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장면 거리자장면 거리 ⓒ 김강임
좁은 거리는 온통 붉은 색이었다. 그리고 고소한 자장면 냄새가 났다. 점심시간인지라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 같아서는 홍등이 걸린 자장면 집에 들려 자장면부터 한 그릇 후루룩 먹고 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여정으로 자장면 냄새만 연거푸 삼켜야 했다.
"니 하오!"
"니 하오!"
이럴 때 중국어로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순발력을 발휘하는 한 학생이 '니 하오!'라며 손을 흔들며 답례를 한다. 길을 걷던 학생들이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한중문화원 옆으로 300여 미터를 걸으니 T자형 길이 양쪽으로 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천 중구청 소속 문화해설사와 동행했다.
그런데 이곳에 왜 중국의 거리가 생겨난 것일까?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1882년 40여 명의 군역 상인들이 이곳에 정착한 이후 2년 후에는 청나라 조계지(집단 거주지역)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하늘 빼고 거리는 온통 붉은 색
▲ 홍등거리에 달린 홍등 ⓒ 김강임
인천 차이나타운 거리는 미니 중국의 거리 같았다. 좁은 거리마다 붉은 색 간판과 붉은 색 창, 붉은색 의자, 하늘을 빼고는 온통 붉은색이다. 700여 명의 화교들이 살고 있다는 이 거리는 상가 밀집지역이었다. 거리는 대부분 음식점, 만두집, 천원에 서너 개 하는 공갈빵이다. 중국여인들의 전통의상인 빨간 치파오도 자주 눈에 띄었다. 1천원에 5개하는 공갈빵을 보자 배가 더 고팠다. 다소 협소하지만 중국의 거리는 배고픈 자에게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 선린동 화교주택선린동 화교주택 ⓒ 김강임
한중문화관에서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경사길. 경사진 돌계단은 청나라인과 일본인이 살던 곳을 나누던 경계지역이었다. 계단 왼쪽으로는 중국식 2층 건물이 보였다. 계단 오른쪽은 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남아 있는 건물은 없지만 일본풍 거리였다. 계단 좌우에 설치한 석등도 오른쪽은 일본풍, 왼쪽은 중국풍으로 각각 달랐다.
▲ 자장면 거리자장면 거리 ⓒ 김강임
자장면 거리를 걷다
드디어 자장면 거리인 차이나타운 55번 길을 걸을 차례다. 빨간 간판에 자장면의 상호도 각양각색이었다. 붉은 벽돌, 붉은 간판, 붉은 창문. 차이나타운 55번 길은 붉은 도시의 거리였다. 최초의 자장면 집이던 공화춘은 공사중이었다.
차이나타운 거리에 와서 자장면 한 그릇 못 먹은 학생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인 스카이힐 계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이힐 계단 좌우로 만리장성과 자금성 그리고 중국과 관련한 그림이 펼쳐졌다. 자금성, 태화전과 만리장성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 삼국지 거리삼국지 거리 ⓒ 김강임
▲ 만리장성 차이나타운 만리장성 벽화 ⓒ 김강임
삼국지 거리를 걷다
'삼국지 벽화의 거리', 길 양쪽 벽면에는 삼국지 주요 장면을 타일로 제작한 벽화가 있다. 누가 봐도 중국 냄새가 풀풀 나는 거리였다. 마치 중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스카이힐스카이힐 ⓒ 김강임
▲ 선린문선린문 ⓒ 김강임
파란색 패루,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자!
선린문 계단을 오르던 학생들은 숨을 헉헉 댔다. 선린문은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자'는 뜻. 선린문 앞에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700여 명이 모여 사는 차이나타운이 한눈에 보였다. 청나라와 조선이 조계를 맺고 화교가 정착한 이곳은 한국 내 중국이었다.
▲ 인천항차이나타운 지붕인 자유공원에서 본 풍경 ⓒ 김강임
차이나타운의 지붕인 자유공원에서 여정을 풀었다. 인천항이 보였다. 그리고 자유공원 내리막길에는 동상 하나가 서 있었다. 공자의 동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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