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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녀가 자라고 있다

[주장] 패륜녀는 별종인가, 요즘 20대를 대변하는가

등록|2010.06.22 09:31 수정|2010.06.22 09:31
한 여대생이 자신의 엄마뻘 되는 환경 미화원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며 상스러운 욕을 퍼부었다. 녹취록과 함께 이 사실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여대생은 '패륜녀' 낙인이 찍혔다. 일명 '패륜녀' 사건으로 논란이 되면서 전국 캠퍼스에 퍼져있는 20대 패륜 '남녀'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패륜 시리즈'는 동방예의지국이 사전에나 존재하는 단어가 되어버렸고, 20대 학생들이 윤리와 도덕을 '패'해 버릴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음을 개탄하는 상징이자 놀람이 됐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정말로 묻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패륜녀는 한 학교에 있을까 말까 한 별종인가, 아니면 모든 20대 안에서 자라고 있는 무의식의 발현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경희대 패륜녀에 이어 연세대 패륜남까지, 패륜 남녀들이 유독 캠퍼스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대학교 총장은 취임식에서 최우선 목표로 재원 모금을 꼽았다. CEO를 표방하는 총장은 동시에 등록금을 올린 만큼 학생들을 만족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더 큰 건물, 리모델링 된 외관, 고급 기자재와 부드러운 소파를 약속한다. 학생과 학교 사이에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라는 관계가 성립된다.

어느새 부터인가 대학생들은 등록금이 비싸다고 투쟁하는 방법 대신, 비싼 등록금에 합당한 서비스를 기대하고 또 요구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등록금은 수업료이자 기타 시설이용비와 같다. 사용자 의식이 향상되면서 학생들은 등록금에 걸맞는 서비스와 시설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대학이 사회를 따라 자본화된 회사의 모습을 표방하고, 학생들도 이를 받아들이는 구조가 성립된다.

자본화된 회사의 경영을 생각해보면, 고객 혹은 이용자는 지불하는 등록금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따라서 화장실 미화원이 제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면 "이거 치우는 게 아줌마 일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이용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행위의 연장선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패륜녀를 잘못된 가정교육을 받았거나 도덕적 흠결이 있는 마녀로 취급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사건 당사자였던 환경미화원은 패륜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른 여학생의 어머니였다. 패륜녀 사건은 사회에서 우리가 유기적 혹은 연대적 인관관계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상황을 대변한다. 자본은 미화원의 성별을 묻지 않고, 그가 누구의 어머니인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패륜녀는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한국사회를 닮아가는 과정 그 자체인 셈이다. 서구 사회와 달리 한국이 나라, 엄마, 가족 등과 같은 명사 앞에 소유격 형용사 '나의'가 아닌 '우리'를 붙이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려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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