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등사 나부상 ⓒ 강화군청
전등사 가면 나부상 하나 있다
대웅전 처마 아래 두손 번쩍 든 채 벌받은 자세로
꿇어 앉은 나부상 하나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강화도 시퍼렇게 몰아치는 갯바람을
맨살에 소름이 돋아라 맞고 있다
보리수 아래 앉은 부처를 유혹하는
나찰녀처럼 서해 낙조에 발그럼해지는
볼과 눈꼬리를 가졌지만
가만보면 대웅전 지붕이 무너지지 않는 건
나부상의 무슨 죄 때문인 것 같다
혼자서 세상의 죄를 다 들고서
처마를 들고 있는,
나부상의 무슨 죄 때문인 것 같다
신성한 부처님 머리 위에서,
도대체 무슨 죄 때문일까
삶보다 무서운 죽음,
죽음보다 무서운 어떤 미친사랑이
저 여자의 헐벗은 영혼을
홀딱 창자처럼 빼버리고
아무 느낌도 없는
바윗덩이 같은 몸뚱이만 벌받게 했을까
어두워지는 절마당을 어슬렁거리는 동안
대웅전 앞 늙은 배롱나무 한그루도
하얀 살결 다 드러내고 꽃등을 켠다.
나도 문득 아름다운 죄 하나 짓고 싶어진다.
*참성단 봉화대에 내리는 첫 햇살처럼
까뭇이 타버린 푸른빛 심지에
확- 그리움의 불, 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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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은, 마니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를 지내던 최석항이 관내를 순찰하며 마니산에 올랐다가 이곳이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시 전등사 총섭이었던 승려 신묵에게 명하여 새로이 고쳐 짓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