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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44년 만에 당대표자회... 김정은 전면 등장?

<조선중앙통신>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 위해 9월 상순 소집"

등록|2010.06.27 20:10 수정|2010.06.27 20:11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함경북도 무산 광산연합기업소를 시찰하고 있다(2009년 2월 24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촬영 날짜 미상의 사진). ⓒ 뉴시스


북한이 44년 만에 당대표자회를 열기로 해 주목된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6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주체혁명위업,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위업 수행에서 결정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당과 혁명발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노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위한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2010년 9월 상순에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 23일자로 발표된 북한의 조선노동당 정치국 결정서를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제도상 북한 조선노동당의 최고지도기관은 5년에 1회 소집하도록 돼 있는 당 대회(당규약 21조)이며, 그 다음이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당의 노선과 정책 등 긴급한 문제를 토의·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당대표자회(30조)다. 세 번째가 6개월에 1회 이상 소집하도록 돼 있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24조)로, 자주 열기 어려운 당 대회나 당대표자회를 대신해 해당 시기 중요 문제 등을 처리하는 자리다.

당대표자회는 당 대회보다 규모가 작고 상징성이 약하기는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통일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당대표자회를 연 것은 1958년과 1966년 두 차례뿐이었다. 1958년 1차 당대표자회는 이른바 '반종파투쟁'(1956년 8월 사건)을 최종 정리함으로써 김일성이 유일지배권을 확립하고 천리마운동을 시작한 자리였으며, 1966년 2차 당대표자회는 '국방·경제 건설 병진정책'을 확정하고 제도적으로는 당 중앙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제를 폐지하고 당 총비서와 비서제를 신설했다. 두 번의 회의에서 모두 북한 역사에 분기점이 될 만한 결정이 내려졌다.

44년 만에 열리게 될 3차 당대표자회 역시 북한에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위원회 강조하던 북한, 최근에 당 강화 모습

북한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이번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하는 이유를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라고 밝혔다.

북한은 1998년 김정일 체제 출범 이후 '선군 정치'를 내걸었고, 이에 따라 국방위원회가 사실상의 국정 최고지도기관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당은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 정치체제의 실질적인 최고지도기관격인 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1993년 12월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김 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따라 모든 사업이 집행되면서 당에서는 비서국과 그 아래 전문부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정치국은 유명무실해졌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당 정치국원들이 사망해도 보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을 (당이 국가를 지도하는) '당 국가체제'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래왔던 북한이 이번에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하겠다는 것은, 그간 위축돼 있던 당 체제를 정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북한이 최근 '당 중앙위 정치국'과 '당 중앙위'를 강조해온 것과도 연결된다.

지난 7일 최고인민회의 12기 3차 회의에서 최영림 평양시당 책임비서를 내각 총리로 선거한 것은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의 제의에 따른 것이었다(<조선중앙통신> 보도). '당 중앙위 정치국'이 제의 주체로 등장한 건 1988년 연형묵 총리 선출 이후 22년 만이었다. '당 중앙위 사수'도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가 이뤄진 1993년 이후 '혁명의 수뇌부 사수'라는 구호를 주로 써왔다. 그러다 지난 4월 14일 '김일성 주석 생일 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가 나왔고, 이어 4월 24일 북한군 창건 보고대회와 5월 1일 노동절 행사에서도 같은 구호가 나왔다.

이 같은 당 정비 움직임에 대해, 북한이 당을 중심으로 후계구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번 당대표자회도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후계체제를 위한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정일, 1974년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인정돼

북한 정권에서 후계체제의 첫 사례인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1972년 10월 당 중앙위원회에 처음 진입했고, 1973년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조직담당 비서 겸 조직지도부장, 선전담당 비서 겸 선전선동부장이 됐으며, 1974년에 당 중앙위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을 맡으면서 후계자로 인정됐다. 북한 언론은 그때부터 그를 '당중앙'으로 호칭했다. 이어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주석 등과 함께 5인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을 맡아, 후계자로서 대내외에 공표됐다.

김정은이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또는 상무위원)을 맡게 된다면, 이는 김 위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이미 조선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라고 한 2012년에 당대회를 열기 전에 징검다리로 당대표자회를 열어 후계문제를 정리하려는 것 같다"면서 "이번 당대표자회에서는 당 조직과 인사 개편, 김정은에게 공식 직함을 부여함으로써 후계자로 내정하는 두 가지 문제가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은에게 공식 직함 부여해 후계자 내정-인적 확충 동반' 전망

이는 최근 원세훈 국정원장의 발언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원 원장은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 때문에 후계체계를 조기에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김정일 위원장의 절대적 비호 아래 권력세습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은 '김정은 청년 대장동지' 등 김정은을 찬양하는 시와 노래를 보급하고 암송 경연대회까지 진행하는 것을 비롯해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한 김정은 우상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면서 "특히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현장 방문 때 수시로 동행하며 정책 관여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 교수는 "김정은은 지금까지는 '비공식적 지명' 상태인데,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내정되고 2012년 당대회에서 '김정일-김정은 공동정권'이 시작될 것"이라면서 "김정은의 후견인격인 장성택도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당대표자회 소집 배경에 대해 "올해 상반기에 북미 및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북한이 하반기에 당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천안함 사태 이후 대외관계가 오히려 악화되면서 당대표자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이 당중앙위원회 비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될 가능성이 높고, 그를 중심으로 국가와 군대, 전 사회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인적 확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지난 4월에 국방위원회, 6월에 내각을 정비한 데 이어 당 체제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도 후계를 위한 전체적인 재편 작업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른 시각도 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은 이번 당대표자회의 방점을 후계문제보다는 당 중앙 체계 복구에 놓고 있다. 식량난과 천안함 사건 등으로 대내외적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인시키기보다는 북한을 이끌어갈 정치적 권위체로서 당을 정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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