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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어른들은 빌려보면 안 되나?

어린이만 대출할 수 있다는 과천도서관 기준, 완화됐으면

등록|2010.06.24 11:39 수정|2010.06.24 11:39
"내가 먼저!"
"엄마가 먼저 읽으면 안 될까? 너 숙제 없어? 숙제부터 해라. 응?"
"엄마는 참……. 이 책은 초등학생 거야."
"재미있는데 어린이, 어른 구분이 어디 있어?"

과천시 정보과학도서관에서 유은실 작가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빌려 온 날의 우리 집 풍경이다. 우리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그림책과 동화책을 아이보다 먼저 읽겠다고 다툴 정도로 나는 동화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입하는 책도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있다. 얼마 전 도서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보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어른들이 동화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안양 지역 한 어린이도서관 ⓒ 최병렬


과천시 정보과학도서관은 지난 5월 4일부터 어린이 자료실의 성인 대출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 과천시 정보과학도서관의 어린이 자료실은 어른에겐 열람만 허용되고 대출은 되지 않는다. 어른뿐만 아니라 중학교 2학년만 되면 어른들을 위한 일반자료실에서 대출을 해야만 한다.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 자료실을 성인에게도 개방하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계속되어 의견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우리 아이의 대출증을 이용하여 책을 빌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열람은 가능하지만 대출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 관심이 가는 설문조사였다.

동화책은 어린이들만 볼 수 있다고?

게시판에는 6월 9일까지 27건의 의견이 제시되었고 그중 찬성은 22건 반대는 5건이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의 대출우선권과 한 가족의 싹쓸이 대출을 걱정하고 있었다. 동화책은 어린이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그 권리를 어른이 빼앗지 말자는 것이다. 싹쓸이 대출이라는 것은 자녀와 부모 모두가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대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2명의 자녀를 둔 가정은 동시에 최대 20권까지 대출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동화책을 본인이 읽기보다는 자녀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빌려가기 때문에 내 아이에게만 책을 많이 읽히려고 하는 싹쓸이 대출이 만연해질 것 같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내 아이가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반갑지만 그로 인해서 남의 집 아이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어른이 대출을 해도 어차피 어린이들이 읽을 것이기 때문에 찬성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중고등학생들, 동화책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 자녀에게 읽히고 싶은 책을 먼저 읽어 보고 싶은 사람들과 단지 그림책과 동화책이 좋아서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찬성하였다.

읽고 싶은 책과 독서 능력에 맞는 책은 어린이 자료실에 있는데 중학생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이 자료실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 당황스러워 하는 중학생을 나도 본 적이 있다. 1년 전에 숙제에 필요한 책을 빌리러 왔다가 중학생이라는 이유로 대출을 못하고 당황해하는 옆집 아이에게 우리 아이의 대출증으로 책을 빌려준 적이 있다.

지금까지는 책읽기를 즐기지 않았는데 최근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어느 고등학생은 자신이 읽을 만한 책을 어린이 자료실에서 종종 발견하였는데 빌릴 수가 없어서 불편했다고 하면서 찬성의견을 내놓았다. 게다가 정보과학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의 영어 도서는 중학생 수준에 맞는 책들이 많이 있다.

도서관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여 어린이 동화작가나 독서 관련 단체 종사자들에게는 어린이실 대출을 허용하여 왔고 2010년부터는 중학교 1학년까지는 어린이 자료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중고등학생들을 위하여 어린이 자료실에서 소장하고 있는 도서 다수를 일반자료실에 비치하고 있고 그래도 일반자료실에 없는 어린이도서가 필요할 경우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대출할 수 있다고 한다.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소정의 심사절차를 거친 후 구매하여 일반자료실에 비치한다고 한다.

동화책을 읽고 싶은 어른들은 어떡하나?

도서관도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이 동화책을 읽을 수 있도록 나름대로 지원을 해왔지만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1학년을 제외한 중고생은 어떡하고 나처럼 단지 동화책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도 그림책을 읽고 싶은데 교복을 입었으니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나는 나이를 기준으로 독자를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달픈 사랑에 눈물을 흘릴 수 있듯이 중고생과 어른도 그림책을 보고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이다.

동화책 관련 직업을 가진 어른들이야 당연히 어린이 책을 많이 읽겠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들도 동화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 동화책이 점점 좋아진다. 당장 어린이 대출권을 보호하여 많은 책을 읽게 하는 것보다 양질의 책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교육적 효과도 더 크다고 생각하다.

동화책의 질적 개선이나 교육적 효과라는 이런 거창한 말보다는 솔직히 나는 동화책이 너무 재미있다. 가끔씩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나는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면 편안해진다. <빨간 머리 앤> 외에도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을 때가 많다. 그 책을 어떻게 다 구입하겠는가? 이때 도서관에서 느끼는 행복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리고 <강아지똥>과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처럼 아이 엄마가 되어서 읽은 동화책도 읽고 또 읽고 싶다. 그런데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단다.

딸아이의 대출증으로 아이가 읽을 책과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빌리면서 사서선생님께 슬쩍 여쭤 보았다.

"아직 어른들은 대출 안되지요?"
"예."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지금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의견을 모은 후에 도서관 운영위원회의도 열어야 하니 결정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과천에는 2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2개의 도서관이 모두 월요일에 휴관하였는데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정보과학도서관은 금요일로 휴관일을 바꾸었다. 덕분에 우리들은 일주일 내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이번에도 시민들을 위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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