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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388, 반대 1... 그럼에도 반대표를 기념하는 이유

[取중眞담] 69년 전 '일본 보복 전쟁' 반대표 던진 평화주의자 지넷 랜킨

등록|2010.06.17 15:55 수정|2010.06.17 15:55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하는 전함 아리조나. ⓒ www.uga.edu


감히 보복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1941년 12월 8일 월요일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바로 전날 일본제국 해군의 기습으로 2390명의 사망자와 117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죠. 선전포고도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도발이었습니다. 일본군의 공습으로 미 태평양 함대의 근거지였던 진주만은 불바다가 되고, 전함 5척을 포함한 각종 함정 12척이 침몰했으며, 188대의 항공기가 전파(全破)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분노했습니다. 진주만 공습 직후, 테네시주 내쉬빌 환경보호청이 6백만 장에 이르는 '쪽발이 사냥 면허증'(licenses to hunt Japs)을 한 장당 2달러에 판매할 정도였죠. 복수심에 불타는 미국인들에게 비열한 기습을 감행한 일본인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되었던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행한 연설은 전쟁을 도발한 일본제국에 대한 분노와 단호한 보복 의지를 담고 있었죠.

"어제, 1941년 12월 7일, 이날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미 합중국은 일본제국에 의해 고의적인 기습 공격을 당했습니다. (중략) 계획적인 이 침략을 격퇴하는 데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미국 국민들은 정의로운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최대한 힘을 기울여 우리의 방위를 위해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이러한 식의 배신 행위가 앞으로 다시는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는 저의 주장은 의회와 모든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지금은 전쟁 상태입니다. 우리 국민, 우리 영토, 우리 이익이 심각한 위험 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군대에 대한 신뢰와 우리 국민의 결연한 의지로써, 우리는 기필코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신의 가호를 빕니다. 본인은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에 일본의 일방적이고 믿음을 저버린 공격이 개시된 이후, 미 합중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전쟁 상태가 시작되었음을 의회에서 선언해줄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사자후를 토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연설은 의사당을 메운 상하 양원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곧 미국 상원과 하원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요청한 대일 선전포고를 의결하죠. 상원은 만장일치로 대일 개전안을 통과시켰지만 하원은 달랐습니다.

▲ 1941년 12월 8일, 긴급 소집된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루즈벨트 대통령. ⓒ www.uga.edu


"민주주의란 만장일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제도"... 비난에도 꺾이지 않은 소신

"노(No)! 전쟁은 안 됩니다." 감히 이렇게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몬태나주 출신의 공화당 의원 지넷 P. 랜킨(61·Jeannette Pickering Rankin)이었습니다. 상하 양원을 통틀어 미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그는 퀘이커교도로 철저한 반전주의자였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저는 전쟁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전쟁터에 보내는 일도 반대합니다." 랜킨 의원은 하원의장에게 안건 토의 시간에 발언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하지만 그는 소신대로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결국 하원은 388:1로 대일 선전포고를 승인합니다.

▲ 만년의 지넷 랜킨. ⓒ www.uga.edu

여성해방운동가로서 평생 동안 평화주의자로 또 사회 개혁가로 살았던 랜킨이 전쟁에 반대한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1916년 하원의원에 선출되었던 그는 이듬해 미국 의회의 대 독일 선전포고에 반대한 4명의 의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죠. 그는 1·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는 것을 반대했던 유일한 의원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전쟁에 반대하는 표를 던지고 난 후 랜킨에게는 비난이 쏟아졌죠. 선거구민에게 계란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만장일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정치제도"라며 국가나 사회가 하나의 현안을 두고 하나의 의견으로만 획일화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는 그의 소신과 행동은 오늘날 '미국 정치사를 빛낸 역사적인 한 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랜킨은 그 후에도 평화운동을 계속해 베트남전 개입 중지를 역설했으며 1968년 1월 15일 87세의 나이로 '지넷 랜킨 여단'을 자처하는 5000명의 여성들과 함께 국회의사당 앞에서 베트남전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 국회의사당 현관에는 랜킨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전쟁에 찬성하는 투표는 할 수 없습니다"란 그의 말과 함께.

일본에 대한 미국의 선전포고는, 침략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겁니다. 또한 미 하원에서 전쟁에 찬성한 388표는 미 국민의 단호한 뜻이자 정당한 권리였습니다. 하지만 랜킨이 던졌던 반대표의 무게 역시 388표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의회가 의사당 현관에 세운 랜킨의 동상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균형감각 없는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랜킨의 말은 천안함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 볼 만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과 관련된 서한을 보낸 참여연대에 대한 돌팔매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저 XX들. 총살을 시켜버려야 한다"는 막말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 정부 당국자는 '이적행위'라는 엄청난 말도 하시더군요. 특히 검찰은 참여연대가 북한의 주장을 실제로 인용해 서한을 작성했는지, 북한을 실제로 이롭게 할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예정입니다. 보수 신문들은 한 술 더 뜨고 있습니다. 언론의 생명이자 근간인 '표현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를 스스로 난도질하는 신문은 자신의 존재근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69년 전 랜킨이 던졌던 반대표의 의미와 그것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자문해 보길 원합니다. 지금 당장은 국익에 저해된다고 생각되는 소수의 의견이 바로 민주주의의 자기 증명이라는 사실을 미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미국 국회의사당 현관에 세워진 지넷 랜킨의 동상. ⓒ www.dcp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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