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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계'의 새로운 스타 '풀치조림'

10리 밖으로 달아났던 입맛도 돌아와

등록|2010.06.18 14:30 수정|2010.06.18 16:10
도둑이면서도 어디에서나 대접받는 밥도둑들, 기력이 쇠해지고 입맛까지 달아나버린 분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이지요. 저는 그동안 '간장게장', '꽃게무침', '참조기', '말린 박대', 맛깔스럽게 무친 '조개젓' '김' 등을 밥도둑으로 대우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멸의 진리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밥도둑도 시대와 계절에 따라 바뀌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밥도둑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면서 상추쌈과도 환상적으로 잘 어울리는 '풀치조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풀치조림. 풀치조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매콤, 달콤, 고소한 맛이 살에 배이면서 멀리 도망갔던 입맛까지 돌아오게 합니다. ⓒ 조종안


"10월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 값보다 높다!"

갈치는 가을에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속담입니다. 또한,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갈치 비늘은 장식용 진주를 만드는 데 중요한 재료로 쓰이고 있어서 비싼 황소에 비교한 것 같습니다.

속담에서처럼 갈치는 10월을 상징하는 생선인데요. 그럼 이른 봄에서 초여름까지 잡히는 어린 갈치는 뭐라 부를까요? 반짝반짝 은갈치 느낌 그대로 '갈치 새끼'입니다. '풀치'라고 하지요. 조림을 해먹으면 여름철 밥반찬으로 으뜸인데 맛이 좋다고 소문나면서 뉴 페이스로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옛날 어른들 얘기만 믿고 '갈치'와 '풀치'는 어종이 다른 생선으로 믿어왔습니다. 고향이 선창가라서 풀치는 갈치 새끼가 아니라며 입씨름하는 광경도 자주 목격했는데요. 얼마 전 수산물 전문가에게 질의한 결과 갈치와 풀치는 같은 어종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단오(端午)가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무더위와 이상기온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입맛까지 달아나는 요즘이 풀치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며칠 전에도 부안 곰소항에서 사온 풀치로 조림을 해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더군요.

'풀치조림' 조리 순서

요즘엔 꼬들꼬들하게 마른 풀치만 봐도 군침이 도는데요. 밥도둑계의 새로운 스타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발라먹는 재미와 고소한 맛에 취해 '과연 별미로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니까요. 

10리 밖으로 도망간 밥맛도 돌아오고, 잠자던 입맛도 일어난다는 '풀치조림' 조리법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풀치는 영양가가 풍부하고 특유의 고소한 맛을 지니고 있어서 별다른 양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젓갈로 유명한 부안 곰소항 비린내 나는 어시장 거치대에서 지푸라기로 엮은 풀치들이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습니다. ⓒ 조종안


▲ 냉동실에서 꺼낸 풀치(상단 좌측). 끓는 간장에 풀치를 넣고 수저로 저어주는 모습(상단 우측). 불을 줄이고 다진마늘과 고춧가루, 썰어놓은 쪽파 등을 넣고 휘젓는 모습(하단 우측). 완성된 풀치조림(하단 좌측) ⓒ 조종안


풀치를 구입할 때는 상하지 않았는지 냄새를 맡아보고, 조림하기에 좋을 정도로 꼬들꼬들하게 말랐는지 말린 상태도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딱딱해야 조리할 때 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씹힐 때 감칠맛과 고소한 맛이 살아나거든요.  

먼저 억센 가시가 박힌 등지느러미 부분을 잘라내고, 적당한 길이(4cm-5cm)로 잘라서 냉동고에 보관해두었다가 조리하기 5~6시간 전에 꺼내 해빙시킵니다. 머리는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고, 꼬리는 뼈와 함께 씹을 때 고소한 맛이 일품이니까 버리지 마세요.

다음엔 양념을 준비하는데요. 풀치가 지닌 특유의 고소한 맛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식용유나 조미료는 넣지 않는 게 좋습니다. 조림간장, 물엿, 다진마늘, 조선파(쪽파), 고춧가루, 설탕 등 간단한 양념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거든요. 조림간장이 들어가니까, 간은 따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림간장에 물엿을 적당한 비율로 배합하는 것으로 조리를 시작합니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을 때 단맛이 나면 가스 불에 올려놓고 저어줍니다. 5분쯤 지나 간장이 끓으면 잘라놓은 풀치를 넣고 수저로 살살 휘저어줍니다. 

조림간장이 다시 끓기 시작해서 풀치가 익었다고 생각되면 불을 줄이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썰어놓은 쪽파를 한주먹 넣고 수저로 조금 더 뒤적여주면 풀치조림이 완성됩니다. 깨소금 등을 넣기도 하는데요. 양념 종류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좋습니다.

식성에 따라 무나 풋고추를 넣기도 합니다. 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살짝 익혔다가 넣으면 달콤하고 짭조름한 국물이 무로 스며들어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데요. 풋고추 역시 개운한 맛을 더해줍니다.   

비린내를 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요. 조림 간장과 엿으로 비린내는 사라져버리고 싱싱한 꽁치를 굽는 것처럼 구수한 냄새가 풍깁니다. 조리를 마치고 국물 간을 보았을 때 조금 짜다고 느껴지면 설탕을 조금 더 넣어주면 제맛이 살아납니다. 

고추장을 넣기도 하던데요. 저희는 고춧가루로만 조리합니다. 고추장이 많이 들어가면 조림이 짜질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고추장의 물기가 풀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꼬들꼬들하고 쫄깃한 느낌을 떨어뜨리기 때문이지요.

상추쌈과 풀치조림 궁합은 환상적 

'가을 상추는 문 걸어놓고 먹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음 5월)이 진정한 상추쌈의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원한 대청에 둘러앉아 파루에 남대문 열리듯 벌어지는 상대방 입과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면서 먹는 상추쌈은 쌈 중에 으뜸이라 아니할 수 없거든요.

▲ 풀치조림 국물을 얹은 상추쌈. 눈, 코, 입 등 오감을 통해 먹는 행복과 우리의 진정한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조종안


▲ 다양한 상추쌈. 식사를 마치면 기분부터 상쾌해지는데요. 경험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조종안


'밭에서 나는 밥도둑' 소리를 듣던 시절에는 텃밭에서 금방 솎아낸 상추 줄기를 자르면 하얀 물이 나왔는데요. 어른들은 처녀들이 상추쌈 먹으면 바람난다고 했습니다. 상추가 그만큼 사람 몸에 좋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엊그제는 풀치조림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데 갑자기 상추쌈이 생각나기에, 마당에서 상추를 솎아다가 쌈장에 풀치조림 국물을 얹어 먹어보았습니다. 기가 막히더군요. '야! 이 맛이로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쌉싸래한 상추와 달콤한 맛의 풀치조림 국물이 입안에 감돌면서 잊고 있던 우리 맛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상추쌈은 쌈장에 참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린 양념간장을 얹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풀치조림 국물과의 환상적인 맛을 알고부터 방식이 바뀌었고, 상추쌈 먹는 횟수가 늘면서 먹는 행복도 느낍니다. 아내에게도 권했더니 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고 하더군요.

발라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어 

풀치 꼬리는 고소해서 그냥 먹어도 되지만, 머리와 가운데 토막은 혀와 입술, 앞니로 발라먹는데요. 머리에 배인 양념을 음미하며 발라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입안에 감도는 매콤하고,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재미를 더해주지요.

▲ 잡곡밥과 풀치조림, 밥을 물에 말아 풀치조림과 먹는 것도 별미인데요. 무기력해지기 쉬운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반찬입니다. ⓒ 조종안


바닷바람에 말린 풀치는 염기가 스며들어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사시사철 부담을 느끼지 않고 먹을 수 있습니다. 가시를 발라먹으려면 식사시간이 길어지니까, 소화가 잘 될 수밖에 없고, 비만과는 거리가 먼 음식이어서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음식궁합이 잘 맞는 오이소박이나 잘 익은 부추김치와 곁들여 먹는 풀치조림은 떠오르는 밥도둑으로 손색이 없겠는데요. 씹을수록 고소하고 개운해서 풀치조림 하나만으로도 밤 한 공기는 게 눈 감추듯 뚝딱 입니다.

이만하면 여름철 별미 중의 별미라 해도 과찬이라 할 수 없겠는데요. 올여름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거라고 합니다. 값도 부담 없고(1만 원에 20마리), 맛도 좋은 풀치조림에 상추쌈을 곁들여 즐겁고 맛깔스러운 식단으로 건강도 지키고 찜통더위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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