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48회)

주합루의 종소리 <3>

등록|2010.06.18 09:31 수정|2010.06.18 09:31
진눈개비가 고양이 발톱 질을 하던 그날 밤의 일은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간밤에 몰아친 추위를 타고 신득수의 주검이 산문에서 발견되자 상감은 은밀히 조사에 착수했다. 초검관으로 내금위에서 나섰지만 신년이 가깝도록 소득이 없자 수사권이 정약용에게 넘어왔다.

<사암(俟菴)에게 수사권을 내릴 것이니 대전장번(大殿長番)을 불러 그날 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라.>

궁 안은 정글이나 마찬가지다. 늘 조용하고 따사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으나 바람이 스쳐간 자리마다 독충(毒蟲)이 꿈틀거렸다.

조금만이라도 마음이 늘어지거나 안정을 찾지 못하면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오는 게 정글이다. 그러기에 이곳엔 없는 독충이 없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대전장번 김내관을 찾아갔을 때 그는 조금도 조바심을 치지 않았다.

"나으리께서 내금위장의 죽음에 대해 조사한다는 말은 진즉부터 들었습니다만, 수사에 도움 될 만한 비밀을 아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날 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네. 자네가 보거나 느낀 대로만 말하게."
"그러지요."

김내관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흉중에 담긴 말을 내놓았다.
"나으리도 들어 아시겠지만 궁 안은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이름 모를 독충이 사는 정글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전하를 곁에서 시종 드는 우리로선 그 벌레를 잡을 수 없으나 날뛰는 걸 막아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침수드신 곳은 어디요?"
"사방이 막힌 나인의 방이니 특별히 신경쓰이는 곳은 아닙니다."
"상아(潒兒)라는 아이가 전하를 뫼셨다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오?"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 아인 나이 열여섯으로 소격서(昭格署)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무슨 연유로 궁에 들어온 것이오?"
"그렇지요. 그 아인 소격서 도학생도지요."

"도학생도?"
"예에. 소격서엔 10여명의 도학생도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게 초제(醮祭)일 것이라고 정약용은 생각했다. 이 제사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성(北斗星)께 올리는 것으로 질병에서 벗어나 목숨이 연명(延命)되길 바라는 제사였다. 이때 주문처럼 사용하는 게 북두칠성연명경(北斗七星延命經)이라는 건 은밀히 알려진 일이었다.

"그 아이가 궁에 들어온 건 제사를 지내기 위함인가?"
"아닙니다. 경술년(庚戌年) 단오날에 소격서에 들린 대비마마께서 그 아이를 발견하여···."
"데려왔다?"

"그렇습니다. 물론 다른 용도가 있어서지요."
"다른 용도라?"

"나으리께서도 아실 줄 믿습니다만, 임오년(壬午年) 사건으로 사도세자가 세상을 뜬 후 전하께선 보위에 오른 후에도 잠자리에서 가위들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신이 안정되지 못했으니 어찌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내의원 이주부는 '사수불수 신불수(似睡不睡 神不睡)'의 증세가 찾아온다 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전하께선 심허증(心虛症)이 있으니 잠은 잔 것 같으나 자고 나면 전혀 잠을 자지 않은 사수불수(似睡不睡) 증세가 온다는 것이지요. 이게 깊어지면 점차 심장이 안정을 찾을 수 없게 돼(神不守) 혼수상태에 들어갑니다. 체내의 혈액이 고갈돼 생명을 잃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당장 위험한 상태는 아니시나 전하의 병세가 깊어질 것을 우려해 대비마마께선 상아라는 아일 소격서에서 데려온 것입니다."

"전하를 위해서라."
"나라를 위해서지요, 그 아일 데려와 추내관으로 하여금 전하를 뫼실 몸을 만들었습니다. 조선의 어께를 짊어질 동량을 생산할 그릇인가를 확인해 본 것이지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흠이 없는 그릇(鼎)인가를 확인해 보는 일이었다. 왕실에서는 선도의 여러 비책들을 즐겨 사용하지만 행술이 너무 무겁고 어렵다는 점에서 본래의 그릇 만드는 법(鼎器)이 아닌 선택정기(選擇鼎器)를 사용한다. 그에 대한 왕실의 텍스트북으로 삼봉단결(三峯丹訣)을 사용했다.

"나으리, 정(鼎)은 전하의 잠자리에 시중들 여인을 가리킵니다. 나이가 열여섯이니 방술서로 본다면 상등이 아닌 중등(中等)입니다."

방술서에 따르면 여인이 열넷의 나이일 때 음기가 가장 왕성하다고 했다. 칠칠(七七)의 나이 열넷은 기러기가 발자국을 남긴다는 홍상미판(鴻潒未判)이다. 이 무렵은 초조(初潮) 직전이므로 단연 음기가 왕성해 사내의 기력을 도울 수 있는 그릇(鼎)으로 회춘을 일으키는 황금같은 시기다.

나인을 선별할 때도 이 나이 이전에 하는 것은 정해진 것이지만 지켜야 할 것은 몇 가지 있다. 상감을 뫼실 그릇으로서 반드시 갖춰야할 조건으로 이른바 미청목수(眉淸目秀) 순홍치백(脣紅齒白)이었다.

'눈썹이 맑고 눈은 아름다워야 하며 입술은 붉고 이가 희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따르다 보니 무엇보다 용모를 중히 여겼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을지 모르나 반드시 선호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청(眉淸)은 어떤 눈인가? 눈썹이 크거나 굵지 않고 초승달 모양으로 꼬부장해야 한다. 눈썹은 꼬부장하고 눈동자는 크거나 작지 않고 또렷하되 눈동자가 위쪽으로 치우친 요염한 눈이어야 좋다. 이른바 하삼백안(下三白眼)이다.

입술은 어떤가? 붉어야 건강하다. 그래서 순홍(脣紅)이다. 이런 입술은 붉으래 하다는 것이지 빨갛다는 게 아니다. 입술이 붉다는 건 홍색의 붉음이지 검붉은 적색(赤色)이 아니다. 상감을 뫼시는 여인의 입술이 검붉거나 홍도빛을 띄면 복하사(腹下死)의 위험이 따라 잠자리에 집어넣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하얀 이(齒)에 치열이 고른 여인이다. 이런 여인이 양기를 듬뿍 가지고 있다. 이가 나쁜 사람은 지금의 건강이 나쁜 상태다. 아무리 건강하게 보여도 섹스라는 노동을 견디어 내기엔 버거운 몸이다.

그렇기에 방중술의 대가인 청봉자(靑峯子)는 동파에서 전해 온 비전들을 종합해 '네 가지 아름다움'으로 결론 내렸다. 이른바 나인 감별법이다.

첫째, 얼굴 색깔이 좋아야 한다.
둘째, 적당한 키에 살찐 정도가 알맞다.
셋째, 피부는 부드럽고 머리칼이 검다.
넷째, 목소리가 맑고 또렷또렷하다.

적어도 이런 정도는 돼야 나인의 선별기준에 들어갈 수 있으며 전하를 모시는 건 그 다음의 일이지만, 여기엔 용모나 체질에 따라 훈련방법이 달라진다. 정순왕후가 소격서에서 데려온 상아는 이런 모든 기준을 무시하고 궁에 들였기에 김내관도 그 점을 이상히 여겼다.

'주합루의 종을 울리기 위해 데려왔다 해도 당연히 지켜야 할 법도는 있다. 그걸 무시했다는 건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 밀고 들어왔다면 시급한 일이 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가장 전하에 대해 이를 갈아야 할 정순왕후가 데려온 계집에 대해 신득수라고 의혹이 없었겠는가. 분명 계략이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정약용은 우선 나인의 방부터 조사에 착수했다.

전하께서 은총을 내리는 나인의 방은 고작 두 평 반의 좁다란 곳이다. 그 방은 나인들 처소에 들어오는 초입으로 모서리 첫째 방이었다. 김내관은 방과 주변상황을 살피고 평소에 했던 대로 봉황촉(鳳凰燭)을 켠채 내시부로 돌아갔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처리해야할 일이었다.

시간이 되어 전하께서 납시면 지밀(至密)에 있던 무리가 따라 나선다. 내관이며 상궁들이 방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신경을 곧추 써 이모저모 상황을 진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날, 장소가 너무 좁아 신득수는 옆방을 사용했었다. 섣달의 만만치 않은 추위를 피해 전하의 천침을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김내관은 대전장번으로서 그런 말을 했지 않은가.

"나도 들었을 뿐이니 확실하지 않소. 소격서에서 데려온 계집이 특별하단 소문이지만, 그 아이가 특별하다면 왜 그런 말이 떠돈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이 떠돌았는가?"

"그 아이가 미약(媚藥)을 쓴다지 않습니까. 강성하기 이를 데 없는 요초방(瑤草方) 말입니다. 전하를 처음 뫼시는 계집이 그런 비방을 아는 것도 심상치 않을 뿐더러 방중행위에 닳고 닳은 계집의 비방을 쓴다는 것부터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해서···."
"말 하시게."

김내관이 고개 숙여 말이 번지는 걸 막았다.
"소인의 생각으론 내금위장이 옆방에 머무르며 사태를 주시해야 될 듯 싶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내관은 처소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금위장의 죽음은 자정 이후다. 섣달의 차가운 추위가 몰아닥친 야밤에 궁에서 살해됐다면 그거야 말로 맹랑한 일이다.

내금위장의 주의력으로 볼 때 사람이 들끓는 곳은 아닐 것이다. 방 안을 대충 훑어보고 나서 그날 밤 주변에 있었던 나인을 가까이 불렀다.

"너는 상아라는 나인이 전하를 뫼실 때 이곳에 있었느냐?"
"그렇긴 하옵니다만, 날씨가 워낙 매서워 옆방에 있었나이다. 그 방엔 내금위장이 책상다릴 한 채 눈을 감은 채였습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것이냐?"
"예에. 나으리께서도 보아 아시겠지만 나인의 방엔 고작 이불을 얹는 조그만 장농뿐입니다. 그렇기에 초는 방바닥에 놓거나 촛대를 사용합니다만 전하께서 납신다는 밤엔 봉황촛대가 이 방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봉황촛대는 당연히 전하가 침수드시는 방에 있어야 하거늘?"
"소인도 그리 생각했습니다만, 전하는 그날 납시지 않았습니다."

"뭐라? 그 사실을 왜 이제까지 말하지 않았느냐?"
"소인은 그 동안 대비마마의 심부름을 갔다가 어제 저녁에야 돌아왔습니다."
"허면, 주합루의 종이 울렸느냐?"

"울린 것으로 아옵니다. 하온대 소인이 보기에 전하께선 납시지 않았나이다."
"그런데도 내금위장은 날새도록 이 방에 있었단 말이냐?"

"예에. 그분은 주합루 종이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셨습니다. 사고가 난 건 그 직후라 들었나이다."

"이 방에 이상한 일이 있었더냐?"
"자세힌 알 수 없으나 소인은 금동 촛대를 아침에 가져가면서 초에 이상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나이다. 거의 타버린 초의 심지가 두 개지 뭐겠습니까!"

"어떤 색깔이었느냐?"
"빨강과 노랑입니다."

"지니고 있느냐?"
"버렸지요, 지저분해서요. 그게 뭐에요?"

정약용은 말없이 그곳을 물러나왔다. 그날 밤 한 통의 차자(箚子)가 대전장번의 손을 타고 전하께 올려졌다.

<전하, 신 정약용 돈수백배하여 아뢰옵니다. 내금위장은 정순왕후의 계책에 말려 내명부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여지옵니다. 사건 당시의 상황이나 주도했던 자들이 모습을 감췄으니 그것을 드러내긴 어렵다 보오나 신은 반적들의 자취가 남아 있으니 반드시 진위를 밝힐 것이옵니다.>

[주]
∎소격서(昭格署) ; 도교의 제사를 주관하던 관청
∎대비 ; 정순왕후
∎초조(初潮) ; 첫 월경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