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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황희만, 결국 토사구팽 될 것"

[인터뷰] MBC에서 14년 만에 해직된 이근행 노조위원장

등록|2010.06.18 10:02 수정|2010.06.18 12:08

▲ MBC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최근 해고된 이근행 노조위원장. ⓒ 남소연


"이근행 위원장 잘렸단다."

지난 4일 복잡한 남대문시장에서 받은 전화였다. 복잡한 남대문시장만큼 심경이 복잡해지는 전화였다. 가슴도 먹먹해졌다.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감도는 훨씬 셌다.

지난해 미디어법 투쟁과정에서 알게 된 그는 늘 해맑았다. 총파업 단식으로 점차 야위어가더니 열두 날째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고, 나흘간의 총회를 열어 파업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곧 지방선거가 이어졌고, 선거 직후 그는 해고통지를 받았다.

해고 만 열하루 째인 지난 15일 오후 MBC 3층 커피숍에서 그와 만났다. 그는 가슴에 사원증 비슷한 무언가를 걸고 있었다.

"호패 같은 거예요. 조합원들이 부적처럼 매고 다녀요. 현업복귀하면서 상징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는데 반응은 좋은 편이에요. 현장으로 돌아가면 개별화되니까 고립돼 있다고 느끼지 말고 계속 함께 하고 있다는 뜻으로 만든 작은 상징물이지요."

'저는 언론노동자의 양심으로 김재철 사장을 거부합니다-MBC를 지키고 싶습니다'. 파업 내내 MBC 노조가 외쳤던 구호를 가슴에 걸고 있는 그가 좀 쓸쓸해보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맑게 웃고 있었다. 해고는 침울할 만큼의 충격적인 상황도 아니고 파업기간 발랄했듯 지금도 그렇다는 게다.

'참 나쁜 사장님', 김재철

그는 사내 정보망 접근 배제,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폰 반납 요구에서 20년간 MBC와 맺은 인연이 하나씩 차단되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해고를 따질 여유는 없다고 했다.

14년 전 강성구 사장 퇴진투쟁으로 24일간 파업했던 최문순 위원장이 해고됐지만 다른 조합원들은 손대지 않았었는데, 김재철 사장이 100명이 넘는 이들을 징계위에 회부하는 '유혈적' 처분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참 나쁜 사장님'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파업 일시중단과 징계파문 이후 MBC 사내에는 '자발적으로 삭발'한 조합원들이 늘었다. 저녁밥을 먹다가 잠깐 나갔다 오겠다던 사람들이 저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밀고 분노를 표출했다. 여성인 이동희 피디도 밀었다, 빡빡. 단식과 삭발을 제일 싫어하는 이 위원장에게 얼마나 가슴 저민 일일까. 

파업부터 해고까지 격랑에 시달리고 있는 이근행 위원장을 만나 최근 일상과 파업 평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근행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끝내 해고가 확정됐다. 20년 다닌 회사에서 해고통지를 받은 기분이 어떤가.
"침울할 만큼의 충격적인 상황은 아니다. 추스르는 중이다. 파업투쟁 뿐 아니라 이후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침울할 수는 없다. 파업기간에도 발랄했듯이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심각하다. 기분도 안 좋다. 뭔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재철 사장, 경영진 그리고 정치권력 등에게. 단순 보복이 아니라 MBC를 바로 세우는 것, 위기의 한국사회 언론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물론 언론을 부당하게 통제하려고 했던 권력 그리고 거기에 빌붙어 공영방송 수장으로서 책무를 도외시하고 일신의 영달을 추구했던 인물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가 일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서 끊임없이 부역자들이 발생하고 권력에 굴종하는 자들이 상층부 지배 권력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 언론도 제대로 역사청산을 해내지 못하면 그런 일들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언론계 내부에서 그런 책임을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빠 이제 백수 되는 거야?"

- 해고 이후 일상에도 변화가 있나.
"지난 4일 1차 인사위원회에서 해고결정이 났다. 재심을 신청했지만, '이유 없다'며 11일 인사위에서 원심대로 해고가 확정됐다. 그리고 MBC 인트라넷에 공지됐다. 해고되니 자잘한 변화들이 많이 생겼다.

우선 사내 정보망에서 차단됐다. 회사비품도 반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노트북, 휴대폰 모두 반납대상이다. 퇴직금 정산도 하라고 할 것 같고, 회사에서 대출받은 돈도 갚아야 할 것 같다. 20년간 MBC와 쌓아온 인연들이 하나하나 현실적으로 차단되는 느낌? 기분 좋을 턱이 없다."

▲ 이근행 노조위원장. ⓒ 남소연

- 총파업 단식투쟁 때 어린이날 올린 트윗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가족들은?
"중학교 3학년짜리 큰딸이 있는데 지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수년간 부모와 충돌하는 중이어서 지금 그에게 아빠의 상황을 얘기할 틈은 없다. 사춘기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저 자신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그리고 자식들에게 내가 겪는 상황을 일일이 얘기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아빠 이제 백수 되는 거야?'라고 제 엄마에게 물었다고 한다. 백수가 뭔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안다고 했다는데, 뭐 그 정도다. 해고로 가장 충격을 받은 분들은 집안의 어른들이다.

어머니와 장모님, 두 분은 경찰조사와 해고에 대해 굉장히 두려운 상황으로 인식하고 계신 것 같다. 아내는 함께 의논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수준이다.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할 때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받아들이라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해고됐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꾸라, 이렇게 요구할 사람도 아니다. 아내가 제일 든든한 버팀목이다."

- 해고되면 생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
"MBC 노동조합 규약에 조합 활동으로 피해를 본 조합원에 대한 구제규정이 있어서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 없다. 위원장 임기는 내년 2월까지인데, 해고는 됐지만 유고상태는 아니니까 끝까지 해야 한다. 후임 집행부의 짐이 무겁더라도 옮겨주고 가려고 한다." 

- MBC 역사상 14년 만에 해직 언론인이 됐다. 지난 1996년 강성구 사장 퇴진 운동을 주도했던 최문순 당시 노조위원장(현 민주당 의원, 전 MBC 사장) 이후 첫 해직이다.
"최문순 위원장은 1년 만에 복직됐다. 그러나 나는 언제 복직될지 잘 모르겠다. 앞날을 예단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늦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MBC 노동조합이 한 일이 매우 상식적이고 크게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조만간 바로잡힐 것으로 예상한다."

- 이 위원장 말고도 집행부 17명이 정직이나 감봉 징계를 받았다. 재심에서 걸러지기는 했지만 사측은 당초 41명을 징계했다. 파업에 대한 보복성 무더기 징계다.
"지역MBC까지 합치면 전체 106명이 징계위에 회부됐다. 서울은 징계가 끝났지만 지역지부는 지금도 징계가 진행 중이다. 다소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최종 100명이 넘는 수가 파업투쟁으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MBC 역사상 최대 규모다.

최문순 전 위원장이 해고됐을 때 24일간 파업했었다. 당시엔 최문순 위원장만 해고됐었다. 위원장에게만 모든 정치적 책임을 물었고, 다른 조합간부들에 대해서는 징계가 없었다. 김재철 사장의 징계는 상당히 유혈적이다.

MBC 역사에 없었던 큰 폭의 고강도 징계였다. 조합간부들이 그렇게 큰 죄를 지었나? 근본적인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데도 인사권과 징계권이 있다는 이유로 마구 휘둘렀다. 도덕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잘잘못을 따져서 징계를 내릴 수는 있지만, 권위를 상실한 경영진이 내린 징계, 누가 인정하겠나."

저녁밥을 먹다가 머리를 빡빡 밀고 나타난 사내들

- 항의투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나.
"농성도 하고, 집행부가 삭발하기도 했다. 삼삼오오 울분을 참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개별적으로 머리 깎고 다닌다. 회사를 상대로 타격할 수는 없지만 양심상 지금의 상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로 삭발한 조합간부나 조합원들이 있다.

MBC에서 삭발하는 예가 없다. 파업, 투쟁 그리고 해고가 돼도 삭발한 전례가 없다. 그만큼 지금 김재철 사장의 행태에 조합원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는 게다. 자신들이 해고된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본다."

- 누가 먼저 머리를 깎았나.
"연보흠 홍보국장, 이세훈 교섭쟁의국장, 서점용 영상미술부문 부위원장 셋이다. 저녁밥을 먹다가 한 시간만 나갔다 온다고 하더니 갑자기 머리를 밀고 왔다. 그들 모두 96사번 동기들이다.

몇 사람이 하니 그 다음 도미노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결국 집행부들이 다 깎았다. 여성 중에는 <공룡의 땅>을 만들었던 이동희 피디가 비전임 여성국장인데 '깎았다', 빡빡.

처음에는 사람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방송국에서 머리 깎고 다니면 좀 그렇지 않나. 그런데 의외였다. '잊지 말자' 뭐 이런 환기효과랄까. 삭발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적당히 넘어가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고."

- 지난 5월 14일 노조는 파업 일시중단을 선언했다. 39일간 파업하고 40일 만의 현업복귀였다. 이때 나흘간 연속총회를 했는데 논란의 핵심은 무엇이었나.
"파업투쟁의 지속여부였다. 집행부는 천안함, 월드컵 등 정세요인, 그리고 김재철-황희만 두 인물은 노조가 아무리 파업을 해도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파업을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판단으로는 그동안 충실히 파업투쟁을 했고, 내부적으로 김재철과 황희만을 인정하지 않을 만큼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파업투쟁을 더 하는 것으로 상황의 변화는 없다, 김재철을 물리적으로 끌어내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이 상황은 교착상태라고 봤다. 김재철은 정치적으로 사망했다고 규정하고 언론노동자로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현장투쟁을 병행하자고 결정했다. 그 결정에 대해 (일부) 조합원들이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였다.

총파업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불같은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조합원들은 집행부의 입장에 동의했다. 힘의 논리로 조직적인 결정을 강요하고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충분히 얘기하는 방식으로 풀었다. 조합은 비상시국에 무언가 결정해야 하지만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흘간의 총회를 좋게 봐준 분들이 많다.

MBC 역사에서 전무후무했던 총회. 선배들도 언론노동운동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것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과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4월 7일 여의도 MBC본사에서 열린 전 조합원 총파업 집회에서 'MBC를 지키고 싶습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국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 이번 파업으로 얻은 건 뭐고, 잃은 건 무엇인가.
"언론은 끊임없이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책임있게 싸워야 한다는 각성을 이뤘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아쉬운 것은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조인트 폭행 발언 이후 청와대에 의한 MBC 장악기도와 진상규명 요구, 김재철 사장 퇴진, 방문진 개혁 등 3가지 목표 중에선 얻은 게 없다."

- 가시적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책임은 어떻게 되는 건가.
"가시적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측면에서는 조합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퇴진했어야 옳다고 본다. 언론노동자의 각성이라는 추상적 성과로 자기 만족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사장을 날리는 것보다 언론노동자 스스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각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시사토크쇼 '쇼당'?

- 청와대와 김재철 사장의 파업 유도에 말려들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후 노골적으로 2년간 MBC를 괴롭혀왔다. YTN은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 저항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접수한 셈이다. KBS? 한 방에 접수됐다. MBC는 엄기영 사장 등등 잘 안 풀리고 있다. 그건 MBC가 맷집이 있기 때문이다.

MBC가 다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선방하는 국면이고 지금도 그런 단계로 본다. 6.2 지방선거 이후 각종 사회적 의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이제 정부는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에 대한 입장 또한 바뀌어야 한다."

- MBC의 최근 보도 및 프로그램은 정권 눈치를 안 보고 잘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
"MBC가 <오마이뉴스> 같을 수는 없다. 지상파 방송의 성격으로 보면 조금 부족하다고 본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MBC가 KBS처럼 정권홍보방송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왜곡하고 정권 홍보하거나 외면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파업투쟁에서 현장으로 돌아간 뒤 조합원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해줬으면 좋겠다. 만일 MBC 사내에서 간부들과 현안으로 맞부딪친다면 논쟁거리가 될 것이고 내부적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견제할 힘을 갖고 있다."

- 김재철-황희만은 기사회생한 셈인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나.
"노조도 결국 가시적으로는 얻은 게 없지만, 김재철-황희만은 다 잃었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잃었고, 구성원들로부터 버림받았으며, 앞으로 남은 삶 또한 별로 남은 게 없다. 토사구팽 될 것이다. 권력이 김재철을 안고 간다고 보나? 절대 아니다. 스스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김재철씨는 사장이 돼서 자신이 얻으려고 하는 걸 다 잃었을 것이다. 김재철 사장은 짧은 시간 안에 잊힌 존재가 될 것이다."

-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살고 싶나.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싶다. 찾아다니면서 맛있는 음식 먹고 가보고 싶은데 가보고. 집에도 일찍 가고 싶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없어지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돌려놓고 싶다."

- 현업에 복귀하게 된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나.
"재밌는 시사토크쇼, 전두환-이명박도 나오는. 너무 뻔한 얘기 말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시사토크쇼를 하고 싶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불러놓고 묻고 싶다. '쿠데타 할 때 떨리지 않았느냐'고.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쇼당'이다. 고스톱의 '쇼당'처럼. 자기 패를 다 까놓고 보는 시사토크쇼라서 그렇게 붙여봤다. 아, 김재철 사장도 부를 수 있겠다. 사장님은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셨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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