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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속 검은 눈과 마주칠 때 가장 두려웠다

[인터뷰] <태백, 잉걸의 땅> 연출한 김영조 감독

등록|2010.06.29 12:08 수정|2010.06.29 14:16

김영조 감독태백, 잉걸의 땅 연출 ⓒ 무비조이(MOVIEJOY.COM)


영화 <태백, 잉걸의 땅>은 부산에서 제작된 독립다큐멘터리영화다. 이 작품을 연출한 김영조 감독은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산지역에서 제작된 독립영화들을 보고 실망한 경우가 제법 있었다. 영화 완성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자신의 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백, 잉걸의 땅>은 부산지역에서 제작된 독립다큐멘터리영화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이 작품이 2008년도에 제작된 작품임을 감안하면 늦게 본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영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이제 버려진 도시나 다름없는 태백의 탄광촌을 다루고 있다. 그곳에는 여전히 광부들이 일을 하고 있으며, 오래 전 광부 일을 그만둔 사람들은 진폐증으로 의심되는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들은 1960~1980년대까지 산업역군으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을 캐내는 위험한 일을 했다. 하지만 태백 광부 1세대와 2세대는 현재 완전히 소외된 곳에서 예전 일로 생긴 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영화 <태백, 잉걸의 땅>은 광부 1세대와 2세대, 3세대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태백이란 곳에서 광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 현재 태백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옛 광부들이 왜 그렇게까지 거리에 나와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지 있는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충분히 극적으로 갈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김영조 감독은 결코 다큐멘터리영화의 관찰자 처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상당한 인내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부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시선을 담고 있는 <태백, 잉걸의 땅>을 연출한 김영조 감독을 만나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27일 이루어졌다.

인트로, 굉장히 주관적인 탄광의 이미지

태백, 잉걸의 땅스틸컷 ⓒ 김영조


- <태백, 잉걸의 땅> 인트로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어떤 의도로 이렇게 연출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주관적인 장면이죠. 거기 나오는 장면들은 원래 영화 속에 사용하려고 했던 이미지들이 아니에요. 저의 경험에 대한 표현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탄광에 들어갔을 때 받은 충격이랄까? 특별한 경험이 있었는데요. 처음 지하 속으로 들어갈 때 공포, 그리고 제가 안경을 꼈기 때문에 앞이 안 보여서 그 공포감 때문에 굉장히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광부들은 한 줄기 빛을 의지하고 길을 찾아가시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제가 방독 마스크를 쓰고 광부들을 따라갔는데 정말 앞에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익숙하신 분들은 보이는데 전 특히 안경을 끼고 있어서 더 앞이 안 보였어요. 왜냐하면 겨울이니까 탄광 안에 실내온도가 엄청 높아요. 안경에 계속 서리가 끼더라고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제 숨소리뿐이었죠.  그 첫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이 부분은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전체 이야기하고 좀 안 맞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래도 그때 느낌이 소중해서 넣게 되었습니다."

- 다큐멘터리에서는 탄광 안을 광부들이 '막장'이라고 부르던데요. 막장에 내려갈 때 첫 경험이 그 정도로 강렬했는지요? 정말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탄광으로 내려갈 때는 걸어서 몇백 미터 정도 가고요.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또다시 갱차를 타고 또 1Km를 가요. 갱차에서 내려서 또 수평이동 승강기를 타고 지하 800m정도 내려가고요. 또다시 사다리 계단으로 100m 정도 들어가야 되는데요. 그때부터 공포가 오는 거죠. 탄광 안은 물이 상당히 많아요. 물이 재와 섞여서 진흙처럼 돼 있는데요.

장화를 신었지만 발이 잠기고요. 전 처음이다 보니 전진도 안 되고 앞도 잘 안 보이니 공포감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런데 촬영을 계속하면서 전 그분들의 눈을 보고 싶었어요. 얼굴이 까매서 정말 눈 외엔 안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그분들한테 집중하다 보니까 어느새 공포감이 사라졌어요.

나중에는 공포감보다는 이걸 과연 촬영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있었어요. 광부들이 자신의 까만 얼굴을 노출하길 꺼려하더라구요. 싫어하시고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정면을 찍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그분들의 시선과 제 카메라 시선이 부딪히는 순간의 부담감이 제일 두려웠어요. 물론 나중에는 그분들과 엄청 친해졌어요. 다큐멘터리 중간에 보면 그분들하고 농담도 하고요."

의도적으로 사회성 강한 다큐멘터리 연출한 것 아냐

태백, 잉걸의 땅스틸컷 ⓒ 김영조


- 제가 본 부산지역 독립영화 중에서 처음으로 사회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작품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회적 시선으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하게 사회적인 다큐멘터리를 해야겠다. 혹은 정치성이 강한 다큐멘터리를 해야겠단 생각은 없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결국 창작의 욕구인데요. 그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어요. 기억과 흔적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야겠다. 마침 제가 그럴 시기에 전수일 감독님의 <검은 땅의 소녀> 촬영장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처음으로 경험 삼아 막장을 한번 내려갔는데요. 주변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곳(막장)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란 지금 보이고 있는 실상이고요. 과거에는 석탄이란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왔잖아요. 과거 힘들었던 모습들이 크게 변하지 않고 곳곳에 남아 있어요. 탄광이 남아 있고 예전에 지었던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미래는 그들에게도 분명 희망이란 것이죠. 답답하고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있지만 말이에요. 이런 것들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적당한 장소였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시나리오로 쓰고 촬영을 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확장됐어요. 시나리오가 수정되고 이야기가 자꾸 넓어졌지요. 그러다가 진폐증 환자분들을 만나게 되었고요. 사회적인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광부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추억을 해가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는데요. 바뀐 부분도 있지만 탄광촌 가까이 가면 갈수록 60년대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거의 없는 동네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이 장면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어서 저도 자료를 찾아보니 많은 광부들이 진폐증으로 고통 받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실제 현재 태백 탄광촌의 모습이 다큐멘터리 모습인지 아니면 그것보다 더 심한지도 알고 싶습니다.
"사실은 이 영화이전에도 탄광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국에서 소재로 다루었어요. 제가 아는 이미영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먼지, 사북을 묻다>란 작품으로 저보다 훨씬 좋은 작업을 하셨어요. 그때도 마찬가지지만 탄광이란 곳이 국가산업으로 만들어졌던 거죠. 국가산업에 아주 중요한 자원이었고 수입이었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국가가 편익을 위해서 탄광촌을 쉽게 버렸다는 것이죠. 그 사람들은 남아 갈 곳이 없게 되고요. 남아 있는 것이라곤 폐 속의 진폐(석탄가루)뿐이죠.

그분들의 삶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1, 2세대로 대변되는데요. 실제 1세대는 모두 진폐증 환자로 의심될 만한 증상을 가지고 있어요. 제 다큐멘터리에 나오신 분들 역시 인터뷰를 해보면 대부분 목소리가 청량하지 않고 걸걸하세요. 탄광 일을 하지 않은 여성들도 진폐증 증상이 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피해자의)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제가 촬영할 당시만 해도 진폐증이란 것은 정확한 증거가 나오면 국가에서 보상을 합니다. 그런데 합병증이 생기지 않으면 진폐증의 흔적이 나오지 않아요. 합병증이 생기면 죽는데 그러다 보니 죽을 때가 돼서야 국가가 무엇을 해 주는 꼴이 되는 것이죠. 말이 안 되는 거죠. 진폐증에 대한 해석이 너무 편협하다 보니 이렇게 되는 거예요. 탄광에서 일하신 분들이 기침을 계속하시면 진폐증으로 우선 의심해야 되는데 그렇게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건 질문과 다른 부분이 되겠는데요. 저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흔들렸어요. 촬영하다 보니까 흥분이 되는 거예요. 저렇게 힘들게 작업하시는 분들이 인정을 못 받으니까요.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이미 많은 다큐멘터리에서 이 문제를 감성적으로 건드렸고요. 차라리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영화가) 기억에 남기길 바랐어요. 자극적이나 감정적으로 가면 그 당시는 좋겠죠. 하지만 이왕이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기억해 주는 것이 더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최대한 제 감정을 배제하고 흥분할 수 있는 연출보다 사람들이 곱씹어보면서 진실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객관적 시선으로 다큐멘터리 찍으려 노력

태백, 잉걸의 땅스틸컷 ⓒ 김영조


- 최근 극영화다큐멘터리가 흥행을 노리고 제작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감독님 역시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극장에 걸려 흥행하길 바란다면 더 자극적으로, 감정적으로 끌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유혹을 참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GV(관객과의 대화)할 때 탄광 일을 하신 분이 오셨어요. 그분이 좀 울부짖고 하는 감정적인 부분이 너무 영화 속에 안 들어 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왜 그냥 카메라가 사람들을 따라가기만 하느냔 말씀이셨죠.

저도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이때가 정말 위험한데요. (영화 속) 인물들과 친해지는 그 순간이 위험해요.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하거든요. 어느 대상하고 친해져 버린 순간 카메라가 객관적 시선을 갖지 못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돼 버리고 말아요. 결국 객관성이 없어지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나와) 친해진 분들이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에요. 어떤 장면을 촬영하는데 멀리서 보면 충분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데요. 어느 순간 카메라가 가까워지고 친절해져 버리면 촬영하시는 분들이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세요.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돼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는 대상과 친해지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만 때론 일정부분 거리를 두어야 하죠. 그래서 저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의 이야기를 담거나 혹은 연출같은 느낌의 장면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카메라를 끄고 촬영을 안 했어요. 그냥 그분들 이야기만 듣고 있었죠."

- 개인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던 부분이 광부 2세대 아저씨가 자기 아버지는 산업역군이라고 개 같이 일 시키고, 자기는 탄광에서 일한다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개처럼 본단 이야기를 하신 부분이 있는데요. 이 장면 참 서글펐는데요. 광부는 아직도 못 배운 사람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지금 이야기하신 것도 그리고 제가 짐작하고 간 것도 알고 보면 편견이에요. 지금은 그 분들이 그렇게 못 살고 못 배우고 그러지 않아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데요. 한참 IMF 때 서울에서 지방으로 직장 간다고 이야기를 하시고 그곳에서 일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건 정말 저희들 편견이에요. 그분들을 배우고 못 배우고의 기준으로 보기보다는 조금 느리게 살아가고 계시는 것으로 봐야죠. 대신 도시에 사시는 분들하고 속도는 확실히 달라요. 문제는 이런 속도가 쳐져 버리면 미래는 뒤처지게 되니까 그런 부분들이 좀 아쉽고요."

강원랜드 대체산업이지만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과연?

태백, 잉걸의 땅스틸컷 ⓒ 김영조


- 이 작품을 보고 태백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니까요. 자신들은 완전히 소외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강원랜드 생각을 하면 충분히 돈을 벌고 있기에 그 지역 생활이 윤택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요. 의외의 결과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봐서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완벽하게 이해는 안 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실 것이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제가 원했던 것인데요. 다큐멘터리에서 다 설명하면 영화 보고 끝이지만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분명 찾아보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강원랜드는 사실 대체 산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강원랜드가 대체산업으로 만들어졌기에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투자해야 되는 금액이 있어요. 당시 촬영할 때만 해도 강원랜드 수익이 엄청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억울한 거죠. 자기들이 피땀 흘려서 만든 이곳에 강원랜드가 들어서고 외지에서 사람들이 와서 즐기다가 가는데 자신들은 비정규직으로 용역 일만 하고 있으니 까요. 그렇다고 지역발전을 위해서 강원랜드가 확실하게 해준 것도 없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곳에 사시는 분들이 결국 할 일이 없으니까 도박에 손을 대세요. 광부 출신들도 하루 강원랜드에서 도박을 할 수 있는 날이 있어요. 그곳에 가서 다 잃어 버리고 나오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 돈을 잘 모아서 저축해서 살지 그러냐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도 권력중심적인 생각이죠. 이분들은 나와서 정말 그 돈으로 할 게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나마 자신들이 큰돈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도박에 빠지고 중독되는 거죠. 강원랜드가 지역을 위해서 세워졌다고 하는데 지역에 있으신 분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좀 안타까운 것이 왜 이 작품이 정식 개봉을 못 했는지 궁금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제일 처음 만든 다큐멘터리가 해외에서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작품을 모 국내영화제에서도 상영을 하고 싶단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결국 상영을 못 했어요. 정말 상영하고 싶은데 거기에 나오셨던 인물이 원치를 않았어요. 그래서 첫 작품을 극장에서 개봉을 못했고요. 영화제에서도 한번 설득을 해보라고 했지만 쉽지가 않더라고요.

<태백, 잉걸의 땅>도 광부 중에 얼굴이 노출되기를 원치 않으신 분들이 많았어요. 혹시라도 영화 개봉해서 자신이 광부라는 것이 알려지면 아이들에게 어떤 부끄러움을 안겨줄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것을 무시하고 영화를 개봉하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배급을 안 하고 포기했습니다. 또한 제가 한 번 더 시간이 될 때 그분들하고 한번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에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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