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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인물 되살려 새로운 여행 명소 만들어야"

[인터뷰] 고향 흑산도에서 두 번째 면장하는 김형주씨

등록|2010.06.24 11:30 수정|2010.06.24 11:30
흑산도가 몇 해 전부터 천혜의 풍광에 더해 역사적 자산과 인물, 먹거리 문화 등을 새롭게 발굴·조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새로운 '여행지'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최서남단 해역에 위치한 흑산도의 변화는 김형주(59) 신안군 흑산면장이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김형주 면장은 흑산도가 고향이면서 지난 2006년 1월 면장으로 부임해 3년 동안 일했고, 7개월 여 동안 신안군청 과장을 지내다 지난 2009년 8월부터 다시 면장으로 부임해 일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면장은 적극적인 관광자원 개발 노력 뿐 아니라 수해 피해 복구 등 주민 숙원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 상당한 성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다.

김 면장은 "흑산도는 과거에 연평도 등과 함께 서해안 3대 파시(波市)로 유명했던 것과 같이 어업이 성행했던 곳이지만 현재는 과거에 비해 연안자원이 고갈돼 가고 있어 관광산업에 더 치중해야 한다고 본다"며 "육지와의 접근성에 어려운 점이 있고 천혜의 자연환경만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면장은 "아름다운 풍광에 흑산도가 가진 역사적 자산과 인물, 먹거리 등 문화 등에 대한 스토리를 엮어내면 관광산업이 활성화 될 것이고 주민 소득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면장은 홍어 등 흑산도의 특산물을 매개로한 지역 축제를 처음으로 기획해 주민들의 참여 속에 2007년 '제1회 흑산홍어 축제'를 개최해 올해 4회째를 맞고 있다. 지난 축제 기간 동안 홍어무료시식회는 물론 홍어잡이 체험관과 즉석 홍어경매장 등을 홍어 관련 행사를 운영하고 용왕제(풍어제), 해군선상 체험 등 참여프로그램, 홍어 뿐 아니라 전복·우럭 등 흑산도 대표 수산특산물 판매장도 운영했다.

먹거리·역사적 자산 관광자원화 추진 성과

▲ '흑산홍어 축제'는 2007년 김형주 면장이 부임하면서 처음으로 추진돼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제1회 축제에서 주민들이 풍어제를 하는 모습이다. ⓒ 이주빈


축제 기간에 상라산 옛 탐방로 산길을 따라 걷는 등반대회와 갯바위 낚시대회 등도 개최해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는 9월 초에 열릴 예정이다.

김 면장은 "고려시대 왜구의 잦은 침입 때문에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펼치면서 흑산도 주민들을 나주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켰고 그러면서 흑산 홍어가 영산포에 들어오게 됐다"며 "나주에서는 이미 홍어축제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는 먹거리를 매개로 한 축제가 없어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흑산홍어 축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일 동안 열리고 있는 축제 기간 흑산도를 찾은 관광객 수는 첫회 4000∼5000명에서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 7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외딴 섬에서 치러진 축제치고는 방문객 수가 상당하다.

신안군과 흑산면은 홍어축제를 통해 흑산도 홍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광객 유입을 통한 주민 소득 제고를 기대하고 있다. 홍어축제와 함께 흑산면은 1960년대 흑산도의 명물이었던 고래잡이 판장을 재조명하기 위해 고래공원 등을 조성해 관광자원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신안군과 흑산면은 역사적 유적과 인물 발굴에도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상라산성 복원 사업, 옛 탐방로 조성, '김이수 공원 조성' 등이 대표적이다.

상라산성은 고대부터 고려시대 한반도와 중국,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무역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하며 국제 해양도시의 면모를 갖췄던 흑산면 진리 일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체계적인 보존과 학술조사를 벌이고 있다.

신안군과 흑산면은 또 조선후기 민권운동의 선구자인 김이수(金理守)의 삶을 재조명하고 흑산도의 묘소와 대둔도 생가 보존과 함께 그의 삶을 기리기 위한 공원 조성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별한 관직도 없던 민초 김이수는 40여 년 동안 섬 주민들의 손과 발이 돼 흑산진, 나주목, 전라감영과 한양을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고 특히 1791년 흑산도 주민에게 가장 큰 폐단이었던 '닥나무 세금'을 개혁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정조에게 격쟁(擊錚-임금의 행차를 막고 징이나 꽹과리를 치고 억울함을 호소했던 소원제도)을 올려 이를 개선하게 했다.

그의 행적과 삶은 2004년 신안문화원이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자료를 토대로 <김이수 전기>를 편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몇해 전 유적지 보존 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본격적인  재조명이 시작됐다.

김형주 면장은 "흑산도가 가진 먹거리, 역사적 자산 등을 다시 살려내기 위한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며 "흑산도는 국립공원지역으로 규제를 많이 받고 있어 숙박시설을 갖추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일부 규제를 완화해 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내년 12월 정년을 앞둔 김 면장은 또 수해 피해가 잦은 섬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정부의 복구 지원 규정의 비현실성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정부 기준으로 피해 규모를 산정하고 복구비를 지원할 경우 섬 지역의 경우 실제 피해 복구비를 확보하기 힘들어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피해 규모 중심이 아닌 복구 중심으로 정부의 재난피해 산출 관계 규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하는데 아직 이뤄지고 있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주민 이수철(흑산면 심리)씨는 "김 면장이 오면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홍어축제 등을 시작했고 태풍 피해 등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누구 보다 더 앞장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도 "흑산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김 면장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만 같은 곳에서 두 번이나 면장을 하고 있어 안타까워하는 주민들도 적잖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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