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 할머니, 미쓰비시 주총 가는 까닭
일본이 내민 '근로정신대' 보상금 1250원, 한국 정부는 '...', 국민은 '13만 서명' 운동
▲ 초등학교 6학년 때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던 양금덕 할머니가 서명운동에 동참한 13만 국민께 고맙다며 인사하고 있다. 할머니는 오는 22일 다시 일본으로 가 미쓰비시 주주총회일에 맞춰 항의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 이주빈
초등학교 6학년 때 끌려갔던 할머니 "65년간 제대로 한번 웃지 못했지만..."
17일 오전, 광주광역시에 있는 미쓰비시 자동차 전시장 앞. 마이크를 잡은 양금덕(82) 할머니의 목소리는 감동에 젖어 떨렸다.
"65년간 웃음 한번 제대로 못 웃고 살았는데 이제 웃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한을 풀어주신 국민 여러분의 은덕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양 할머니를 웃을 수 있게 하고, 양 할머니가 고마워하고, 양 할머니가 국민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한 일은 무엇일까.
양 할머니를 비롯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출신 할머니들은 지난 1999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13~15세의 어린 소녀들이었던 할머니들은 '근로정신대'라 불리며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미쓰비시는 일제 강점기 무려 10만여 명을 징용으로 강제동원한 1등 전범기업. 하지만 그들은 일본 패전 후에도 일체의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10년에 걸친 외로운 법정투쟁은 2008년 11월 11일 도쿄 최고재판소가 '기각' 판결을 내림으로써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판결 후 서울 등 미쓰비시 자동차 전시장 앞에서 '금요시위'가 촉발되었다.
부끄러운 것은 '금요시위' 출발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였다는 것이다. 일본 나고야 시민 약 1000명은 '지원단'을 꾸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송은 물론 미쓰비시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시위를 2007년 7월 20일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일본 안팎에서 이 문제가 커지자 2009년 말 일본정부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명목으로 '99엔'을 지급키로 했다. 99엔은 한화로 1250원 정도. 자장면 반 그릇 값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13만 명 서명 동참
▲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17일 광주 미쓰비시 전시장 앞에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13만 347명의 서명을 공개하며 일본 항의방문 투쟁 계획을 밝히고 있다. ⓒ 이주빈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투쟁을 도와 온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10만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대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 일본정부와 전범기업 사죄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추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술국치 100년'이라는 역사적 시점 때문이었을까. 시민모임은 17일 "10만 명 서명운동에 지난 16일 현재 13만 347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서명용지만 A4 용지 2만 6천여 장에 달한다. 이 서명운동엔 서울과 제주도, 영남과 충청 등 16개 광역시도 전역에서 국민들이 참여했다.
이용섭(민주당·광주 광산을) 의원을 대표로 여야 의원 100명(16일 현재)도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함께했다.
시민모임은 특히 "전국 100여 곳의 초·중·고 학교에서 6만여 명이 넘게 참여했다"며 "일제 근현대사를 경험하지 않고, 미래를 책임질 세대의 참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각별하게 여겼다.
시민모임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민족사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나선 이번 서명운동에 전국 각지에서 1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해 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민모임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 "국익이 최고라며 삼성 이건희 회장을 사면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99엔'의 치욕을 보고도 손을 놓고 있다"면서 "최소 4조 원대로 추정되는 징용 피해자들의 미불임금이 해방 65년 동안 일본에 잠자고 있어도 방치하고 있다"고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다.
시민모임은 미쓰비시 중공업의 주주총회에 맞춰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국민 13만 명의 목소리가 담긴 서명용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시민모임은 또 일본정부 내각부도 방문해 '근로정신대' 할머니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해결을 요구할 계획이다.
20여 명으로 구성된 일본 방문단에는 태양양전쟁희생자유족회 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91)과 '근로정신대' 양금덕(82) 할머니, '근로정신대' 유족 등 4명이 포함돼 있다. 또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주도한 이용섭 국회의원과 시민모임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온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당선자, 김선호 광주시교육의원 당선자, 서정성 광주시의원 당선자, 이상갑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장 그리고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인 김재학 신부 등도 참여한다.
65년간 제대로 한번 웃지도 못하고 살아온 양금덕 할머니. 어느 때보다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다시 일본 원정 투쟁에 나서는 할머니가 도쿄에서도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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