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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전 패배의 책임, 아들이 독박쓰다

열렬히 응원하던 가족들에게 구박받아 풀 죽은 아들 기 어떻게 살리죠?

등록|2010.06.28 11:22 수정|2010.06.28 11:22

▲ 동점골을 넣은 후 좋아하는 우리 선수들. ⓒ 뉴시스

온 국민이 기대를 갖고 승리를 염원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우루과이'전이 지난 토요일 밤에 펼쳐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날 경기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은 훌륭히 싸웠지만 아쉽게 분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의 희망을 쏘아 올린 경기였습니다. 집에서 이 경기를 보다가 온 가족이 '아들 잡은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경기 시작 5분여 만에 박주영 선수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튀어 나왔습니다. 이를 보던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녀석이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러다 우리 지겠다."

그 소릴 듣던 딸과 아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한 마디 던졌습니다.

"이제 경기 시작했는데, 너 재수 없는 말 할래?"

아내와 딸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동생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도 같았기에 수긍했습니다. 그러자 요즘 축구와 월드컵에 빠져 있는 아들 녀석도 지지 않고 받아쳤습니다.

"재수 없는 말이 아니라 저런 게 들어가야 하는데 안 들어가니 그렇지."

부정적인 말 내뱉는 아들에게 가족들 오금 박다

그러다 전반 8분 우루과이 디에고 포를란의 크로스를 루이스 수아레스가 골로 연결시켰습니다. 아, 이때의 허탈감이란…. 아들, 그걸 보고 또 투덜대더군요.

"저 선수를 놓치다니. 저러니 골이 들어가지.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골을 준다니까! 이러다 지는 거 아냐."

패배를 부르는 듯한 이 말은 그렇잖아도 너무 이른 시간에 골이 들어가 허탈해 있는 모두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참지 못한 딸과 아내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 너무 시끄러우니까 아무 말 말고 조용히 봐. 아니면 방에 들어가던지."

이후 우리에게 골 찬스가 계속 왔고 번번이 막혔습니다. 패스 미스와 골 결정력 부족이 아쉬웠습니다. 이때마다 아들은 웃으면서도 "좀 잘 차라. 그러다 지겠다니까"라는 부정적인 말을 연거푸 쏟아 냈습니다. 결국 온 가족이 아들에게 오금을 박았습니다.

"긍정적인 말도 많은데 꼭 부정적인 말을 해야겠어. 재수 없으니까 입 꾹 다물고 조용히 봐."

아들은 온 가족의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말에 충격이 컸나 봅니다. 이후 녀석은 싸늘히 식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풀죽은 아들에게 "네가 기죽어 있으니 골이 안 들어가지. 우리 하이파이브 한 번 하자"하고 손을 뻗었습니다. 아들은 힘없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한민국의 8강 길목에서 패인, 아들에게 쏠리다

우리 선수들은 후반에도 골을 넣기 위해 총공세를 펼쳤습니다. 후반 28분 이청용 선수가 헤딩으로 동점골을 넣자 집이 떠내려 갈 정도로 함성이 퍼졌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은 시큰둥했습니다. "한 골도 내주지 않았던 우루과이 골문을 열었다"는 아내와 딸의 감격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지켜볼 틈이 없었습니다.

동점골을 먹은 우루과이가 점차 공세적으로 나왔습니다. 불안 불안했습니다. 결국 또다시 수아레스에게 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골대를 맞고 골문 밖으로 나갔는데 우루과이는 골문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투혼을 불사른 우리 선수들의 노력에도 결국 2:1로 지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나 봅니다. 칭찬과 격려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기였습니다. 졌지만 아쉬움 보다는 뭔가 뭉클한 감동이 남는 경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집에서 대한민국의 패인은 아들에게 쏠렸습니다.

"네가 처음부터 재수 없는 소릴 해 우리가 졌잖아. 좋은 소리도 많은데 꼭 기분 나쁜 소리만 골라 하더니 초쳤어."

경기 후 선수들의 풀죽은 인터뷰처럼 아들도 완전 기죽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응원하는 온 국민의 마음은 아들을 잡은 저희 가족과 같았을 것입니다. 월드컵 축구 경기 땜에 온 식구가 아들을 잡았으니 앞으로 어찌 기를 살려야 할지 난감합니다. 그나저나 대한민국 축구 파이팅입니다. 모두들 응원하느라 수고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과 SBS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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