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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는 정의(定義)될 수 없다.

제한적 상황의 선택을 통해 정의를 생각하기 <정의란 무엇인가>

등록|2010.06.26 14:11 수정|2010.06.26 14:11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들이받으면 인부들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 절박한 심정이 된다.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옳은 일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연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섯 명을 죽이느니 한명을 선택하겠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 한명이 유능한 대통령이라면(노파심에 추가하자면 한국의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당시 대통령은 일행과 떨어져 나와 철로 위를 거닐고 있었다는 예외적 가정이긴 하다)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인부를 죽여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의 목숨이 철로인부 다섯의 목숨보다 중하다고 생각되는가.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는 고장이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문득 당신 앞에 서 있는 덩치가 산만한 남자를 발견하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당신이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까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덩치 큰 남자를 미는 것은 옳은 행위일까.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전차가 들어오기 전에 선로로 떨어진 취객을 구한 사람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오늘, 사람을 일부러 밀어서 승객들을 구한다는 가정이 가당한가. 사람을 밀어서 사람을 구한다는 행위는 아무리 옳게 생각하려 해도 잔인해 보인다. 숫자가 중요하다면 다섯을 구하기 위해 하나를 희생시키는 것이 옳게 생각되지만 조금만 상황을 바꾸면 하나를 희생시켜 여럿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알 수 있다.

'옳은 것'을 스스로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래로 철학자들이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지만 정답을 내어 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상황을 조금씩 바꾸어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결정이 곧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만든다. 판단과 결정에 신중함과 관계없이 같은 상황에서 관점의 변화에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어떤 도덕적 딜레마는 도덕 원칙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긴다. 예를 들어, 전차 이야기에 적용되는 원칙을 보자. 하나는 가능하면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이며, 또 하나는 아무리 명분이 옳다 해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는 원칙이다. 생명을 살리자니 죄 없는 사람 한 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인다. 상황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적절한지 찾아내야 한다…….가설의 예는 "인부들이 전차를 발견하고 제때 옆으로 피했다면?" 같은 우연을 배제하여, 문제가 되는 도덕 원칙만을 따로 떼어내 그 원칙의 힘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제한된 상황을 통해서 던져지는 질문을 통해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목적은 아니다. 이 판단이 가져올 효과와 선택의 기준이 되는 가치가 과연 적절하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수업'이다. 총 10강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정치철학강의라고 보아도 좋다. 철로를 이탈한 전차 케이스와 같은 옳은 일 하기 이에서 나아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기, 자유지상주의가 옳은지를 판단해본다.

해마다 터지는 병역비리문제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무엇인가. 욕으로 그칠 것인가.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올림픽금메달을 따는 이들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월드컵 4강으로 국민들을 행복에 빠지게 했던 선수들의 면제는 또 어떤가. 지금 '원정'16강에 8강을 기대하는 선수들의 경우는 어떨까. 나아가서 징집제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미국의 남북전쟁 시에 이루어졌던 대리병역제와 지금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모병제를 비교하는 것은 한국의 징집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다.

▲ 정치철학, 인기강의의 핵심을 모아 정리한 한권의 책 ⓒ 김영사

벤담의 공리주의, 이마누엘 칸트가 이야기 했던 '도덕의 최고 원칙'은 다소 현학적이지만 앞서 간접 경험했던 여러 사례에 비추어 적용해보면 딱딱하게 접했던 '철학'이 부드럽게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행복을 기준으로 자유와 도덕의 상호관계를 따지고 이것이 현실세계에서(특히 정치세계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자.

평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존중받고 있는가. 합의를 통하면 무조건 계약은 이루어지는가. 자동차 수리공이 제한된 시간 안에 차를 고치는 행위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계약관계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 자본으로 흐르는 사회에서 무조건적 평등은 가능한가. 그럼 삶의 공평성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레즈비언, 게이로 대표되는 성적 소수자의 권리(한국에서는 일부 진보언론에서 언급되긴 하지만 아직 미미하다)는 과연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인가. 뉴욕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행해지는 입주자 차별은 독특하다. 인종별 입주자수를 제한하여 흑인들은 1년을 기다려야 하고 백인들은 세네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흑인 측에서 불공정한 처사라며 고소한 사례를 가지고 '소수자 우대 정책'의 논쟁을 통해 국내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에 이르는 국내사례에 적용해봄직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인정치, 정치적 삶은 우리가 왜 현실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지, 정의와 공동선이란 사회에서 어떻게 현실화할까? 머리 아픈 주제들을 흥미로운 상황을 바탕으로 실감나게 경험하고 이해하는 작업이야 말로 살아있는 교육이라 할 것이다. 책을 통해 하버드 30년 정치철학 수업을 엿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이창신 옮김/ 김영사/ 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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