참패했으며, 현재의 담론인 월드컵에서 중계도 못하는 KBS가 가장 인기 없는 미디어 정책을 들고 나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보"라고 풍자했다. 지금 딱 그 모양이다.

시청자 복지와 보편적 서비스 대책부터 마련해야

▲ KBS의 수신료 인상 움직임에 반대해 시민단체들이 수신료 국민공청회를 열었다. 14일 오전 10시 방송회관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날선 비판들이 이어졌다. ⓒ 이주연


여섯째, 시청자 복지와 보편적 서비스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최영묵 교수는 과연 KBS가 자기 의지로 시청료 인상안을 내놓았는지 몇 가지 의구심을 제기했다. 그는 "구글 애플 삼성까지 스마트TV 개발하면서 다양한 영역의 방송시장이 급신장하고 있고, 과거 수신료가 두 차례 인상됐지만 당시엔 라디오에서 TV로, 흑백TV에서 컬러TV로 전환이라는 분명한 국민 혜택의 근거가 있었다"며 "지금 당장 수신료 안올려도 KBS가 앞장서 돌팔매를 맞으려는 것은 뭔가 열심히 노력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함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합의절차 없이 마음대로 준조세인 수신료를 올려 받겠다는데 대해 누구도 기분 좋게 내줄 리 만무하다. 더욱이 온 국민적 관심이 월드컵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거대한 희소성을 지닌 지상파 TV방송 채널을 두 개씩이나 지닌 공영방송이, 아니 국민의 방송이 월드컵 중계도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 기껏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는 모양새는 보기에도 좋지 않다.

KBS는 SBS가 최종적으로 '월드컵 단독중계' 방침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SBS 전현직 임직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KBS는 고소장에서 지난 2006년 SBS가 중계권 확보를 위한 비밀 협약을 맺은 채 MBC 등 지상파 3사가 월드컵과 올림픽 중계권 확보를 위해 마련한 우리나라의 공동구매 입찰단, 즉 '코리아풀'에 참여하는 것처럼 속였다고 주장했다. SBS의 이런 속임수로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이 방해 받았고, KBS가 재산상 손실까지 입혔다는 게 KBS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가 대항의 축구경기인 월드컵이 보편적 시청권 범주에 들어간다고 판단했다면 국민적 관심 사항을 그토록 안일하게 대응하지 말았어야 한다. KBS가 시청자 복지나 보편적 서비스를 챙기기 전에 보편적 재산상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높은 이유다.

아날로그 방송체제에서 디지털 방송체제로 전환하면서 방송의 시장 경쟁은 날로 가속화되고 있다. 과거 수동적인 소비자 위치에 있었던 시청자가 디지털 시대에는 방송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송 이용자이자 생산자가 됐다. 그런데 아직도 방송의 공익과 시청자 복지는 아날로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청료 인상을 주장하는 KBS가 시청자들의 케이블TV요금 인하운동과 인기 스포츠의 보편적 시청권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를 모를 리 없다.       

국민 80.2%, 전문가 58.3%가 수신료 인상에 반대

일곱째,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인상하겠다는 억지를 버려야 더 큰 저항을 막을 수 있다. 미디어행동과 공공미디어연구소가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과 언론학자·기자·프로듀서 300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80.2%, 전문가 58.3%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국민들은 '보도의 공정성' 27.8%, '경영 효율성과 투명한 관리' 23.4%, '프로그램 공영성 강화' 20.2% 등을 지목했고, 전문가들은 정치적 독립성(40.3%)을 압도적으로 꼽았다.

14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계 및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누구를 위한 수신료 인상인가'란 국민공청회에서 정연우 민언련 공동대표는 토론에서 "광고를 폐지하고 6500원으로 수신료를 인상하겠다는 것은 뻔뻔스럽고, 비겁하고, 불순하다"고 말해 이목을 끌었다.

그는 "정치적 독립성 없이 공영성 강화를 불가능한데도, 수신료를 올려 공영성을 강화한다는 주장은 국민 기만"이라며 "더구나 지금 국민들이 월드컵에 관심을 쏟을 때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비겁하다,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진행하겠다는 것으로 떳떳하지 못함을 스스로 고백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2TV 광고 폐지로 종편 사업자가 먹고 살도록 해주겠다는 것은 의도적으로도 불순하다"고 강조했다.

수신료 인상은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일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고, 수신료 인상을 통해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강화하며 나아가 전체 방송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내놓을 때나 가능하다. 하물며 국민들로부터 '정권의 나팔수'라는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프로그램의 제작 자율성을 더욱 옥죄면서, '조·중·동 종편'에 광고수입을 보장하기 위해 수신료를 올리겠다는 의심을 받는데, 어느 국민이 선선히 지갑을 열 것인가? 게다가 KBS는 수신료 인상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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