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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동동 띄워먹는 연포탕?

새콤달콤 시원한 하의도 '냉연포탕'

등록|2010.06.29 09:57 수정|2010.06.29 10:01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냉연포탕'을 먹고 왔습니다. 선도가 좋은 산낙지가 들어가는 연포탕은 국물이 뜨겁고 얼큰한 것으로만 알았는데, 하의도 연포탕은 얼음덩이가 둥둥 떠다녔습니다.

▲ 하의도 냉연포탕. 졸깃한 낙지는 입을 즐겁게 하고, 새콤달콤한 국물은 몸과 마음을 맑고 상쾌하게 해주었습니다. ⓒ 조종안


거품과 두부의 뜻이 담긴 연포탕(軟泡湯)은 '두부나 무, 고기 등을 넣고 끓여 먹는 맑은장국'을 지칭했는데, 갯벌이 많은 서남해안지방에서 산낙지를 넣고 끓이기 시작하면서 '낙지탕'을 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끓는 물에 낙지를 넣었을 때 다리가 벌려지는 모습이 마치 연꽃이 피어오르는 모습 같다고 해서 연포탕으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물 위에 연꽃이 떠있는 형상이어서 부르게 되었다는 하의도(荷衣島)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포탕은 끓는 물에 산낙지를 삶은 국물이 맛을 좌우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질감이 부드러운 속살을 곁들여 마시는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국물은 등을 오싹하게 했고, 입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시원한 국물을 떠 마시며 씹는 맛이 그만이기에 즉석에서 '냉연포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요. 주위 분들도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목포를 오가는 하의도 여객선 선착장(웅곡포구)에서 면사무소 방향 곰실길(골목)로 조금 들어가면 여인숙을 겸한 냉연포탕 전문 식당이 보이는데요. 처음 주문할 때는 우려 반, 기대 반이었으나 담백한 국물과 씹을 때의 야들야들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곰실길'이란 이름이 곰살스럽게 느껴져 면사무소 직원에게 물었더니 마을 형태가 곰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옛날에는 '곰실'이라고 했는데, '마을'이 붙어 '곰실마을'로 불리다가, 지금은 '곰실길'로 적고 있다고 하는데요. 길 이름도 냉연포탕만큼이나 새콤달콤했습니다.

▲ '아랫녘 맛', '남도의 맛'을 재확인했던 하의도 삼육식당 밥상. 찬들이 하나같이 개운하고 담백해서 좋았습니다. ⓒ 조종안


▲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개운한 굴젓’, 집에서 만든 어묵무침, 냉연포탕에서 건져낸 낙지, 고소한 감자조림. ⓒ 조종안


소박하게 차려나온 반찬들은 옛날에 어머니가 부엌과 장독을 오가며 차려놓은 밥상이 떠오를 정도로 정성이 깃들어 있었는데요. 하나같이 개운하고 담백해서 먹는 데 부담이 없었습니다. 입이 마냥 즐거워하더군요.

연포탕은 주로 산낙지가 많이 잡히는 서남해안 도시와 섬에서 즐겨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400여 년 전에 기록된 <난중일기>에도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즐겨 먹었던 음식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서남해안 갯벌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드는 음식을 우리는 흔히 아랫녘 맛, 남도의 맛으로 표현하는데요. 특히 산낙지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전남 목포 앞바다의 하의도에 가셔서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냉연포탕을 꼭 한 번 시식해 볼 것을 권합니다.

연포탕은 산낙지와 각종 채소를 넣고 익혀서 먹는 음식이어서 식당마다 맛이 다른 것은 상식일 터인데요. 하의도 연포탕에는 여름 양념이라 할 수 있는 식초와 싱싱한 채소, 얼음이 어우러져 담백하고 시원해서 여름 음식으로 으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상대방 이야기가 귀로 들어오지 않았는데요. 속까지 개운한 '깡다리젓갈', 시원한 '열무김치', 담백한 '호박나물' 등은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이었습니다. 특히 겨울에도 맛보기 어려운 '굴젓 무침'은 냉연포탕 맛을 확실하게 지켜주는 든든한 지원군 같았고요.

하의도 '산낙지회'와 맛의 효자 '화염' 

하의도까지 와서 연포탕만 먹고 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더군요. 해서 맛보기로 산낙지회를 한 대접 시켜먹었는데요. 잘게 썰어놓은 싱싱한 산낙지 위에 청양고추와 깨소금을 뿌려놓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습니다.

▲ 청양고추와 깨소금을 뿌린 산낙지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요. 잡히는 양에 따라 한 접시에 2만 원 하는 날도, 3만 원 하는 날도 있다고 했습니다. ⓒ 조종안


마디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것은 몸통은 죽었어도, 신경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꼬물꼬물 움직이는 산낙지를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입에 넣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씹는 맛은 그야말로 별미였습니다.

낙지가 주재료인 연포탕과 산낙지회는 사촌지간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는데요. 천정에 달라붙는 낙지와 입에서 일전을 치르며 힘겨운 승리 끝에 먹는 재미도 산낙지회의 또 다른 맛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꿈틀거리는 산낙지는 사고를 방지하고, 고소한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라도 빨판까지 천천히 씹어 먹어야 하는데요. 빨판을 씹을 때의 쫀득한 느낌과 고소한 참기름, 양질의 소금의 조화는, 환상적인 맛 그 자체였습니다. 

갯벌이 좋은 지역의 산낙지는 육질이 연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더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요. 기름장에 들어간 소금에서도 쓴맛이 아닌 단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통방식을 복원하여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화염'(火鹽)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하의도는 소금 전시관이 있을 정도로 염전이 많고, 게르마늄 성분이 다량 함유된 질 좋은 천일염이 생산되는 섬인데요. 그래서 음식 맛도 좋다고 합니다. 예부터 '반찬 맛은 소금에서 나온다!'는 말이 내려올 정도이니까요. 

애인에게 더없는 선물이 될 '냉연포탕'

▲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는 냉연포탕. 음식은 찌꺼기에 모든 맛이 있다고 했지요. 그래서인지 먹을수록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조종안


산낙지회는 정력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고소하고 쫀득한 산낙지회를 안주로 마시는 소주 한두 잔은 달착지근한 맛이 입안에 감돌면서 술이 아니라 보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여름에 무더위로 잃은 기력을 갯벌에서 갓 잡아온 낙지를 먹으면서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몸에 좋은 산낙지가 가격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는데요. 싱싱한 채소와 시원한 얼음이 들어간 냉연포탕도 3만 원으로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추천하게 되었고요. 

소주 안주로 마시는 시원한 냉연포탕 국물은 맛도 일품이었는데요. 사랑하는 사람하고 마주앉아 먹기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콤달콤한 맛에 눈이 살짝 감기면서 흐뭇해하는 표정은 애인에게 더없는 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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