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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우리 애기가 쥐약 먹었어야"

나는 소망한다, 어머니와 각방을 쓰게 되는 그날을

등록|2010.06.27 11:32 수정|2010.06.27 11:32
요즘 내가 많이 헷갈린다. 어머니의 기억이 매우 창의적으로 낯설게 작동한다는 것이야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들쭉날쭉 아무 데서나 쑥쑥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디지털화 되어 있을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아니 어쩌면 기억의 작동 방식이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고 저러고도 서방이라고, 저리 가, 저리 가랑게."

한밤중에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 잠결에 귓속을 후비고 들어온 그 목소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카랑카랑해서 깜빡 속을 뻔했다. 아니 사실은 순간적으로 잠시나마 속았었다. 에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또 싸우시는구나, 그리 생각하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돌아누웠다. 초등학교 시절에 그런 경험이 참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지금 초등학생인가? 그렇게 깜빡 정신이 돌아와서 벌떡 일어났다.

"뭐여, 왜 또 그래?"

어머니는 신기하리만치 꼿꼿하게 앉은 자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노려본다기보다는 뭐랄까, 비웃음과 조롱이 가득한 표정으로 일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들을 당신의 남편으로 착각하신 것 같았다. 생전의 아버지는 잔재주가 별로 없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늘 사람을 불렀다. 사람을 불러다가 작업을 할 때도 아버지는 거의 구경꾼이었다. 구경도 뒤에서 얌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솜씨가 그것밖에 안 되느냐는 둥 잔소리는 기본이고 당신이 시범을 보인다고 덤볐다가 기껏 해놓은 일을 망쳐놓기 일쑤였다. 때문에 어머니의 입에서는 "아이고 무슨 저런 남자가 다 있는지 모르겠당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도 밉상이던 아버지를 꿈에서 만났었나 보네? 보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중증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자식들이나 외할머니, 외삼촌에 관한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런데 꿈에서만 몰래 만나고 있었던 것인가. 정말로? 나는 놀랍다는 투로 장난스럽게 한 번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그렇게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로 앉아 있다가는 다시 누워서 이내 코 고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그것은 영화 같은 데서 더러 볼 수 있는 몽유(夢遊)를 연상케 했다. 영화에서의 몽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옆에서 자던 사람이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켜야 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일이 잦아졌다. 예전에는 꿈에서 누구를 만나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다. "아따 성님도 참, 그런 말을 믿으시오? 나는 안 믿을라요. 뭘라고 그런 쓰잘데기 없는 말을 믿는다요"하는 식의 이야기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곤 했다. 때문에 잠결에 그 말을 들은 나 자신도 어머니의 꿈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이즈음 새로 생긴 어머니의 잠버릇은 그 리얼리티가 좀 더 강화되었다. 아니 극단화되었다.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벌떡벌떡 일어나서 앉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가을날 수수밭에서 참새라도 쫓듯이 두 손을 크게 벌리고 훠이훠이 허공에 대고 갈퀴질을 하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당신 자신이 금방이라도 새가 되어 날아갈 듯이 두 팔을 크게 벌린 채로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옆으로 쓰러지듯이 모로 누워 코 고는 소리를 내는데 그 모습이 뭐랄까, 태중의 아이처럼 온 몸을 구부린 그 모습이 한편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쳐다보는 내 마음이 아주 복잡하다.

▲ 금방 어디로 갈 듯이 양말을 신고 선잠을 자는 형태로 주무시는 어머니. 새우처럼, 태중의 아이처럼 구부린 이런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이해는 못 한다. 왜 어머니는 저런 자세를 편하게 여기시는 걸까.......... ⓒ 김수복


왜 저러시는 걸까. 왜 하필 저렇게도 새우처럼 구부린 자세의 불쌍한 모습만 보여주시는 걸까. 그러면서도 양말은 꼭꼭 챙기는 어머니, 밤이고 낮이고 양말이 없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다는 듯이 챙겨 신는 어머니, 대체 당신 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예? 묻고 또 물어봐도 어머니는 말이 없다.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말도 없고 답도 없는 문제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잠도 오지 않는다.

각방을 써야겠다, 각방을 써야겠어, 날마다 저녁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가끔은 한심스럽기도 하다. 나는 왜 어머니를 못 믿는 것일까. 나는 왜 어머니가 밤중에 무슨 일을 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랬다. 나는 어머니를 못 믿고 있었다. 내가 내 방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함께 방을 쓰는 이유는 글쎄, 그것을 순수한 효심이라고 보기는 솔직히 말해서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러면 무엇인가. 나는 왜 어머니를 못 믿는가, 응? 왜?

그렇게 저렇게 오지 않는 잠을 핑계로 이런저런 망상 같은 생각에 빠져 있는데 어머니는 그새 또 한 번 저 먼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매 우리 애기가 쥐약 먹었네, 쥐약 먹었네-에."

소프라노 스타일의 아주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며 벌떡 일어나는 어머니, 정말이지 신기하다. 어쩌면 저렇게도 리얼하게 그 시절을 잘도 재현해 내실까. 사전지식이 없다면 어머니가 왜 또 저러시나 의아해서 채머리라도 흔들어야겠지만,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내 입에서는 웃음부터 나온다. 그리고 슬쩍 장난기도 발동한다.

"뭐여, 왜 또 그래에?"
 "아이고 수길이가 쥐약 먹었당게, 쥐약 먹었어-어."
 "뭐여 수길이가 쥐약을? 오매 으찌까 큰일났네. 글믄 수길이는 인제 죽을랑가?"

나는 미친 듯이 웃어대지만, 어머니는 그새 잊어버리고 웃어대는 아들을 저게 뭔 미친 짓일까, 하는 표정으로 잠시 일별하다가는 이내 모로 누워서 또 코 고는 소리를 낸다. 재미있다. 한밤중에 지난 날을 회고하며 웃어대는 이런 재미를 어머니가 아니면 누가 내게 줄 수 있으랴.

쥐약 사건은 우리 집안의 유명한 전설이었다. 아마 어쩌면 대대로 전승될지도 모른다. 쌀 한 톨 없는 보리밥만 먹던 시절이었다. 쥐는 유난히도 많았다. 그런데 쥐들이 보리에 섞어놓은 쥐약은 안 먹어주었다. 쥐도 보리밥은 질렸는지 안 먹어주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큰 맘 먹고 비싼 멸치에 쥐약을 섞어서 놓았다. 이 쥐약을 우리 집의 자랑스런 셋째아들 수길이가 발견했다. 이제 갓 젖을 떼고 밥이 아닌 "맘마"를 먹던 시기였다. 그런데 녀석이 고기를 좋아했던 것인지 쥐약 바른 멸치를 들고 어머니에게 아장아장 달려왔다.

"엄마, 꼬기, 꼬기."

녀석이 아마 천성적으로 착해빠졌던 모양이었다. 귀한 고기를 발견하고 냉큼 먹어버린 게 아니라 어머니에게 보고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는 아이들의 헤진 옷을 쌓아놓고 바늘로 깁느라 정신을 딴 데로 돌릴 여유가 없었다. 셋째 아들이 아장아장 달려와서 "꼬기, 꼬기" 하니까 아무 생각없이 "오 그래, 꼬기? 먹어"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들은 그렇게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쥐약을 먹었다. 그 아들이 이가 튼튼했다면 아마 금방 다 먹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젖을 뗀 지 얼마 안 된 젖니라서 냉큼 씹어 삼키지는 못하고 입에 넣은 채로 오물거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때 어머니의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어디에 무슨 "꼬기"가 있었을까. 혹시 쥐약?

"오매 이 써글놈이..."

이렇게 해서 우리 집안의 자랑스런 전설은 태어났다. 형제들이 모일 때면 으레 그 이야기가 한 번씩은 나온다. 그것만큼 유쾌한 웃음거리도 없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왜 우스운 것일까. 왜 재미있게 여겨지는 것일까.

어쨌든 나는 피곤하다. 잠을 좀 자고 싶다. 새소리가 들린다. "오매 그새 동이 트나 보네" 나도 모르게 비명 같은 소리가 입안에서 울린다. 그러고 보니 창문도 벌써 물빛을 띠고 있다. 이제 잠시 뒤면 대숲에서 잠자는 까치들이 떼로 일어나서 개가 짖듯이 소리를 질러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잠이고 뭐고 다 틀린다. 아예 먼저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가는 게 이롭다.

내일부터는 정말이지 각방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이내 정말로 그렇게 될까, 고개를 갸웃거려본다. 어떻게 될까. 나는 정말로 어머니와 각방을 쓰게 될까.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소망한다. 각방을 쓰게 되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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